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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때론 다른 누군가의 삶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꼰대라서 할 말은 할게

프리랜서가 되고 나니, 직장인 일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일상을 통해 행복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밤을 새우고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행복. 평일 오후 2-3시쯤 나른한 시간에 만화방에서 즐기는 달콤한 낮잠. 평일 오전에 극장으로 혼영을 하러 갈 때의 해방감 등이다. 그중 최애 행복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사랑하는 딸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딸아이가 학교 가기 전에 아침을 차려주고, 함께 등하교하는 일은 소소하지만 특별한 행복이다. 가끔 오후 1-2시쯤 꼬맹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마치 오래전 여자 친구를 기다렸던 마음 이상으로 설레는 행복한 시간이 된다.


그날도 그랬다. 학교에서 노느라 그런 건지, 공부하느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꼬맹이를 와락 끌어안고 편의점으로 직행했다. 엄마 몰래 꼬맹이와 즐기는 편의점 헌팅은 엄마에게는 비밀 아닌 비밀이자 부녀만의 은밀한 행복이다. 편의점에서 잠깐의 행복을 뒤로하고, 꼬맹이를 피아노 학원까지 바래다준다. 이제 아빠로서 할 일은 다했다. 남은 일은 이제 집에 가서 밤새 글 쓰느라 지친 몸을 눕히고, 자는 일 밖에 없다. 아니다. 포만감을 위해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자는 걸로 계획을 변경해 본다. 행복감이 증폭된다.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겨본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데, 아뿔싸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이런 된장찌개 시베리안 허스키, 신발끈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에레베이터가 점검 중이었다. 물론 계단으로 걸어가면 된다. 단지 내가 흥분하고 열 받는 것은 우리 집이 20층이라는 사소한(?) 문제 때문이다. 평소 2계단도 에레베이터로 이동하는 저질 체력인데, 20층은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올 지경이다. 속으로 관리 사무소와 아파트 시공업체에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부으며 계단을 올라간다. 힘들다. 숨이 턱밑까지 찬다. 사망 일보 직전이다.


그때였다. 18층에 올라서는 순간, 온 얼굴이 땀으로 범벅인 택배 아저씨를 만났다. 천천히 쉬면서 느긋하게 올라온 나는 땀 한 방울 안 흘렸는데, 한시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택배 아저씨는 제대로 사우나를 하신 모양이다. 땀을 닦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위로의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그 위로가 반대 방향에서 나를 향해 날아온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 힘드시죠?”


라고 말씀하시면서, 씨익 웃으신다.
 

‘뭐지? 왜 나를 위로하시는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짠함이 밀려오고, 동지애가 생긴다. ‘나보다  힘든 사람도 웃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투덜투덜 욕하면서 올라온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옆을 스쳐가는 택배 아저씨를 보면서, 내가 택배 아저씨가 아님에 감사함을 느꼈다. 오늘 날씨가  여름 날씨가 아님에    감사했다.  다리가 멀쩡해서 걸어 올라올  있음에 추가로 감사했다. 평소 주(酒)님(?)께 의지하는 와이프에게 세뇌당한 것일까?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서 감사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집에 도착해서 거친 숨을 고르느라 피곤함도 날아가고, 쏟아지던 잠도 싹 깼다. 대신 내 마음속에서도 어떤 불순함도 날아가고, 뭔가 마음의 깨달음도 이어졌다.


‘행복이 별 것 아니구나’


매사 목표 지향적이고, 성과를 추구하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야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을 느꼈는데, 이날은 정반대의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뭔가를 달성해서가 아니라, 현재 내가 가진 것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자꾸 높은 곳만 볼 게 아니라 낮은 곳을 내려다보면 상대적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도 있구나 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한다. 그리고 그 비교의 결과에 따라 행복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래서 더 행복하기 위해서 더 높은 사람과 비교하고 거기에 내 기준을 맞추려고 한다. 물론 그런 노력이 의미 없지는 않다. 높이 보고, 앞만 보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위만 보고 가면 때로는 지치고 힘든 순간이 있다. 가끔은 뒤도 돌아보고, 낮은 곳도    알아야   행복해질  있다. 물론 절대 나보다 못한 누군가의 삶을 비하하거나 동정해서는 안된다. 다른 누군가의 처지에 빗대어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비추어   내가 위로받고 소소한 행복을 느낄  있다면 철저히 나만을 위한 행복 비타민 정도로 활용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프리랜서라서 좋을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직장인에 비해 더 힘든 순간이 많다. 주 7일 근무가 다반사다. 주중에는 강의하고, 주말에는 강의를 준비한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생명을 연장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치열하다. 24시간 맥도널드는 단골 사무실이 된 지 오래다. 커피 한잔 시켜 놓고 햄버거 냄새의 유혹을 견디며 교안을 짜고,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직업이기도 하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이게 사는 건가싶을 정도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내려놓고 편하게 살고 싶다. 쉬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의 현실이 짜증 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주변을 둘러본다. 캄캄한 새벽 시간, 누가 이 새벽에 여기에 올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밤새 작업을 끝내고 온 인부들. 바쁘게 들락날락하는 배달원들. 카운터에서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 노트북을 펴고 뭔가를 바쁘게 타이핑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만 치열하게 사는 게 아니구나.'

'나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구나'


 시간,  공간에 '나뿐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위안이 되고, 생각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준다.


힘들 때는 주변을 둘러보자. 나보다 더 힘든 그 무엇인가를 찾아보자. 그게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요즘 내가 가장 위로받고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뭘  얻어서 찾는 행복이 아니라, 때로는 낮은 곳에  행복의 기준을 맞추면, 지금 내가 가진 행복의 상대적인 크기를 키울  있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삶에서 위로받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위로받는 것처럼, 지독히 외롭고, 불안정하고, 불안한 프리랜서로의  삶이 '내가  프리랜서보다는 낫네'라는 위로를 전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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