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설득하는 언어
사람들은 종종 일상생활이나 업무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내 주장이나 의견만 전달하고 그에 대한 이유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말하고자 하는 ‘What’은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한 이유 ‘Why’가 생략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키거나 부탁을 하는 경우, 대부분 목적을 생략하고 자신의 요구나 지시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결과 보고서 써와’
‘지난달 A제품 판매현황 자료 준비해와’
‘회계팀에 지난달 영업이익 자료 요청해’
등으로 앞뒤 다 잘라 먹고 업무 지시만 할 뿐,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바쁘고 귀찮아서 그러기도 하고,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여기에 내가 의도하는 바를 상대방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끼어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극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켜본 상사라면 한 번쯤은 내가 요구한 것에 미치지 못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상사는 ‘얘가 왜 이러지?’, ‘이렇게 밖에 못하나’ 등으로 일을 한 사람을 탓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전에 일을 시킬 때 이 일을 왜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고, ‘왜냐하면’이라는 한마디를 생략한 자신의 탓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단어이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자 엘렌 랭어 (Ellen Langer)의 복사기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랭어는 복사기 앞에 줄을 선 사람들 맨 앞으로 끼어들기를 시도하며 어떤 말을 했을 때, 성공률이 높을 것인가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세 가지 변수를 가지고 각각의 성공률을 조사해 봤는데, 그 결과가 꽤 흥미롭다.
첫 번째는 양해의 말만 하고 나서 끼어드는 방식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먼저 복사기를 사용하면 안 될까요? '
이때의 성공률은 60%였다.
두 번째는 앞의 방식에 이유를 덧붙인 방식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먼저 복사기를 사용하면 안 될까요? 왜냐하면 지금 제가 굉장히 바쁜 일이 있거든요'
이때의 성공률은 94%였다.
사실 여기까지는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극적인 것은 마지막 세 번째 경우이다.
'죄송합니다만, 먼저 복사기를 사용하면 안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복사를 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이라는 단어만 사용했을 뿐, 사실 그 뒤에 붙인 이유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동어반복일 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때의 성공률도 무려 93%에 달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 첫째, 때때로 우리 뇌는 언어의 내용보다 형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왜냐하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 뒷말을 듣지 않아도 왠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에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수락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둘째, 신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이유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마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듯한 욕구 충족의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셋째, 결론에 더해 이유를 설명하고 듣는 방식은 인간이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 그에 따른 이유를 설명해 주는 방식은 우리가 가장 익숙한 스토리 구조이기에 높은 설득력을 가지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한다.
이처럼 어떤 말이나 의견 뒤에 ‘왜냐하면’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사람은 설득력을 높일 수 있고 듣는 사람도 이해력을 높이고 의미까지 부여되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제 막 일을 시작하거나, 회사에 적응하는 단계의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할 때,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일을 하는 사람이 일의 의미를 생각하며 일하게 된다.
딱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목적을 중심으로 내가 왠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둘째, 향후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의 이유나 목적을 설명해주면, 일을 하는 사람은 조각이나 부분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고 전체 프로세스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셋째, 대안을 생각하거나 창의적인 일처리가 가능하게 된다.
혹시 지시한 내용을 이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의 목적을 알려주면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집계'를 요구하는 상사의 지시에 집계가 없으면 거기서 끝이지만, 서류 뭉치를 묶기 위한 상사의 의도를 알 수만 있다면 '스템플러'를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콜라'를 찾는 상사의 요청에 어젯밤 숙취로 고생하는 것을 안다면 '이온 음료'나 '사이다'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대리나 과장의 직급이 되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나면 일 처리가 자연스럽고 소위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입사원이나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사람은 상사의 말이 당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수 있다. 이때 단순히 What만 이야기하지 말자. 업무 지시에 더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나 목적에 대해서 간략하게라도 설명해 주는 것은 어떨까? 아마 단순 업무 지시를 할 경우보다 좀 더 정확하게 가치 있는 일을 해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설득의 언어이자, 배려의 언어인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직장 내에서 더 많이 활용되고, 자신의 요구만 전달하기보다 그 이유까지 전달하는 방식에서 세대 간 좀 더 원활한 소통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