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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Oct 10. 2019

제44화: 꼰대도 누군가의 자부심이다.

앞후니까 꼰대다

예전에 캐논이라는 회사에 다닐 때, 바로 옆 건물에는 소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커피숍이 있었다. 항상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기본 10분은 기다려야 커피 한잔을 받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커피 맛도 좋았지만, 강남 한복판에서 2천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커피숍이 유명한 것은 싼 가격 때문이었지만, 직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도 그 유명세를 한몫 거들었다. 디자인이 특별할 것 없는 이 유니폼이 유명해진 이유는 유니폼 뒤에 새겨진 글씨 때문이었다.


‘남의 집 귀한 자식’

‘누군가의 소중한 막내아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빠 딸’


이 유니폼이 가지는 위력은 대단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글씨 때문에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만 했다. 커피를 주문받고 뒤돌아 설 때 보이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그래. 나한테 커피를 파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들, 자랑스러운 남자 친구, 소중한 사람이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을 대할 때 좀 더 조심하게 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비슷한 효과는 여느 콜센터의 안내 음성에서도 발견된다. ‘지금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는 우리 회사의 상담원은 우리 회사가 소중히 여기는 직원이자 누군가의 소중한 딸입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실제 이런 안내 멘트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장치들로 인해 뭔가 단단히 화가 나서 욕을 하려던 사람 몇 명쯤은 그 욕을 거두고 조금 더 정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이런 소소한 조치로 인해 소위 감정 노동으로 시달리는 이들의 고충과 소중함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소소한 장치 하나가 사람의 마음 가짐을 바꾸고, 태도를 달리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어떤 깨달음이 이어졌다. 나와 아무 이해관계도 없고 어쩌다 한번 마주치는 사람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태도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하루 8시간 이상 같이 일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뛰는 동료들에게는 왜 이런 마음을 품어보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었다. 관련해서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가 있다.   


캐논에 다닐 때 회사 내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특급 꼰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분이 내 자리로 전화를 하셔서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면으로 대들고 반박했다. 더 이상 전화로 할 이야기가 아니다 싶어 자리로 가겠다고 했다. 5분 내로 내려갔는데, 화장실에 가셨는지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잠깐 다리가 아파서, 부장님 책상 의자 뒤쪽에 걸터앉았다. 부장님의 책상 전면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보는 부장님의 책상 전면이었다. 책상 곶곶에는 가족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특히 세 아이와 찍은 사진 속의 부장님은 내가 아는 그 부장님이 아니라 천사표, 세상 좋은 아빠였다.


뭔지 모를 짠함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일로 마주하는 사람이기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회사에서 회계팀 부장이라는 탈을 쓰고 연기를 해야 하기에 꼼꼼해질 수밖에 없고, 깐깐하게 굴 수밖에 없고, 때론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회사라는 무대에서 자기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느라 꼰대가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부장님의 말씀에 수긍하고 다시 하겠다고 할 수 도 있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대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부장님의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세 아이 아빠의 자부심까지 짓밟은 꼴이 되었다. 사진 한 장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가끔 사무실을 돌아다닐 때 직원들의 책상을 쓰윽 보고 지나가는 습관이 생겼다. 무슨 일 하나 보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내가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가족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 속의 그들은 그 누구보다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직장생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비록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사수, 선배, 팀장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하기에 찌든 모습이고, 때로는 싫은 소리도 하고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직장인 이전에 누군가의 가족이고 자부심이었다.


그들을 한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부심으로 대하기 시작하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무시하고, 뒤에서 욕하기 전에 존중하고 수용하려는 태도가 생긴 것이다. 물론 회사는 철저히 일로 만나고 일로 이야기하는 곳이지만, 내가 대하는 그 사람도 누군가의 자부심임을 생각하는 것으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달리 할 수 있었다.  


꼰대라는 이름의 상사도 조직 내 피라미드의 어디쯤에 위치한 나와 같은 안타까운 한 명의 직장인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진장인이 된 그들도 업무만 배제해 놓고 보면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그렇듯이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친구인 사람이었다. 회사라는 무대를 걷어내고 보니, 명의 개인이자 누군가의 자부심인 사람이었다. 같이 일하기 싫은 선배, 말도 섞기 싫은 팀장, 마주치기조차 싫은 상무님, 비록 지금은 그들을 대하는 순간이 어렵고 힘들지만, 누군가의 희망이고 자부심이라는 생각으로 대하면 지금의 그 고통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단지 회사에서 부장이라는 옷을 입고, 팀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서 꼰대라고 치부하고 무시하기 전에, 그 사람의 가치나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꼰대를 대할 때 ‘아 저 꼰대 xx ‘ 라고 부정적인 감정이 튀어나가기 이전에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버지’, ‘누군가의 소중한 남편’ 등의 보이지 않는 유니폼을 입혀서 봐주면 어떨까? 이런 생각만으로 꼰대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일로 평가하고 일로 마주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도 누군가의 자부심임을 잊지 마자. 서로의 자부심은 서로가 지켜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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