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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Oct 05. 2019

싸움의 기술, 칭찬의 기술

상대의 마음을 얻는 언어

지난 10년간 캐논에서 모셨던 팀장님은 칭찬에 인색(?)한 분이셨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인색한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팀장님은 칭찬에 인색(?)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팀장님은 왜 직원들 칭찬을 잘 안 하세요?

팀장: 나? 원래 그런 거 잘 못해. 그리고 그런 걸 꼭 말로 해야 하냐? 허허…


‘허허’하고 웃으시지만, 그 말 뒤에는 앞으로도 칭찬에 인색할 예정(?)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팀장님은 칭찬이 좋은 것도 알고, 필요한 것도 알지만 여타의 이유로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셨다.


이런 상황은 비단 팀장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 리더들에게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리더들이 칭찬을 잘하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칭찬하는 것이 어색해서, 해본 적이 없어서, 꼭 말로 해야 하나?, 칭찬하면 건방져질까 봐, 칭찬할 일을 한 적이 없다 등이라고 한다. 리더들의 걱정과 우려가 반영되어 있는 답변이기도 하고,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칭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칭찬은 부정적인 효과보다 직원들을 동기 부여하고 능동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칭찬의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고 돈이나 기타 보상보다 효과가 떨어질 수는 있지만, 공짜로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이것 만한 것도 없다. 상사의 인정과 칭찬 한 마디가 직원들의 근속 기간을 1달씩을 늘릴 수 있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니 지갑과 귀도 열고, 입도 열어서 칭찬이라는 것도 해보자. 그러나 무턱대고 한 칭찬은 득 보다 실이 클 수도 있으니, 칭찬이라는 것도 상황과 상대에 맞게 좀 더 의미 있게 해야 한다. 입에 밴 말이나 습관적인 말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의미 있는 칭찬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 칭찬을 할 때는 막연하게 하지 말고 구체적인 행동이나 특징을 잡아내서 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멘트, 상투적인 말은 상대방의 기분을 잠깐 좋게 만들 수는 있지만, 돌아서고 나면 입에 발린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칭찬을 할 때는 정확하게 구체적인 특징을 잡아서 하는 것이 좋다. 칭찬하고 싶은 포인트를 정확하게 집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후배가 쓴 보고서에 대해서 칭찬을 할 때, ‘이번 보고서 좋네’라는 칭찬도 좋지만, ‘이번 기획의 컨셉이 좋다’, ‘중장기적 대응 방안이 새롭다’, ‘실행계획이 현실적이다’ 등으로 구체적으로 칭찬 포인트를 잡아서 해주는 것이 더 의미 있고, 듣는 사람의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다. 이렇게 칭찬을 하면 칭찬을 받는 사람은 상대방이 ‘내 기획안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생각해 보고 하는 말이구나’라고 생각해서 그 칭찬의 의미가 더 커지게 된다. 진정성 없이 막 던지는 칭찬보다는 무엇이 좋은지, 무엇을 잘했는지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칭찬해 보자.


둘째, 칭찬에도 순서가 있다. 긍정에서 부정으로 하는 것보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기대치’를 형성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계속해서 칭찬하게 되면, 다음에도 칭찬 릴레이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빡’ 하고 마지막 결정타가 날아든다.


‘근데 너는…. 성격이 너무 덜렁덜렁해. 그러다 사고 친다. 좀 더 디테일하게 챙기자’


근데로 시작하는 말 한마디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앞에서 했던 모든 칭찬이 한 방에 날아간다. 부정적인 피드백 한마디가 깔리는 순간 앞서 만들어 놓은 칭찬이라는 요리가 망가진다. 기대치 위반 효과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정-> 긍정’의 순서보다 ‘긍정-> 부정’의 순서를 말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인의 전형적인 특성상 좋은 게 좋은 거고 싫은 소리 하기 전에 먼저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시작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칭찬 먼저 해주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 이해해 주겠지’, ‘좀 더 받아들이기 쉽겠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마지막 한마디, 부정적인 피드백이다. 때와 장소를 분리해서 이야기하거나, 꼭 부정적인 이야기와 칭찬을 같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부정-> 긍정의 순서로 바꿔서 하는 것이 좋다. 여러가지 피드백을 섞어서 할 경우, 칭찬은 제일 마지막에 하자.


