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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Sep 09. 2019

제31화: 공부머리 말고, 일머리로 모드 전환해보자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전쟁을 치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작되는 출근 전쟁을 필두로, 회사 도착과 동시에 상사와의 일전을 치러야 한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면 조금이라도 빨리 식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 선점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며, 퇴근 후 아이들과의 육아 전쟁 한판을 더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하루가 마무리된다. 전쟁(?) 이란 표현이 조금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은 치열하게 흘러가고 그 전쟁을 버텨내며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전쟁은 요즘세대들이 취업에 이르기까지 치른 전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웠지만, 그 이면에 그들이 치러야 하는 전쟁은 잔혹했다. 교복을 입자마자 학원가와 독서실을 전전하며 대입 전쟁을 치러야 했고, 20대가 돼서는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는 취업 전쟁을 치르느라 내 젊음을 스펙과 바꿔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하지만, 사원증을 받고 첫 월급이 통장에 꽂히기도 전에 또 한판의 전쟁이 시작된다. 일과의 전쟁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지금까지 치른 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혀 다른 기술을 요구한다. 소위 말하는 일머리를 필요로 한다. 학점을 받고, 토익 점수를 올리고, 자격증을 따기 위한 전쟁에서 챙긴 전리품 ‘공부머리’ 와는 조금 다른 기술이다.


일은 공부와는 달리 공식을 외우고,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에 가깝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에 가까운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게다가 내가 찾은 답이 정답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까지 요구한다. 내가 한 일을 정확하게 정리해서 보고하는 것까지 마무리해야 일이  끝난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해볼 만하다. 더 큰 난관은 문제 출제자의 유형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팀장, 임원, 선배, 거래처 등의 이름을 달고 각기 서로 다른 답을 요구한다. 그들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부터 난관이 시작된다.


일을 잘하기 위한 스킬은 수십, 수백 가지에 이르고 손에서 일을 놓는 순간까지 배워야 한다. 일을 잘하는데 필요한 스킬을 다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개하는 것은 더군다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모든 일의 시작이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3가지 기술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상사에게 일을 받는 순간, 일을 수행하는 순간, 일을 마무리하고 보고해야 하는 순간 발동해야 할 스킬이자, 일머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1. 일을 받기 전 : 질문을 아끼지 말라.


업무 지시를 내릴 때 생각보다 친절한 상사는 많지 않다. 본인 일도 바쁘고 귀찮기에 알아서 해오기 바라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신이 지시하는 일을 본인도 모르고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앵무새처럼 떠들어댈 뿐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외계어를 남발하고는 한다.


“김주임. 그거 있지? 말 안 해도 알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 밖에 없는데..)  


“매출 떨어지고 있으니까 보고서 써와”

(갑툭튀 보고서? 기승전 보고서?)


더 이상 말을 섞기도 싫은 마음에, '알아서 해가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상사에게 일을 받는 것을 수명(受命)이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수명(壽命)이 다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해서 가져간 경우 대부분은 결론이 정해져 있다. 최선을 다해서 가져간 내 보고서 앞에 상사의 오만상은 찌그러지고, 말 대신 한숨만 나온다. 갈 곳 잃은 시선은 먼산을 응시한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 순간 상사와 나 사이에 필요한 말은 딱 두 마디면 충분하다.

 

상사 : 누가 이렇게 해오라고 했나?

직원 : ('늬가 그렇게 해오라고 했잖아'라는 말을 삼키며) 다시 해오겠습니다.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사람 없고, '아' 다르고 '어' 다른 일이 자주 연출되는 곳이 회사이다. 상사는 ''라고 지시했는데, 나는 ''로 알아듣는 경우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상사의 업무 지시에는 질문으로 대응해야 한다. 질문을 통해, 상사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질문은 딱 세 가지면 충분하다. 일의 목적, 아웃풋, 보고 형태만 확인해도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 일의 목적은? 왜 하는 것인지?”

“최종 아웃풋 형태는 무엇인가?”

“최종 보고 일자와 최종 보고자(엔드유저)는 누구인지?”




물론 상사가 알아서 정확하게 지시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때론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다. 상사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차라리 포기하고,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 빠를 때가 있다.


2. 일을 하는 중


정신없이 과제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보면 한 가지 빠뜨리는 것이 있다. 바로 중간보고다. 바빠서 놓치기도 하고, 귀찮아서 안 하기도 하고, 가장 결정적으로 제대로 완성해서 최종 결과물을 보여줘야 지라는 생각에 미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생에는 한 방이 있을지 몰라도 일에서 한 방을 찾으면 안 된다. 제대로 해서 한 방에 딱 보여주고, 칭찬받아야지라는 기대는 여자 친구 서프라이즈 행사에서나 통할 법한 일이다. 회사는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고 상사의 정보력이나 기억력 또한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최소 한번, 가능하면 여러 번 상사와의 접촉을 통해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합의해 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합의해 놓는'이라고 함은  중간보고는 마치 나중에 닥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보험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중간보고를 하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전체적인 일이나 프로젝트 수행의 방향성이나 과정을 점검하고, 디테일한 내용도 수정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다. 일적인 부분 외에 추가적으로 내 노력에 대한 성과도 어필하고 결정적으로 중간보고를 통해 내가 상사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인식까지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상사라는 존재가 가급적 피하고 싶고, 상사와 말을 섞는 것은 아침에 건네는 '안녕하십니까'와 퇴근할 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 기회나 접촉 기회가 잦아질수록 친밀도도 상승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일을 배울 기회도 많아진다.


3. 일을 마무리하는 보고 시


일이 마무리되고 상사에게 보고하는 순간, 두 가지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와 '그 일을 완수하기까지 배경이 어땠는지'는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묻어두거나, 회식자리 에피소드 정도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상사에게 보고 하는 순간만큼은 결론과 핵심만 나가야 한다.


보고를 할 때는 무조건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방식이 좋다. 이미 일의 배경이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사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때 소위 동네 아주머니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주저리주저리, 기승전결 방식으로 보고할 경우, 상사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한마디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또는 “결론이 뭐야?”


만약, 나는 도대체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거나,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PREP 기법을 활용해 보기를 바란다. Point (결론), Reason (이유, 근거), Example (사례), Point (결론, 의사결정/요청사항)로 보고하는 기법이다. 결론부터 말하고, 결론에 대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고, 사례를 들어 이유와 근거를 강화하고, 다시 한번 결론을 강조하거나 요청사항을 제시하는 보고 방법이다.


PREP기법은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대세 아닌 대세 기법이고, 비교적 간결하고 쉬운 방법론이기에 강력하게 추천해 본다. 지면의 한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니,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고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찾아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기 바란다.


'공부머리''일머리'가 상관관계는 있을지언정 인과관계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공부머리' '일머리'가 다르다는 것이 이 글의 논조는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판과는 전혀 다른 판이 펼쳐지고 있으니, 그 대비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희망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의 내가 주변의 동기나 동료보다 고학력, 고스펙은 아니더라도 일하는 기술과 일머리를 장착하면 그 추진력으로 1년 후, 2년 후, 5년 후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회사가 주는 고통과 일의 무게를 견뎌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취업이라는 문 하나 열고 첫발을 디뎠다. 전혀 다른 새로운 게임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취업 전쟁에서 쌓은 전리품은 내려놓고, 다시 한판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이제 일머리로 모드 전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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