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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Sep 15. 2019

제33화: 만족도는 기대치하기 나름이다

꼰대라서 할 말은 할게

오늘은 일요일. 온 가족이 늦게까지 숙면을 취하고 나서, 중국집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한다. 오전 11시쯤 중국집으로 전화를 건다.


“짜장 두 개, 탕수육 하나, 군만두 하나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는 사람은 없다.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 있다.


“얼마나 걸려요?”


중국집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계적인 대답이 들려온다.


“40분 걸립니다.”

(허걱. 40분이라고?)

 

피크 타임도 아니고 40분이나 걸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집구석에 밥도 라면도 없는 우리 가족은 그 순간 철저히 을이 되어 기다리기로 한다. 다행히 진짜 ‘40분씩’이나 걸려서 도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가족의 만족도는 극으로 치닫는다. 40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내 기대치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물론 배달 시간보다, 음식 맛이 더 중요하겠지만 일단 시간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비슷한 현상은 치킨집이나 피자집에서도 발견되고, 전화가 아닌 배달음식 어플을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어플로 주문을 완료하고 나면 ‘도착까지 1시간’, ‘50분 후 도착예정’ 이라고 메세지가 뜨지만, 실제 그렇게 도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최소 10분 이상 일찍 도착하고, 1시간 걸린다고 한 족발집이 20분 만에 배달을 완료하는 뜻밖의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을 일반적이라고 볼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동네 배달음식점에서 만큼은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이는 분명 예전과는 달라진 풍경이다. 예전에는 도착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중국집이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갑니다.",  "방금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제시간에 도착해야 할 짜장면은 함흥차사요, 몇 번 더 전화를 해서 닦달을 해야 겨우 도착하고는 했다. 오죽하면 한국인 10대 거짓말 중에 ‘지금 출발했습니다” 가 꼽힐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음식점들은 왜 하나같이 처음부터 20분 걸린다고 말하고 하지 않고, 40분 걸린다고 말하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심오한 전략 하나를 발견해 본다. 일명 기대치 배반 전략이다. 상대방의 기대치를 낮게 책정해 놓고, 그 기대치를 훨씬 상회하는 결과를 만들어 냄으로서 상대방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아무 기대 안 하고 찾아간 식당이 맛집이 될 수도 있는 원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 결과값이 같을때 그 결과에 투영된 내 기대치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앵커링 효과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이 어떤 정보를 접할 때 최초 접한 정보가 Anchor(닻)가 되어,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는 것이다. 어느 옷집에 들어가서 내가 처음 본 물건이 100만 원짜리라고 하면 그 100만 원이 Anchor(닻)이 되어, 그다음부터 접하는 80만 원, 50만 원짜리는 싸게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 접한 옷이 10만 원이라면, 50만 원짜리는 언감생심이요, 20만 원짜리 옷도 비싸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일상생활이나 업무를 할 때, 또는 회사 생활을 하는 데 있어 나와 상대방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주효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근본적인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상대적인 만족도를 결정할 수 있는 소소한 스킬이 될 수 있다.


먼저 일상 속으로 가보자.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아뿔싸, 너무 멋을 내느라 아무래도 늦을 것 같다. 지하철 코스를 보니, 대충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 그럼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 보자.


“야. 지금 보니까. 2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먼저 자리 잡고 기다려. 미안”


이때 친구의 머릿속에는 '이 그지 같은 놈이 20분이나 늦는다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20분 지각'이라는 기대치가 자리하게 된다. 이때 내가 10분 만에 딱 모습을 드러내며,


“많이 늦었지. 미안”이라고 말하면, 그나마 빡이 돈 친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누그러 트릴 수 있다.  


