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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Sep 07. 2019

제30화: 내 옷은 Fashion인가 Passion인가

사이글, 살면서 나는 이런 것을 배웠다

몇 년 전 일이다. 친한 후배가 가로수길에 커피숍을 열었다고 해서 간 적이 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가로수길은 대한민국 패션의 성지였다. 아래는 양복바지요 위에는 저고리 같은 양복 상의를 입고 걸을 때면 늘 불편함이 밀려오는 곳이었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의 패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패. 알. 못의 공부가 되는 곳이었다. 가게들도 어쩜 그리 다들 트렌디 한지, 한 발 딛기가 어렵게 눈이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역시나 아저씨가 된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밀려오고, 왠지 내가 오면 안 되는 곳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길 건너편에서 내 마음을 홀리는 광고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정장은 남자의 갑옷이다

 

어느 맞춤형 정장 가게에 붙어있는 플래카드의 문구였다. 단순히 손님을 끌기 위해 써놓은 문구라고 하기에는 그 무게감이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상한 울림과 짠함까지 전해진다. ‘갑옷’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단순히 멋있음, 튼튼함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물론 가게 주인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갑옷의 의미에는 끝도 없이 쏟아지는 일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방어구'이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쏟아지는 상사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탄복'이기도 하며,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거래처 앞에 무릎까지 꿇어야 하는 자의 '보호막'이라는 의미까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입고 있는 정장의 무게를 느껴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정장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옆에 있는 선배가 입고 있는 정장에는 어떤 무게가 있을까?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정장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정장을 입고 다니거나, 그저 패션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겠지만, 누군가가 입고 있는 정장에는 저마다의 무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는 치열한 마음, 결혼을 앞두고 결혼 자금을 만들어야 하는 간절함,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절박함, 태어날 2세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한 책임감 등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사람은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달라진다. 캐주얼을 입고 있을 때, 운동복을 입고 있을 때, 정장을 입고 있을 때,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의 마음가짐이나 행동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옷은 단순히 물리적인 그 무엇이지만, 그것을 입으면서 마음까지 같이 입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옷은 단순히 옷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결정하는 무언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때도 있다.

 

올해 내 나이 마흔, 지금 내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불안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된 후, 오늘도 불안하고 내일은 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돌아보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모아 놓은 재산도 이렇다 할 경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이런 불안함을 극복하고 현재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간절함과 열정에서 나온다. 이 마저도 없으면 버틸 수 없다. 간절함과 열정으로 현재의 불안함과 맞서고 미래의 성공에 대한 꿈을 키우며 하루를 채우고 있다.  매일 아침을 그런 마음으로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그래서 나에게 옷은 Fashion 이기도 하지만, Passion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패션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입는 열정인 것이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거울 앞에 서서 여전히 불안한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물었다.


'오늘 내가 입고 있는 옷은 Fashion인가 Passion인가?' 


대답은 항상 같다. 그리고 오늘 내가 입는 Passion은 내 하루를 지배했고, 내 하루를 바꿨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는 분명 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으로 오늘을 견뎌낸다.


간절함과 열정은 나에게 늘  가장 단단한 갑옷이자,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준다. 언젠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간절함과 열정이 있었기에 삶을 바꿀 수 있었다'라는 명제에 대해 내 스스로가 증거가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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