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2000년 초. 나는 겨우 재수생 딱지를 떼고 최종으로 두 군데 대학에 합격했다. 서울에 있는 일반대학과 지방에 위치한 의과대학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갈 대학이 없어 초라하기 그지없었는데,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년간 착실히 골방에서 썩어 지내던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임상 병리사로 평생 의사의 그늘에 가려 힘겹게 사셨던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했던 효심 가득한 아들(?)은 의대를 가고자 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 지방 의대의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OT에 참가하고 있을 때였다. 한창 술 마시고 동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찰나에 지방 의대에서 17차 추가합격 통보가 온 것이다. 이미 시작된 서울에서의 화려한 생활과 연일 계속되는 즐거운 OT에 효심 가득한 아들의 마음은 증발해 버린 지 오래였다. 의대에 등록하겠냐는 입학처 직원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한치의 고민도 없었다. 17차 추가합격이라는 사실도 썩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의대와의 이별을 고하고, 4년간의 대학 생활과 2년간의 군대 생활을 보냈다. 힘든 취업 과정을 거쳐 한국능률협회라는 회사에 인턴으로 취업을 했고, 1년간 박봉의 인턴 생활을 거치면서 정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급여나 기타 조건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불평불만만 하면서 회사 생활을 이어 나갔다. 술만 먹으면 스멀스멀 '의대 갈 걸’, ‘내가 지금 의사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그렇게 후회와 불만으로 점철된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후회에 방점을 찍은 사건이 있었다.
학창 시절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못했던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을 장례식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는 대신 내가 포기했던 그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화려한 인생을 꽃피우고 있었다. 그날도 빨간 스포츠카에 미모의 여자 친구와 함께 문상을 왔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얼굴도 더 멋있어진 것 같았다. 제대로 후광 효과가 발동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시골 출신들이 주로 가진다는 서울권 대학 졸업이라는 알량한 자존심과 쥐꼬리 만한 월급뿐이었다.
그날 새벽,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후회를 넘어선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xx새끼. 그동안 뭐하고 산거냐?’
꿈도 목표도 없었다. 좋은 대학 나왔다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삶을 낭비했을 뿐이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분하고 억울했다. 나보다 잘된 그 친구에 대한 시기심이기도 했고, 앞으로 내 인생이 더 막막할 것만 같은 현실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나 자신에 대한 처절한 후회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의 후회 끝에, 어떤 메시지가 가슴속에 떠올랐다.
후회할 일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처절한 후회와 자기반성 끝에 어떤 절박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절박함은 독기로 이어졌고, 내 안의 열정으로 불러일으켰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그 날을 기점으로 다시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다시 재수생 시절의 그 절박한 상황으로 돌아가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지독한 후회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루를 꽉꽉 채우면서 후회 없는 하루를 사는 것밖에 없었다. 술병 대신 책을 손에 잡았고, 출/퇴근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듣던 음악 대신 영어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드라마 다시 보기 대신 경제매거진을 보고, 독서를 했다. 늘 공부하고, 배우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처음에는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조금씩 지쳐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똑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끝까지 버티게 했다. 다시 몇 년을 더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한 번에 확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그런 노력이 하나하나 쌓여서 능력이 되었고, 남들이 알아주는 실력이 되었다. 역치를 넘어서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하루하루의 점들이 연결되어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고, 회사 내에서는 연봉이나 직급에서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순간, 더 이상 월급에 의존하지 않고 내 삶을 살기 위해 사직서를 던지고 퇴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물론 지금의 삶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후회에서 나오는 절박함을 무기로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지금의 순간들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성공의 크기는 후회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후회하고 또 후회해야 성장한다. 그 처절했던 마음, 그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성장할 수 있다. 후회는 미련이나 자책과는 다르다. 후회는 자기반성이고,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는 과정이다. 그 순간 새로운 목표에 대한 동기가 생기고, 동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 말, '후회해서 뭐해. 후회가 밥 먹여 주냐?'라는 말에 조용히 손을 들어 이렇게 반대한다.
후회가 밥 먹여 주는 거 맞다
물론 후회는 불편한 감정이다.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후회한다고 해서 지나간 과거가 바뀌거나 현재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감정을 무시하고 ‘그럴 때도 있지’, ‘후회해서 뭐해. 이미 끝난 일인걸’이라고 넘기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자신을 위로하고 현재에 안주할 수는 있을지언정, 성장으로 이어지거나 변화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후회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구나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와 연결시킨다면 성장의 초석이 될 수 있다. 그 후회의 크기가 결국 성공의 크기가 되어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후회하지 않으려면, 더 많이 후회를 해야 한다. 그럼 언젠가 그 후회가 밥 먹여주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2020년 더 많이 후회하고,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