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갓기획 Jan 08. 2020

제78화: 거울아, 거울아 나 누굴 닮아가고 있는거니?

위기의 꼰대 구출작전, 꼰대탈출 넘버원

부제 : 거울은 외모만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도 보자.


초절세 미인 엄마와 그저 그런(?) 외모를 가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불행하게도 엄마의 성격만  닮고 얼굴은 아빠 쪽을 선택했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렸을 적부터 그게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에 하나가 '네 아빠를 꼭 닮았네'였다. 물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겠지만, 왠지 나에게 못 생겼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냥 기분이 나빴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십여 년 동안 ‘네 아빠 닮았네’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흘러 외모에 신경을 쓸 나이도 지났고, 매일 보는 얼굴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냥 못 봐줄 얼굴은 아닌 것 같다는 자기 위안(?)도 생겼다. 내 외모에 관심을 가지거나, 평가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씩 누가 내 외모를 가지고 농담을 하거나, 저평가를 할 때도 있지만 무덤덤할 뿐 아무 감정도 없다. 종종 못생긴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의 악역을 닮았다는 이야기들을 듣기도 하는데, 그저 웃을 뿐 아무런 감흥도 없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10년 이상 하고, 회사에서 관리자의 역할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oo 닮았네’라는 말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평소 가깝게 지내던 여자 동료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너 요즘 니 팀장이랑 하는 짓이 똑같냐. 왜 닮아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크게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평소에 파트 리더로서 역할 수행도 잘하고, 직원들과도 소통하고 잘 지낸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었다보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그저 팀장의 '미니미' 이거나, 위에서 하던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관리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 모든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책에서 본 바람직한 리더십의 색을 띠고자 노력했는데,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은 그저 빛바랜 꼰대 색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몸속에는 부정할 수 없는 거울 뉴런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근묵자흑이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이라도 읊어야 해서 그러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팀장님이 하는 말투, 행동 등을 보고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보고 배울 점도 분명히 있었지만, 팀원으로서 내가 가장 싫어하고 닮기 싫어했던 그런 말과 행동까지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파트원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스쳐갔다. 파트원들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내 생각을 강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서 파트원들을 나물 하고, 때론 격하게 흥분해서 소리도 질렀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내가 있었다.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 나는 리더로서 잘하고 있어'


완벽한 착각이었고, 나를 위한 핑계이자 변명이었다. 권위에 흠뻑 취해 있었고, 완장이 주는 쾌락을 남용하고 있었다. 리더의 역할이나 태도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 리더가 되었다는 성취감에 취해 있었다.  


'니 팀장이랑 하는 짓이 똑같냐. 왜 닮아가'라는 말에 조금은 그 망상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가 어떤 전환점이 된 것 같다. 나 자신을 좀 더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변화의 시작이었다. 파트원들을 탓하고 나물 하기 전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의견을 물었다. 결정해서 통보하기 전에, 선택권을 주고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했다. 내 생각이 맞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좀 더 열린 생각으로 파트원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적인 실수나 부주의함, 나태함 등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았다. 관계적인 부분에서는 수평적이되, 업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엄격했다. 파트원들도 그 이면의 따뜻함을 알기에 업무적인 엄격함은 이해를 해주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정말 고맙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퇴사 후에 만나는 자리에서도 항상 ‘많이 배웠고, 많이 성장했고,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고마운 녀석들이다.


이 결말은 그때 그 여자 동료가 나를 비춰준 ‘거울’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만 하고,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인 리더로 행동했던 나를 정확하게 비춰준 그 거울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과연 어떤 리더로 파트원들에게 기억되었을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가끔씩은 내 주변에서 나를 가까이 보고 잘 아는 사람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제목에서 말한 '거울'의 의미이다. 외모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외모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가끔씩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떤 점이 좋은 지 또는 그렇지 않은 지 내면을 비추는 거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은 내 이상이나 바람이 만들어낸 허울일 뿐 진짜 내 모습은 따로 있을 수 있다. 친구가 보는 나, 상사가 보는 나, 동료가 보는 나, 아내가 보는 나, 부모님이 보는 나 등등 이 모든 것이 모여야 비로소 나라는 복합체가 만들어진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한 가지로 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내가 중심이 돼서 본 나의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닐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거울 속에 비친 다양한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거울의 조각들을 모아보자. 어쩌면 그게 세상에 비친 진짜 내 모습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주변에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내면까지 비출 수 있는 거울 하나 두고 가끔씩은 이렇게 물어보자. 


‘거울아 거울아 나 누굴 닮아가고 있는 거니?’ 


예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어린이 행동 교정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평상시 ‘시 x, 좇x’ 등의 욕을 달고 사는 어린아이의 행동 교정 과정이었는데, 그 어떤 당근과 채찍으로도 고쳐지지 않던 아이의 행동을 한방에 딱 교정한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욕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본 아이는 순간 표정이 확 변하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그다음부터 욕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수많은 방법에도 고쳐지지 않던 욕하는 습관이 객관화된 자아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드라마틱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 어린이의 욕을 끊기 위해 동영상이 한 몫한 것처럼,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스며들어 있는 꼰대 본능을 끊기 위한 방법으로 내면의 거울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뭐든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동료나 후배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보자.


‘혹시 내가 고쳤으면 하는 점이나 불만인 점 하나만 이야기 줘라.’


혹시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거나 진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단점을 이야기하더라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자. 더군다나 기분 나쁘게 대응하지는 말자.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아직까지 내가 더 좋은 선배, 팀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처분 불가능한 폐기 쓰레기라면, 손댈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준 동료나 후배에게는 반드시 이렇게 이야기하고 마무리하자.


‘말해줘서 고맙다. 내가 더 노력할게’

매거진의 이전글 제77화 후회가 밥 먹여 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