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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사람이 말하면 짜증이 날까?

사이글, 살면서 나는 이런 것을 배웠다

친한 사진 감독님 중에 생긴 거(?)랑 안 어울리게 말할 때마다 영어를 자주 섞어 쓰는 분이 있다. 영어가 유창하신 분도 아니고 제대로 영어를 배운 적도 없기에, 간혹 잘못된 영어 단어를 남발하는 귀여운(?) 실수들을 하고는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커피숍에 가서, 거래처에 가져갈 4잔의 커피를 포장하는데,


"그거 커리어(Career)에 좀 담아주세요."


라고 말하며, 커피를 사면서 자기 경력(Career)을 챙기는 기술을 선보인다. 커리어(Career)가 아닌 캐리어(Carrier)가 맞는 표현이지만, 외래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간다.


때로는 반대의 실수도 종종 하신다. 커리어(Career)를 캐리어(Carrier)라고 말하며, 남의 경력을 짐짝 취급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과장님은 왜 어학연수 안 다녀오셨어요? 캐리어(Carrier)에 도움이 되셨을 텐데."
 
물론 어학연수를 갈 때 캐리어(Carrier)를 가지고 가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어학연수가 내 리어(Carrier)에 도움이 되진 않을 텐데, 왜 자꾸 실수를 하시는지 모르겠다.  


때론 나와 카톡을 하다가 내가 새로 나온 ‘이모티콘’이라도 보내는 날이면, 이런 답장이 날아오기도 한다.


“그 ‘이티모콘나한테 선물요.”


여기까지는 다 이해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간다. 외래어이고 영어 표현이니까 충분히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하는 말실수 중 내가 참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을 혼용해서 쓰는 경우이다. 특히 ‘다르다’라고 말해야 할 타이밍인데 ‘틀리다’라고 말씀하실 때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려울 때가 있다.


물론 일반적인 대상을 비교할 때 하는 실수는 그나마 견딜만 하다.


“와. 저차는 색깔이 틀리네.”

“이 집은 지난번 냉면집이랑 맛이 틀리네.”


하지만, 남과 자신의 의견을 비교해서 이야기할 때 쓰는 '틀리다'가 전하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임 과장님 생각은 저랑 좀 틀리네요”

“그 작가 사진은 내 사진 스타일이랑은 틀린 것 같아요”


라는 표현에서 ‘다르다’ 대신 사용하는 ‘틀리다’라는 말에는 꼭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잘 모르고 사용하는 것이다. ‘꼭 그렇게 따져야 해?’, ’너무 깐깐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핏 보면 두 단어의 의미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를 막론하고 두 단어를 혼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은 용서가 안된다. 두 단어의 반대말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다르다 <-> 같다,  틀리다 <-> 옳다.


‘다르다’라는 말은 ‘같지 않다’라는 의미로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할 때 차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가치 판단이 배제된 표현이다. 반면, ‘틀리다’는 ‘옳지 않다’의 의미로, 여기에는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어느 정도 말하는 사람의 주관이 반영된 표현이다. 누군가는 정답이고 누군가는 오답이란 뜻이 포함된다.


그래서 혹시 '다르다'라는 말 대신 '틀리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볼때면,  속으로 '나는 맞고 너는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설마 그것까지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틀리다, 틀리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혹시 저렇게 말하면서 ‘남의 생각이 옳지 않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옛날에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겉으로 내뱉는 한마디 말에는 알게 모르게 내 생각과 인식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해지고 웃음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생각이 말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 습관이 알게 모르게 내 의식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것이다.


관련해서 ‘워피안(Whorfian) 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워프라는 학자가 주창한 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우리의 인식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언어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과 생각은 그렇게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내가 생각한데로 말이 나가기도 하고, 말하는 데로 생각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무의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모시던 팀장님이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전날 집에서 대판 하고 나온 탓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져서 물어보니, 역시 부부싸움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어제 저녁이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었는데, 그때 팀장님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 분리수거는 내가 해줄게. 오늘은 내가 좀 도와줄게.”


아니, 이 말이 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래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사모님의 말을 듣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집안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 안 하지? 그러니까 '해줄게'라고 말을 하지. '도와줄게'가 아니라 내가 할 게가 맞는 말이라고!!”


물론 우리 선한 팀장님은 충분히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해줄게’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말에는 사모님의 말처럼 ‘분리수거는 내일 아닌 니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사용한 ‘해줄게’, ‘도와줄게’라는 말이 그날 싸움이 있기까지 그런 인식을 강화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부 싸움에서 팀장님은 완벽한 패배자였으며, 팀장님이 말한 ‘분리수거는 내가 해줄게’라는 말은 완벽하게 틀. 렸. 다라고 생각한다.   


비록 사소한 말 습관이지만 거기에는 알게 모르게 내 생각과 가치관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 말들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서 내 인식을 강화하기도 한다.  대단한 노력이 관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말 습관 하나가 관계를 바꿀 수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기분이 좋아지고, 누군가는 심하게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쓰는 말 중에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 없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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