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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제 1언어,소통은 말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by 갓기획

예전 회사 앞 지하철역 광고를 보면서 무릎을 '탁'치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거의 모든 광고가 제품의 특징과 이용방법 등에 대해서 빼곡하게 채우려고 할 때, 이 회사의 광고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이른바 비우기 전략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출처 :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블로그


'정보 과잉, 과다 광고에 지치셨죠? 저희는 여러분들을 위해 한 켠을 비워둡니다.'


정보로 빼곡히 가득한 광고판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광고라고 생각했다. 비우면서도 오히려 할 말을 다하고, 몇 배의 효과를 만들고 있다. 오래전 봤던 이 광고판이 리더의 언어를 떠올리면서 다시 생각났다.


책이나 각종 교육에서는 리더의 언어, 리더의 화법,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을 다룬다. 리더가 어떻게 말을 하고, 코칭하고, 조언해야 하는 지 등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 그냥 들어주는 것이 정답일 때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리더의 제1언어 이자, 소통의 핵심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가장 기본이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어떤 대화 자리가 생기거나, 회의 시간이 되면 일반적으로 윗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아랫사람은 듣는 편이다. 할 말이 많아서 그러기도 하고, 뭔가 말을 해야 체면이 설 것 같기도 하며, 기본적으로 '내가 더 많이 아니까' 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심지어 아랫사람이 무슨 말을 할라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건 이래서 안되고..’

‘니가 뭘 알아..’


등의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말로 상대방의 말을 차단하고, 본인의 말을 이어간다.


전형적인 선생님병이 발동한다. 고귀한 이름에 병을 같다 붙이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될 때 가르치려고 드는 습성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당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선배로서 상사로서 가르쳐줘야 할 의무는 있다고 생각한다. 선배로서 후배가 잘 되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의 반영이기도 하다. 자신이 경험해 보고 좋은 것을 추천해 주고 싶다.


하지만, 때와 상황에 맞게 가려서 할 필요성은 있다. 업무지시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리딩할 때는 가르침이 필요 하지만, 상담을 하거나 회의시간에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집중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보고를 받는 순간, 상대방의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편견과 고정관념에 ‘안되’, ‘그게 아니라’, ‘이건 이렇고’ 등의 말을 앞세우기 보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 정도 쳐주면서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입이 근질근질 하다면 내 얘기를 하지 말고, 상대방이 했던 이야기를 한 번씩 정리하면서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입에 가시가 돋을 것 같다면 이런 저런 질문을 통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세 가지 모두, 내 이야기를 잘하기 위한 방법이라기 보다, 상배방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침묵하 위한 방법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일이 ‘잠자코’ 조용히 듣기라고 한다. 침묵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침묵이 불편한 이유는 침묵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더나 선배가 되면 왠지 후배를 가르쳐야 할 것 같고, 조언을 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내 생각은 맞고 너는 틀리니까 내가 말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리더 앞에 침묵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침묵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정작 말을 해야할 직원이 입을 닫는 것이다. '말해 봤자 안될텐데', '내가 한마디 하면 저쪽에서 10마디 하겠지'라는 생각에 입틀막 하게 된다. 이미 경험한 ‘학습된 무기력’ 에 의해서 소통은 막히고, 동맥경화 보다 더 무섭다는 소통경화는 이렇게 발병한다.

보고서나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여러가지 방법과 스킬을 가르쳐 주지만, 가장 강조하는 핵심은 비움에 관한 것이다.


‘보고서는 글이든 비워야 완벽해 집니다.’

뭘 더 쓰려고 하지 말고, 뺄수 있을까를 고민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게 다반사다. 학습자의 글은 더하고 더해져서 길어지고, 보고서는 복잡해 질뿐 빼지는 않는다. 더하기의 기술도 어렵지만, 빼기의 기술은 훨씬 고난도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빼기의 기술, 침묵의 기술을 탑재하고 잘 들어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리더의 제 1 언어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정신과 의사가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본적이 있다.


“사실 저는 별로 하는 게 없어요. 그냥 들어줄 뿐입니다. 적절하게 질문을 하고 내담자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판만 깔아주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치유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자기가 말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되더라구요. 잘 들어주는 것, 이게 상담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사가 정신과 병동(?)은 아니지만, 여기에 어느 정도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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