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마음을 얻는 언어
오래된 트로트 가요 중에 ‘도로남’이라는 노래가 있다. ‘도루묵’도 아니고 ‘도로남’이라니 재미있는 제목인데, 이 노래 가사는 좀 더 재미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라고 말하며, ‘I’와 ‘ㅏ’가 만들어 내는 절묘한 차이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일종의 말장난 일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게 어쩌면 다 장난 인지도 모른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한 긋 차이에서 장난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같은 생각이나 의도라고 할 지라도 ‘아’라고 말하는 경우랑 ‘어’라고 말하는 경우랑 다른 의미가 전달된다.
관련해서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아’와 ‘어’의 차이처럼 겉으로 비치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그 말에 담기는 의미와 감정은 크게 달라지는 말들이 몇 가지 있다. 평소 주변 지인들의 말 습관에서 발견한 3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비호감 말투 vs 호감 말투]
그럴 수가 있냐? vs 그럴 수도 있지
너 때문에 vs 너 덕분에
너는 vs 나는
그럴 수가 있어? vs 그럴 수도 있지.
말끝마다 ‘넌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질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내 상식과 경험을 기준으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경험해 본 적도 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네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기반으로 말하는 방식으로 좀 더 호감 가는 말투라고 생각한다.
사실 세상 어떤 일이라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해석해서 바라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없다. 내 집에 놀러 온 친구가 꽃병을 깨도, ‘유리니까 깨질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기다리는 버스가 늦게 와도, ‘차가 미리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다. 옆 테이블에서 어린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어린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면 그냥 주변 소음에 불과한 일이 된다. 단지 말투 하나 바꾸는 것뿐인데, 상대방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좀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자세가 된다.
반면 ‘그럴 수도 있지’가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방어하는 용도로 사용될 때이다. 자신이 뭔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뭐 어떠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이다. 물론 자신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도 필요하지만, 뭔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거나 미안함을 끼쳤을 때는 사과를 먼저 하는 것이 좋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나를 방어하지는 말자. 상대방이 실수를 했을 때에는 관용의 표현이지만, 자기가 실수를 했을 때 사용하게 되면 뻔뻔하거나 오만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지’는 상대방을 향한 언어로 남겨야지,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로 삼아서는 안된다.
때문에. vs 덕분에.
지인 중에는 습관처럼 ~때문에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너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네. '너 때문에 맛없는 것 먹었네.', '너 때문에 시끄러워서 일을 못하겠네.' 등으로 때문에 라는 말을 달고 산다. 물론 때문에 라는 말 자체에는 어떤 일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역시 그 내면에는 뭔가를 탓하기 위한 부정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사실 나도 '~때문에'라는 말을 누구보다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장난스럽게 쓰는 말이기도 했다. '너 때문에 분위기 다 망쳤네, 너 때문에 될 것도 안되네.' 등으로 누군가를 핀잔주거나 갈구기 위해서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상대방의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베스트셀러 ‘말투 덕분에, 말투 때문에’라는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의 저자 이오타 다쓰나리도 평소에 이런 부정적인 말 습관 때문에 비호감으로 낙인찍혀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내 때문에 지각이네.”
“김대리 때문에 시간을 다 빼앗겼네”
화법의 중심에 ‘때문에’가 있었다.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때문에'라는 말 대신 '~덕분에'라는 긍정적인 말투를 습관화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강력한 한마디를 전해온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가 아니라, '네 덕분에 이렇게 됐어'를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되자. 아주 작은 단어 하나 차이가 내 인상을 결정하고, 인생을 결정한다'
반면에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있다. '니 덕분에 시간을 줄였네', '00 덕분에 해결이 수월했네', '00이 추천해준 덕분에 맛있게 먹었네.'등으로 이야기한다. 감사와 긍정의 화법이다. 남 탓, 상황 탓하기 전에 감사할 일을 찾는다.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는 화법이다. 관련해서 일 잘하는 사람, 성공한 기업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파나소닉의 회장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적이 있다.
하나님은 저에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 가난입니다. 집이 몹시 가난했던 덕분에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허약한 체질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했던 덕분에 항상 운동에 힘써 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무식입니다.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닌 덕분에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 물어가며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가난, 허약한 체질, 무식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가난, 허약한 체질, 무식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성공의 반열에 오르고 나서 되돌아봤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사 그런 사고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라는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너는. vs 나는.
평소 대화 중에 ‘너는 왜 그러냐’ , ‘너는 왜 조심성이 없니?’, ‘너는 보고서를 이거밖에 못쓰냐’ 등으로 너를 중심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책임과 비난을 상대방으로 향해 쏟아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상대방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무안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때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종종 변화를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거나, 때로는 반항심이 들기도 한다. 변화를 해도 내가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데,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이때 활용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나를 주어로 하는 화법이다. 일명 I Message라는 화법이다. 위에서 말한 You Message라는 화법과 대비되는 방법이다.
I Message 화법은 문제가 된 행동, 그 행동이 나에게 끼친 영향이나 나의 감정, 그리고 나의 바람이나 요구를 전달하는 순서로 말하는 방식이다. 물론 수학 공식처럼 정확하게 정의된 방식은 아니기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으나, I Message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책임 대신, 내 감정과 내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관련해서 아주 가까이에 I Message 방식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와이프이다. 가끔 와이프의 잔소리가 기분 나쁘지 않게 들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끔 혼자 집에서 놀고 있는 딸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 ‘전화도 안 받고 뭐하냐’라는 말 대신, ‘서연아. 서연이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엄마가 걱정이 많이 되잖아.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전화를 잘 받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가끔씩 내가 술 먹느라 정신이 팔려서 연락도 안 하고 늦게 들어갈 때, ‘야.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냐’라고 말하는 대신 ‘연락도 없이 늦게 오니까 내가 걱정이 되잖아. 출발할 때 카톡 좀 해.’라고 말한다. 이상하게 잔소리로 들리지 않고, 걱정하는 말투로 들린다. I-message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비호감 말투 vs 호감 말투]
그럴 수가 있냐? vs 그럴 수도 있지
너 때문에 vs네 덕분에
너는 vs 나는
비호감을 일으키는 말투 세 가지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쓰이기는 하지만, 그 말이 뻗어 나오는 뿌리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로 나 중심적인 사고이다. 좀 더 깊이에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말은 생각을 비추는 거울이다. 단순히 말투이고 입에 밴 습관일 수도 있지만, 말은 사고의 반영이기도 하고, 말이 사고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요즘 것들, 꼰대라고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기 전에 내 말투가 담고 있는 반영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모든 오해와 갈등은 여기서부터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점 하나에 님이 될 수도 있고, 남이 될 수도 있다. 점 하나에 울고 웃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호감 가는 말투로 인상을 바꾸고, 나아가 인생을 바꿔보자.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