어차피 상황은 똑같다. 내가 10분 늦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말하고, 상대방의 기대치를 조정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친구의 기분은 달라질 수 있다. 11시라는 기대치에서 11시 10분이라는 결과와 11시 20분이라는 기대치에서 11시 10분이라는 결과의 만족도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물론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최선이요 예의겠지만, 피치 못할 경우 이런 전략을 사용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스킬은 상사에게 보고 기일을 말하거나, 일의 납기일을 말하는 순간에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일은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제시간에 맞춰 처리가 되고 보고되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가끔 열혈 사원이 범하는 실수가 있다.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서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의욕치를 잔뜩 집어넣고 이렇게 말한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퇴근 전까지 가져오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애매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말하고 실제 시간을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일에는 늘 변수가 존재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끼어든다. 그래서 일명 쿠션 시간이라는 것을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내가 3시까지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도, 일단 5시까지 끝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딱 3시에 일을 끝내면 상사는 '생각보다 빠르네'라고 생각하며, 기대치 배반을 느끼고 만족도가 조금 더 올라가 수 있다. 상사에게는 업무의 질과 시간, 모두 중요하다. 이때 업무의 질은 내 실력과 노력의 결집체지만, 조삼모사와 같은 시간 관리 스킬을 활용한다면 상사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효과를 볼 수도 있으니, 적절하게(?) 활용해 보자.


마지막은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 취준생에 이어 퇴준생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하다.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다. 내 젊음을 희생해서 바늘구멍 뚫고 들어간 회사는 내가 기대하던 곳이 아니다. 일, 돈, 사람 3가지 중에 두 가지 이상 만족하면 참고 다닐만한 곳이 회사라고 하는데, 1가지도 충족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빠르면 3개월, 평균 1년, 최대 3년을 주기로 퇴사를 고민한다.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내가 생각했던 곳이랑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퇴사라는 선택까지 고민하게 된다.  


청운의 꿈을 안고 회사에 입사하면서, 처음부터 퇴사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합격 통지를 받고, 신입사원 교육을 받고, 사원증과 명함을 손에 쥐면서 내 기대치는 한 껏 올라간다. '회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보상해줄 거야', '지금부터 내 꿈을 펼칠 거야', '멋진 선배, 상사가 가득하겠지', '의미 있고 멋있는 일들을 할 거야'라는 기대치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기대가 깨지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하다. 내 기대와 180도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회사는 나를 제외한 다른 곳(?)에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것 같고, 나는 특별한 1인이 아니라 그저 수백/수천 명 중 최말단 1명일 뿐이다. 회사는 내 꿈을 펼치는 곳이 아니라 회사 사장의 꿈을 키워주는 곳이며, 멋진 상사 동료보다 이기적인 직장인이 더 많은 것이 회사의 현실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는 자기 이익, 안위가 먼저다.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때나 인간미가 발휘된다. 멋진 기획서나 보고서를 쓰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일을 꿈꾸지만 현실은 회의장 세팅이나 복사 업무가 많고, 상사나 선배의 뒤치다꺼리만 하다 하루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다. 회사에 기대하지도 말고, 기대지도 말자. 차라리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부정하기보다, 내 기대치를 내려놓는 것이 낫다.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크게 달라지거나 바뀌는 것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에 분노하느라 내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회사에 실망한 나 자신을 위로하느라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회사를 비난하거나 욕할 필요도 없다. 그 회사에 들어가라고 떠민 사람도 없고, 그 선택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찾아 이직을 꿈꾸지만, 기본적으로 회사라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회사마다 차이가 있고 좋은 직장과 그렇지 못한 직장을 나누는 기준은 있겠지만, 결국 비슷한 문제나 전직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문제로 힘들어 지는 곳이 회사이다. 차라리 내 기대치를 조금만 더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에게 도움되는 일, 회사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버티는 편이 낫다. 어차피 다녀야 한다면, 피할 수 없다면, 다니는 동안 만큼이라도 마음 편하게 다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문제는 경제야'라고 말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문제는 기대치야.”


불평불만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 불평불만을 제일 많이 듣는 것은 결국 내 귀고, 내 마음에 쌓여 사리가 될 뿐이다. 주어진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기대치를 바꾸거나 내려놓자.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럴 수도 있지'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마디가 지긋지긋한 직장생활 15년을 버틸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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