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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Sep 18. 2019

제34화:요즘세대가 챙겼으면 하는 디테일의 새로운 정의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어느 날, 전직장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용건은 현재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 '파나소닉 체험 부스 운영 공모전'을 하는데,  기획서 지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은 없었지만, 옛정을 생각해 선뜻 허락을 하고 초안을 받아봤다.


‘헉스. 똥물에 발 담갔구나’


손댈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대학생들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였지만,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잔뜩 써놨을 뿐 기획의 흐름도 컨셉도 없었다. 한마디로 오래 보고 있기 힘든 기획서였다.  


일단 전체 컨셉으로 ‘파김치’라는 키워드를 던져줬다. 나소닉 빠진 청춘에게 어스라는 카피를 제시해주고, ‘위로 Zone’과 ‘재미 Zone’으로 부스를 구성해서 일상에 지친 대학생들의 스트레스 아웃을 통해 브랜드 경험을 높이는 것으로 스토리 라인을 잡아줬다.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일단 여기까지 해서 기획서를 제출했고, 다행히 본선까지는 진출할 수 있었다. 이제 결선 진출을 위한 PT만이 남았다.  


그리고 며칠 후, 불현듯 나에게는 파나소닉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절친 후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일단 기획서를 보내주고 ‘어떻게 결선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냐?’라고 피드백을 구했다. 후배가 기획력이 있는 친구는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나 기획에 대한 피드백은 없었지만, 뜻밖의 지점에서 빈틈을 파고 들어왔다.


“형. 이거 면도기 그림 좀 바꾸지 그랬어? 파나소닉에는 일자형 면도기 밖에 없어. 여기 기획서에 삼각형 면도기를 이용한다고 되어있네”


아차 싶었다. 뭔가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디테일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은 마음에, 소소하지만 중요한 뭔가를 놓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파나소닉 담당자가 뭐라고 생각했을까’로 이어졌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이 친구들은 우리 제품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구먼. 준비가 부족했구나.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냉혹했다. 결선 진출 실패였다.


공모전을 준비한 후배는 왜 면도기 그림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사소한 오류일까? 단순 실수일까? 아니면 평소 성격처럼 꼼꼼하지 못해서 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디테일은 단순히 ‘꼼꼼했냐 그렇지 않았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디테일은 일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이다. 잘하려고 하는 의지,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자 실력이다. 후배의 기획서가 결선까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그 면도기 그림 하나 때문이 아니다. 단지 면도기 그림 하나 실수한 것이지만, 그 실수 하나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지만, Tvn 드라마 성공의 산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스토리와 독특한 구성 외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디테일이 있었기에 18%를 넘는 시청률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 용어 하나, 제품 하나, 골목길 소품 하나까지 정확하게 재현해 냈다. 심지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극 중 장소 봉황당의 전화번호까지도 정확하게 복기해냈다.


물론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 얼굴 보기 바쁘고, 러브라인 체크하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을 확인하기도 시간이 모자란 판에 이런 디테일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냐만, 결국 사람들은 안다. 그 사소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자 한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을 말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반드시 인정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디테일이라고 쓰고, 꼼꼼함 대신 일에 대한 자세라고 새롭게 정의해 본다.


디테일 = 꼼꼼함 이전에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한 노력과 의지의 총체적인 산물


그래서 '디테일 한가? 디테일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대했고, 그 일에 얼마큼의 최선을 다했는가? 와도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디테일에 강하네’라고 칭찬을 할 때 보면, 그 말의 의미를 단순히 ‘꼼꼼함’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디테일은 단순히 꼼꼼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꼼꼼함이라기보다는 뛰어난 관찰력과 거기서 나오는 통찰력이자 치밀함이며,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의 집합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디테일은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는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 내고, 성공한 사람들 뒤에는 반드시 이 디테일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혹시 디테일이 떨어진다거나, 꼼꼼함 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 '나는 왜 꼼꼼하지 못할까?'라고 자책하기 전에, 아래와 같이 먼저 질문을 하고 일을 시작해 보자.  


‘나는 이 일을 진지하게 대하고, 이 일을 제대로 잘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일이나 하자'가 아니고 '일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디테일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강의 미팅을 갔는데, 잠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담당자가 후배 직원에 대한 하소연을 시작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도대체 보고서를 가지고 올 때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고쳐줘야 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내용이 부족한 것은 기본이요, 한 장 넘기기가 무섭게 오타, 수치 오류, 단어 오류 등이 발견되다 보니 시간도 많이 들고 진도도 더디다는 것이었다. 보고서 고치려고 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어떠겠냐고 피드백을 해줬다.


'네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잘하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은 있는 지를 생각해 보고 다시 써서 가져오라고'


물론 기본적인 구성이나 형식은 선배의 지도가 필요하겠지만, 오탈자나 기본적인 실수는 의지의 문제지 실력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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