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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Oct 14. 2019

제45화: 젊은꼰대, 그대여오라. 아 사랑스런 젊은꼰대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오랜만에 부탁할 일이 좀 있어서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초장부터 부탁 얘기를 꺼내기가 좀 그래서, 근황 토크로 시작해 본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던 중, 사촌 동생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슬며시 브런치 얘기를 시작해 본다.


 “야 오빠 브런치에 글 쓰는 거 아냐? 링크 보내줄게. 구독과 좋아요 좀 꾹꾹 눌러라”


5분 뒤 카톡으로 답변이 온다.


‘오빠 글 너무 좋다. 읽고 배울게’


예상했던 내 기대는 와르르 무너진다.


카톡에 선명하게 찍힌 메시지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오빠. 난 꼰대가 아니라서. 사양할게”


순간 웃음이 난다.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왜 난 저게 꼰대의 말처럼 느껴질까?

 

인터넷에 꼰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보면 이런저런 꼰대의 특징이 나오는데, 그중 항상 순위권에 오르는 것이 정작 본인은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꼰대라는 단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너무나 잘 알고, 호박씨 대상 1순위가 된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기에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만큼 꼰대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씌여져 있고,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꼰대=상종 못할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실제 꼰대인 사람도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꼰대가 될까 두려운 사람들도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특히 직급이 올라가고, 나이가 많을수록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꼰대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사회적으로 오명이 씌여진 그 한 마디가 듣기가 싫어서, ‘나까지 굳이’, ‘뭐하러’, ‘그러려니’ 등의 말을 속으로만 삼키고 그냥 넘어간다. 속으로는 답답하고, 입이 근질거리지만 나이 든 세대에게 내려진 꼰대 주의보로 인해 속앓이만 할 뿐이다. 기성세대는 이렇게 오늘도 표리부동 하며, 꼰대와 안꼰대 사이에서 고뇌하고 내적 갈등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과연 꼰대는 특정 세대의 전유물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꼰대는 어느 특정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의 생각과 말을 어느 ‘정도’로 듣고, 어느 ‘정도’로 수용하느냐의 ‘정도’ 차이가 꼰대를 가르는 기준이지, 윗사람이고 선배라고 해서 무조건 꼰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살아온 세월이 오래되고 경험이 많을수록 ‘경험칙’이라는 것이 쌓이게 된다. 경험에 근거한 나만의 규칙에 의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나이 든 세대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 안에서 생각한다. 20 대건, 30 대건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살아온 경험에 비춰서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세월, 시대적인 흐름, 자신들의 논리를 앞세워 우리 젊은 세대들이 맞고, 늬들이 하는 얘기는 옛날 얘기, 과거에나 통했던 얘기, 시대에 뒤쳐지는 얘기라고 이야기하며 꼰대로 몰아세운다. 과연 이 생각은 맞는 생각일까?


물론 상대적으로 윗사람과 선배가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반대 선상에서 윗사람과 선배의 말을 무조건 반사하고 거부하는 젊은 세대는 과연 꼰대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미 젊은 세대가 ‘꼰대’라는 단어를 독점하고, 나이 많은 기성세대를 겨냥하는 말로 사용하기 때문에 세대적인 문제로 치부되기는 했지만, 내 눈에는 왜 ‘나는 꼰대가 아니라서, 오빠같이 윗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듣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대리 3년 차 사촌 동생이 꼰대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기성세대를 향해 꼰대라는 꼬리표를 아무렇지 않게 붙이는 젊은 세대는 꼰대가 아닐까? 실제로 꼰대를 비난하는 만큼 그들도 그 아래 세대에게 비슷한 행동을 하며 꼰대 짓을 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회사에서 숱하게 겪은 일이기도 하고, 최근에도 주임, 대리급 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심심치 않게 소재로 나오는 이야기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 그러는 거는 아니잖아?’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논리로 모든 기성세대나 리더가 꼰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신입사원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이해가 가지 않는 리더들의 행동을 보며 이런 생각 해봤을 것이다.


‘왜 저래?’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어느덧 1년 차가 되고, 선배가 되고,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 안에 숨어있던 꼰대 본능이 발동되기 시작한다.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의 반복되는 실수에 짜증이 나고,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저렇게 하지?’라고 생각하고, ‘좀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후배의 행동에 멋지고, 용기 있다는 생각보다는 ‘좀 더 근거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꼰대’라는 족쇄가 내 입을 틀어막는다. 괜히 한 소리 했다가 후배들에게 꼰대로 찍힐 이유를 만들지 않는다. 내 선한 동기가 꼰대라는 오명을 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할많하않’ 할 뿐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을 판단할 때는 ‘의도와 동기’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남의 행동을 판단할 때는 보여진 행동만을 가지고 판단한다.  그래서 후배에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건넨 한마디도 꼰대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속내를 보지 못하고 겉으로 보인 말과 행동으로 판단하니, 내가 한 말은 모두 꼰대어라고 밖에 들리지 않는다. ‘잘하고 있어’, ‘잘했어’, ‘잘될 거야’라고 달콤한 위로를 보내는 사람들은 좋은 선배, 멘토라로 추앙받지만, 조금이라도 듣기 싫은 소리, 잔소리를 하면 꼰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일부로 꼰대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지만,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차라리 젊은 꼰대로 살자. 꼰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자. 다만 여기서 말하는 꼰대의 의미가 치명적인(?) 꼰대는 아님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각자 자리에서 할 말은 하는 꼰대, 필요한 얘기는 해주는 꼰대,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것을 알려주는 꼰대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할많하않’ 하지 말고, 꼭 해야 할 말은 눈치 보지 말고 속 시원하게 하고 살자는 말이다.  


긴 글을 영화 ‘친구’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흔히 친구의 명대사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아부지 머하시노? 건달입니더’,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등을 떠올린다. 영화 ‘친구’하면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대사들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대사들 외에,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자 깡패인 준석이가 자신을 찾아온 친구에게 하는 대사이다.


“내가 우리 집이 제일 좆같다고 생각할 때가 언젠지 아나? 우리 엄마 입원하고 내가 중학교 때 한번 가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삼촌이라고 부르는 새끼들 중에서 한 놈이라도 내를 뭐라고 하는 놈이 없는 기라, 씨바! 그때 한 놈이라도 내를 패주기라도 했으면 혹시 모르겠는데…


이 대사가 왜 이렇게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지 모르겠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성장시킨 것은 쓴소리, 듣기 싫은 소리, 기분 나쁜 소리였다. 지나고 보니 다 도움되는 얘기였고, 나를 단단하게 했고,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 기분 좋고 달콤한 위로는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었지만, 실제로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 말들은 따로 있었다. 이 시대 젊은 꼰대들이 더 많이 꼰밍아웃하고, 그런 선배들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형식적인 위로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해주는 선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격하게 환영한다. 이 시대 젊은 꼰대들을 말이다.




*이번 글의 제목은 가수 김수철 님의 '젊은 그대' 가사를 패러디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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