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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Dec 20. 2019

제71화 :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2006년 6월 24일. 독일월드컵 대한민국 예선 3차전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고, 상대팀은 유럽의 전통 강호 스위스였다. 하지만 이날 대한민국은 실력 차이 이전에 심판의 오심에 울어야 했고, 16강 진출 턱밑에서 좌절해야 했다.


이날 경기에는 여러 번의 오심과 편파판정이 있었는데, 그중 최악은 대한민국이 2번째 골을 먹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이 0:1로 뒤진 상황에서 스위스 공격수가 오프사이드 반칙을 했고, 부심도 오프사이드 선언을 했다. 그 순간 우리 선수들은 진행하던 플레이를 멈췄다. 하지만, 끝까지 볼을 잡고 있었는 스위스 선수는 슛을 해서 골을 집어넣었고, 주심은 이를 득점으로 인정했다.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수년간 땀 흘리며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물론 명백한 오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심이 최종 선언을 하지 않았는데, 왜 선수들이 플레이를 멈추고 공을 포기한 것일까? 만약 선수들이 끝까지 플레이를 해서 공을 걷어냈다면 결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날 심판의 오심은 최악이었고, 대한민국의 패배와 16강 진출 실패에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할 실력과 더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면 오심은 오심으로 남았을 뿐, 경기 결과를 바꿀 만큼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든 스포츠 경기에는 심판이 있다. 물론 철저하게 훈련받고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간인 이상 때론 실수도 한다. 오심이 발생한다. 때로 이런 오심 때문에 경기 결과가 바뀌고, 누군가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오심은 경기를 망치고 관중들의 등을 돌리는 주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다. 없으면 더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기도 하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라면, 최악의 오심도 받아들이고 끝까지 경기에 임해야 한다. 그 오심에 불만을 가지고, 남은 경기에 임하면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불만이 앞을 가리게 되면, 경기력에 영향을 끼쳐서 최상의 플레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심 때문에 졌다'가 아니라 '오심에도 불구하고 이겼다'라는 명제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진짜 프로이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오심은 스포츠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우리의 경기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내 얼굴처럼(?) 어쩔수 없이 출생부터 오심인 경우도 있고, 학교에서, 사회에서 수많은 오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중 회사는 생각하기에 따라 가장 많은 오심이 난무하는 곳이다. 오심의 향연이 펼쳐진다.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 불공정과 불합리가 판을 치고, 저런 인간도 세상에 있나 싶을 정도의 사람들이 활개를 친다. 한국이 스위스에게 당했던 것 이상으로, 몇 배는 더 큰 오심이 난무하는 곳이다.


‘월급은 왜 이것밖에 안 줘?’

‘꼭 9시까지 출근해야 해?’

'야근을 왜 해야 하지?’,

‘복지가 왜 이 모양이야?’,

‘팀장이 팀장 맞아?’


내 기준으로 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오심 투성이다. 그중 특히 조직 내 존재하는 상사라는 사람들은 최악의 오심으로 꼽히기도 한다. 오심 오브 더 오심이다. 회사에 대한 불만 1순위이기도 하고, 조기 퇴사 이유에서도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지’

‘저 사람이 내 미래이면 어떻게 하지?’

‘인간적인 모독을 견딜 수 없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답이다. 퇴사만이 살길이다. 하지만 그전에 질문을 바꿔보자.


‘저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사람이 내 미래가 아니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딜 가나 저런 인간들은 꼭 있다.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자. 어떻게하면 인간적인 모독을 견딜 수 있을까?’


물론 상황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할 수는 있다. 모든 ‘탓’을 밖으로 돌리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자세가 한 뼘 성장한 나를 만들어 줄 것이다. 상황 탓, 남 탓, 회사 탓은 잠시 잠깐은 위로가 될지언정 결국 내 에너지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될 뿐이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자세가 더 강하고, 빛나는 나를 만들어줄 초석이 될 것이다.


현재를 담보하고, 지금을 희생하면 취업이라는 문이 열리고, 끝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온 곳은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다.


“취업을 하면 끝날 것 같았는데, 뭔가 그냥 문을 하나 열고 나온 기분이더라고."
-드라마 미생, 김대리 대사 中-


문을 하나 열고 나갈 때마다 더 큰 세계가 있고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문은 이어지고 이어진다. 기대와 희망보다 더 큰 난관과 좌절이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른다. 꽉 막힌 회사 규정,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선배와 상사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녀야 할지를 고민하며, 방황할 수도 있다. 몇 개의 문을 더 열고 나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막막함이 이어진다. 요즘 세대들 앞에 놓인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때로는 내 인생을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내 기준에 맞게 판단해줄 심판을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심투성이의 경기장에서 좌절하고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순간도 올 것이다. 그때마다 오심만 탓하고 좌절하고 물러설 것인지, 아니면 오심을 넘어서 오심도 울고 갈 실력을 키울 것인가?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메시나 호나우도는 오심이 난무해도 경기에서 골을 넣고,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때로는 질 때도 있지만, 오심을 탓하지 않는다. 그 오심을 극복하지 못한 자신들의 실력을 탓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슈퍼스타라고 부르고, 존경해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축구. 야구. 배구 등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에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인공지능과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나 실수를 보조한다. 당연히 오심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사람이 주가 되어 경기를 진행하는 이상 여전히 오심도 존재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좀 더 좋은 문화, 시스템, 제도 등이 도입되어 회사에 존재하는 오심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오심은 존재한다. 그걸 버티는 힘을 키우고 이겨내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 오심에 흔들리지 않고 그 위에 올라서는 실력을 갖추면, 더 이상 오심이 오심이 아닌 순간이 온다. 오심에 울지 말고, 오심도 울고 갈 실력을 키워보자. 메시나 호나우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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