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성 면도기 시장에서 펼쳐진 두 기업간의 전쟁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두 주인공은 남성 면도기 기업의 골리앗 ‘질레트’와 다윗 ‘달러쉐이브 클럽’이다.
100년 넘게 면도기 하나만 파 온 질레트의 기술력은 나날이 고도화되었다. 2중날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6중날까지 그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바로 그 기술 중심의 사고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고객들은 더 이상 N중날의 면도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객들의 머리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자리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비싼 돈을 들여 그렇게 고급 면도날을 사야 되?’
이때,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든 기업이 ‘달러쉐이브 클럽’이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질레트의 대척점에 섰다. 회사 중심, 기술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며 고객을 그리고 시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5중날이랑 6중날이랑 뭔 차이가 있어?”
“왜 귀찮게 매번 때마다 면도날을 구매해야되?”
오랜 고민 끝에 그들이 던진 질문이자 사업의 방향성이었다. 고객의 관점에서 던진 이 질문을 기반으로 그들은 '시간과 돈을 깎자(Shave Tme, Shave Money)'라는 재미있는 슬로건을 만들고, 면도날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달러 쉐이브 클럽'을 창업했다. 그들이 택한 사업 모델은 면도기와면도날을 저렴한 가격으로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였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달러 쉐이브 클럽은 온라인 시장에서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20%에 그친 질레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간 달러 쉐이브 클럽은 2016년 세계적인 생활기업 유니레버에 10억달러에 인수되었다.
사실 달러 쉐이브 클럽의 사업 모델만 놓고 보면 특별한 것은 없다. 이미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구독 모델 (Subscription Commerce)을 적용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특별함이 빛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기술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의 사고에서 기획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회사를 중심에 놓고 기획을 시작한 Working Forwards 방식이 아니라, 최종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획을 시작한 Working Backwards 방식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Working Forwards
이런 거 만들어서 이렇게 팔면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기획자 -> 상품&서비스-> 고객
Working Backwards
고객들의 문제는 뭐고, 그들의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객 -> 상품&서비스 -> 기획
사실 ‘워킹 백워드’ 는 최근 가장 핫한 기업 아마존이 기획을 하는 방식으로,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조베스(.Jeff Bezos )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업무 방식에 대해 강한 확신을 드러낸 적이 있다.
“워킹 백워드 프로세스는 우리 스스로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지 않는 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방식입니다. 워킹 백워드 프로세스를 여러 번 반복하지 않는 한, 그것이 정말 좋은 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은 워킹 백워드 프로세스가 시간은 오래 걸리고 부수적 작업이 많을지 몰라도, 결국 제품과 서비스를 잘못 만들어 초래하게 될 일들을 해결하느라 들이는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방식 하나로 지금의 아마존이 된 것은 아니지만, 고객중심의 사고를 기반으로 한 기획력이 있기에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당분간 그 자리를 위협받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흔히, 기획이라고 하면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창의력이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이 기획의 본질적인 정의나 핵심은 아니다. 물론 아이디어가 많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언제나 주목받게 마련이다. 여기에 탁월한 기술력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제품과 서비스라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면 그 제품은 훌륭한 쓰레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 아이디어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꿔다 놓은 보리자루나 꿰지 못한 구슬에 비 할 바도 못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은 아이디어를 찾는 싸움이 아니라, 문제를 찾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 문제를 찾는 과정이다. 달러 쉐이브 클럽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상품이든 서비스를 기획할 때 그 중심에 고객을 놓고, 그들의 경험을 분석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야 말로 기획력의 핵심이자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기획을 강의할 때 이렇게 정의하고 시작한다.
‘한마디로 기획은 문제 해결이며, 기획에서 해결은 거들 뿐 슛은 문제가 한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고전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 ‘슛은 오른손이 한다. 왼손을 거들뿐’ 를 인용해 봤다.
많은 업무들이 자동화되고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기에 남들과 차별화된 능력은 결국 기획력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매뉴얼이나 프로세스는 기계가 대체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문제에 공감하고 그들이 가진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나의 아이디어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획력이야 말로 이 시대 직장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기획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기획력을 키우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방법이나 스킬 이전에 기획을 잘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인드 셋과 기본 원칙 3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첫째, 기획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획을 대단한 분석이 필요하거나, 복잡다단한 프로세스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 마디로 기획을 학문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오? 이런 문제가 있네? 이거 해보면 어떨까?’ 라고 툭하고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다.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한다는 자세로 일단 가볍게 시작해 보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지금 시대 맞지 않는 명제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지금 시대 필요한 명제는 ‘일단 발 딛어보고 다시 돌을 놓든 돌을 바꾸던 하면 된다’이다. 물론 상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석 및 근거자료가 필요하겠지만 그 시작만큼은 가볍게 ‘툭’ 했으면 한다.
둘째, 기획을 하기 위해 분석 방법이나 프로세스 먼저 익히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획하면 SWOT 분석, 3C분석, 매트릭스, 로직트리, 고객페르소나, 고객여정지도, 디자인씽킹, 린스타트업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석 방법과 프로세스를 떠올린다. 물론 이런 방법론들은 기획을 효과적으로 보조하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도구 자체가 기획의 핵심은 아니며, 기획을 잘 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아니다.
인사이트를 먼저 키워야 하는데, 도구나 프로세스에 매몰되면 기획은 본질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게 된다. 도구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생각대로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프로세스대로 생각을 하게하면 틀에 박힌 기획, 누구나 할 수 있는 기획만 나올 뿐이다.
차별화된 기획은 고객을 관찰하고 직/간접 경험을 통해 그들이 불편함, 문제의식을 발견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좋은 기획은 컴퓨터 앞에서 검색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고객을 관찰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색에서 시작된다.
셋째, 나랑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획은 비단 경영 기획팀, 상품 기획팀, 서비스 기획, IT 기획 등 기획 부서에서만 하는 업무는 아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든, 사내 행사를 기획하든, 인사 제도를 기획하든 모든 일의 시작에 기획이 있다. 하다 못해 팀 회식을 준비하더라도 회식을 왜 해야하지? 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회식과 시키니까 준비한 회식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기획력은 회사에서 일하든,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분명 하던 일만 하거나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만들어 낼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불편함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 또한 경험이고 실력으로 쌓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마케팅전문가 테오르드 레빗 교수의 말로 마무리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지름 0.6cm의 드릴이 아니라, 지름 0.6cm의 구멍이다.’
즉 우리는 너무 쉽게 회사 입장에서 솔루션(0.6cm의 드릴)만 생각하지만, 정작 고객이 원하는 것은 0.6cm의 구멍(문제) 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면 꼭 드릴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 회사가 아니라 최종 고객 입장에서 제품, 서비스, 제도 등을 기획하는 Working Backward 업무 방식이야 말로 당신을 빛나게 하는 핵심 역량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