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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Aug 25. 2019

제23화:그 집이 맛집인지 아닌지는 니가 결정하는 거야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식당에 갈 때마다 내가 빠뜨리지 않고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사장님, 여기 맛있어요?”


사실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것만큼 우매한 질문도 없는 것 다. 식당이 망하기를 작정하지 않고서야 맛이 없다고 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그 식당을 선택한 내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식당을 선택하는 데 들인 노력에 더해 돈과 시간까지 투자해야 하기에 비록 숟가락을 들기도 전이지만, ‘맛있다’는 확신을 받아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묻는다.


사장님, 여기 맛있어요?”


사장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요. 다 맛있어요.”


여기서 '당연하다는 듯이'라고 쓴 이유는 사장님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는 것이고, '기다렸다는 듯이'라고 쓴 이유는 그렇게 말하는 사장님의 표정에서 ‘너처럼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 참 많아’라는 마음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준비된 답변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사장님의 답변에 안심을 하고 음식을 주문한다. 그런데 사장님의 자신감과는 달리 음식이 맛이 없다. 그냥 먹었어도 맛이 없을 음식인데, 맛있을 거라는 기대까지 고 먹었으니 더 맛이 없게 느껴진다. 내 마음속에 ‘맛있다’라는 기대치가 형성됐는데, 그에 비해 결과가 형편없으니 그 실망감이 배가되서 돌아온다.


사람이 느끼는 만족도는  기대치에 따라서 달라진다. 똑같은 상품과 서비스 앞에 사람마다 만족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대치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족도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는 기대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눈앞의 현상이나 어떤 결과에 대해  내 기대치가 얼마나 투영되었냐 따라 만족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똑같은 칼국수 하나를 먹어도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먹었을 때는 그렇게 맛있었는데,  '완전 맛집', '칼국수 지존'이라는 기대를 하고 가서 먹었을 때는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칼국수 집에 투영된 내 기대치가 컸기에 실제 음식 맛은 변한 것이 없는데도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족도를 '기대치' 대비 '실질적인 결과'함수로 정의해 본다.


[만족도 f(x) = 실제 결과 – 기대치]


위 결괏값이 양의 값이거나 최소한 0에서 형성되면 만족을 하는 것이고, 그 값이 커지면 커질수록  만족도는 높아지게 되어있다.


관련해서 ‘행복을 풀다’의 저자 모가댓은 자신의 책에서 행복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에게 일어난 사건이 의 기대와 일치하거나 나의 기대를 넘어서면 나는 행복하다.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태도”이다. 이것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결국 내가 만족하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 결괏값을 키우거나, 아니면 내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통찰이 있다.  후자는 내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고, 전자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몇 배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무언가에 내가 조금 더 만족하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차라리 내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이 낫다. 나를 둘러싼 환경, 사람, 진로 등 내가 선택한 결괏값의 크기를 바꾸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내 소소한 행동습관 하나 바꾸는 것도 어려운 데 내가 아닌 남이나 외부이 어떤 것을 바꾸기는 더 힘들다. 그래서 결과를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내 기대치를 조정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외부의 어떤 것이 불만족스럽다고 해서 그것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세대들의 회사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한다고 한다. 불만이라는 것은 내가 기대하는 수준 대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벌어지는 감정인데, 요즘세대들의 높은 기대치에 비해 실제 회사가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연봉 4.000만 원을 받고 싶은데 3,000만 원 밖에 안되고, 멋지고 뽀대 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복사나 하고 회의 자료나 만들고 있다. 소통하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데 불통은 기본이고, 까라면 까라는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요즘세대들이 맛집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회사는 실제 맛집이 아니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더 크다. 그래서 지금의 힘듬과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기대치 배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블라인드에 글도 올려보고, 뒷담화도 해보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쏟아내는 그 불평불만을 제일 많이 들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일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바꾸지 못할 것을 바꾸려고 엄한데 힘쓸 바에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기대치를 관리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아래 세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1. 회사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회사는 그런 곳(?)이다. 또는 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원래 사람이 모인 곳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힘든 곳이다. 힘들고, 짜증 나고,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도, 회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회사에는 큰 기대 안 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2.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도 좋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면 분명 몇 가지는 찾을 수 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많은 들을 할 수 있는 곳이고, 배울 것도 있는 곳이다.  찾아봐서 그렇지 찾아보고자 한다면, 다른 회사보다 우리 회사가 좋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게다물질적으로 풍부하다. 사무실,  내 책상,  인쇄, 커피까지 공짜인 곳이 회사이다. 당연하고 우습게 보이지만 직장인이 아니라면 가질수 없는 것들이다. 이건 내가 프리랜서가 되고보니 느끼는 점이다.


3. 나를 좀 돌아보자.

나도 예전에는 나만 빼고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회사의 모든 것이 싫었다. 그래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뒤에서 나를 투덜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다. 이미 정착되어 있는 문화나 분위기가 있는데, 오히려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나만 기대치가 달랐던 것이다.  회사는 그리고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은 나와 다를 뿐 틀리지 않을 수있다. 남들과 다른 기대치로 인해 나름 만족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불평불만의 원인을 외부로 귀인하기 전에 과연 내 기대치가 다른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어느 날 지인과 식당에 갔다. 나는 하던 데로 똑같은 질문을 한다.


“사장님, 여기 맛있어요?”


지인이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혀를 끌끌 차더니 질문을 바꾼다.


“사장님. 이 집에서 뭐가 제일 맛있어요?”


사장님이 멈칫멈칫하시더니 대답하신다.


“저희 집은 김치찌개 하나는 끝내줘요.”


우리는 그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고 나올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지인이 참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선택을 했으면 그 안에서 최선을 찾는 것이었다. 비록 그게 최상은 아닐 지라도 최선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회사라는 식당에 불평불만만 하는 요즘세대들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단 식당에 들어갔으면 맛집이냐고 묻지말자. 우문우답일 뿐이다. 대신 식당 안에도 맛있는 것을 찾아보자. 분명 맛있는 음식있을 것이다. 정없다면 내가 가진 기대치를 좀 달리해보자. 그전보다는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집이 맛집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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