셋째, 칭찬은 사물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하는 것이 좋.
  
캐논에 다닐 때 여러 가족이 어울려서 여행을 가면 사진 찍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사진을 잘 찍어서가 아니라 단지 카메라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상한 듯, 당연한 이유 때문에 나는 항상 찍사로 빙의하여 우리 가족뿐 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 사진까지 찍어야 했다. 급한 성격 탓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진을 정리한 후, 다른 가족들에게 공유해 준다. 고된 작업이지만 나름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카카오톡에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는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칭찬 한마디를 기대해 본다. 몇 사람이 칭찬을 날려온다.


"이야 사진 죽인다. 얼마짜리 카메라로 찍은 거냐?"


기대와는 달리 칭찬은 사진 촬영 기술이 아닌 카메라에 집중된다. 기분이 살짝 상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반격을 해본다.


“야 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만드는 예술이야. 찍는 사람이 잘 찍어야지, 카메라는 기계일 뿐이라고!”


카메라가 좋아서 사진이 좋을 수도 있지만,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노력과 열정이 더 좋은 사진을 만든다. 그 열정과 노력을 칭찬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오늘 옷 이쁘네’보다 ‘옷 잘 어울리네’가 더 좋은 칭찬이다. ‘옷 이쁘네’라는 칭찬은 옷을 만든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 옷을 선택하고 그 옷을 입어서 잘 어울리는 사람을 칭찬해 주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칭찬이다.


넷째,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구체적인 칭찬이나 사람에 대한 칭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칭찬하는 것이다. 어떤 성공이나 성취, 일의 결과에 대한 칭찬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그 사람의 노력과 땀의 의미를 칭찬할 줄 알아야 한다. 성공한 겉모습은 꼭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칭찬을 한다. 그래서 그 노력의 의미를 알아주는 칭찬이 더 의미 있고 감동적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인정하고 칭찬할 수 있는 기술이 진정한 고수의 칭찬 기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기에 덧붙여서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인정 외에 앞으로의 기대사항까지 담으면 그 효과가 배가 될 수 있다. 칭찬이 지속적인 힘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잘할 거라 믿는다."

"부장님 보고도 잘했고, 앞으로 사장님 보고자료도 잘 만들 것이라 기대할게"


다섯째, 때로는 제 3자에게 흘리는 칭찬이 더 큰 효과를 만들 수도 있다.
  
때로는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칭찬보다 제 3자에게 흘리는 칭찬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김사원을 칭찬하는 데 김사원이 아닌 박 대리에게 하는 방식이다. 그럼 그 칭찬은 언젠가 다시 김사원에게 흘러들어 가게 되어 있다.


박 대리 : 야 팀장님이 그러는데... 너 그때 그 행사 진행 진짜 잘했다면서?

김사원 : 진짜요? 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직접들은 칭찬도 기분이 좋지만, 제삼자에게 들은 칭찬은 왠지 더 사실처럼 느껴진다. 왠지 더 진정성이 느껴진다. 게다가 나의 좋은 점이 나뿐만이 아니라 제삼자에게도 알려졌고, 나아가 그 3자가 메신저가 되어 다른 곳에 가서도 나에 대한 칭찬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심어준다. 칭찬의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제 3자에게 흘리는 칭찬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 글의 제목은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빌려왔다. 찌질이 고등학생이 은둔 고수에게 싸움의 기술을 연마해서 최강 싸움꾼이 된다는 내용이다.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꽤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고 맷집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 가짐이라는 사실이다. 내 안의 ‘두려움’을 걷어 내는 것만으로 싸움을 잘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었다.   


칭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칭찬의 기술을 익히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칭찬을 잘하기 위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은 결국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칭찬하지 못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일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잘한다는 마음 이전에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저 친구가 알고 있네', '저 친구는 저것을 잘 아네', '김사원은 저런 장점이 있네' 등으로 남을 인정하고 칭찬할 수 있는 마음이 더 훌륭한 선배로, 팀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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