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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Nov 06. 2019

제53화: 강요를 권유라고 착각하는 순간, 꼰대된다

위기의 꼰대 구출작전, 꼰대탈출 넘버원

세상에는 참 애매한 것들이 많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을 좀 더 알아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애매한 것들은 왠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부모님께 명절 세뱃돈은 얼마를 드려야 적정한지?'

'친구나 친척 결혼식에 축의금은 얼마를 해야 하는 것이 적당한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팔걸이는 왼쪽이 내 것인지 오른쪽이 내 것인지?'


하는 사소한 애매함부터 사람 사이의 관계나 감정 문제에 있어서의 복잡성이나 애매함은 더 커져만 간다. 특히 요즘들어 가장 애매함을 느끼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부분은 '권유'와 '강요' 사이의 애매함이다. 어디까지가 권유이고, 어디부터가 강요인지 애매할 때가  많다.


바오로라는 세례명은 있지만 성당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나에게 매번 '성당에 가라, 기도해라'라고 말하는 엄마의 선한 의도는 권유인지 강요인지, 술자리에서 이미 토하기 일보 직전인데 사랑한다 말하며 내 잔을 가득채워 주시고 원샷을 기대하는 전 직장 상무님의 호의는 권유인지 강요인지, 곱창의 곱자만 들어가도 학을 떼는 성미인데 매번 회식장소로 가성비 최고의 레트로 감성 곱창집을 제안하는 친한 선배의 제안은 권유인지 강요인지 매번 고민에 빠지고는 한다. 


물론 나에게 어떤 제안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고, 나를 위해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이미 경험해 본 바 좋아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선한 마음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그것은 분명 권유가 맞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때론 그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권유가 강요로 느껴질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성인의 경우, 나름의 경험을 통한 호불호가 있고, 이미 가치관이나 판단기준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때론 선한 의도의 권유가 강요로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유와 강요의 동상이몽이 시작된다. 서로 간의 인식 차이에서 강요와 권유의 갈림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인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30명 남짓한 광고회사에 다니는 친한 선배 이야기인데, 이 선배 회사의 사장님은 등산 마니아라고 한다. 여기까지 말하면, 그 다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고 생각한다. 많은 드라마나 코미디의 단골 소재로도 사용이 될 만큼 사장님이 등산을 좋아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100%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사장님이 산을 좋아하면 그 밑에 임원, 그리고 그 밑에 부장, 과장님들까지 어쩔 수 없이(?) 산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게 된다. 소중한 주말 내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고 등산에 참여해야 한다. 직장인의 비애중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회사는 한 달에 한 번 산에서 전사 워크숍이자 단합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것도 토요일에 말이다. 초기에는 수도권에 있는 산으로, 당일 치기로만 진행하던 것이 밑천이 바닥나자 전국에 있는 산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 사장님께서는 늘 등산이 끝나고 나면, 아주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좋은 공기 마시고, 정신 수양하고, 공짜 점심에 게다가 공짜 술까지 주는데,  누가 산에 오기 싫다고 하겠어?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니야?"


여기다 대고, 감히 ‘그게 아닙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직원들의 입장을 대신해서 감히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어쩌면 사장님을 제외하고 모든 직원이 다 싫어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은 사장님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정말 산이 좋아서 등산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사장님과 함께라면' 보다 '가족들과 함께라면'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라면은 뭐니 뭐니 해도 사장님과 함께 라면보다 가족들과 함께 라면이죠.


사장님께서는 딱 권유만 하시고, 적어도 선택권은 직원들에게 남겨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것은 사장님 자유이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직원들의 자유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직원들에게 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자유와 분위기를 조성해 주셔야 사장님께서도 사장님과 산을 오르는 것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사장님 위의 회장님께서 '야 박사장 너 나랑 스쿠버 다이빙가자' 라고 했을 때의 기분을 잠깐이라도 상상해 본다좀 더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해 주기 바라는 선한 의도가 관계를 치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출발해도 결국 결과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선한 의도가 강요가 아닌 권유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아래 세 가지 원칙 만큼은 지켜졌으면 한다.


첫째, 반복해서 말하지 말자.

딱 한 번 또는 최대 2번까지만 권유한다. 듣기 좋은 소리도 삼세번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좋은 얘기도 세 번 이상 반복하면 듣기 싫고, 강요로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내가 제안한 내용이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다면 이 또한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강요로 느껴질 수 있다.


둘째, 선택권은 상대방에게 남겨두자.

권유가 강요가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선택권은 상대방의 몫으로 해야 한다.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과 시간을 상대방에게 허락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가 아니라, ‘이렇게 해볼래?’라는 질문이 먼저여야 하고, 그 질문에 따른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내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싫은 소리를 하거나, 싫은 티를 내는 순간 권유는 강요로 바뀌게 된다. 권유까지만 하고 ‘아니면 말고’라고 편하게, 쿨하게 생각하자.  


셋째, 내 생각은 가장 늦게 이야기한다.

권유의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어린 경우에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면, 그렇게 하자고 못 박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선배나 상사의 말에 토 달기보다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그저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먼저 말하기 보다, 아랫사람이나 후배들의 의견을 먼저 듣는 편이 좋다. 생각보다 좋은 의견이 많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진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회사라는 곳은 수십, 수백 가지의 이유 때문에 싫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중에 내가 하기 싫은 것,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고 그걸 해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인생인데, 회사에서는 왜 그렇게 하기 싫은 일을 많이 시키는지 모르겠다. 물론 업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부하직원에게 내 생각을 강요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업무 외적인 부분이나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만큼은 강요가 아닌 권유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때로는 강요를 할지언정, 강요를 권유라고 착각하고 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주말 오후에 유부남 후배에게 전화해서 온라인으로 스타크래프트 자고 했는데, 이것은 또 강요인지 권유인지를 고민하며, 긴 글을 애매하게(?)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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