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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Jan 28. 2020

제83화 : 인생에 함께하면 좋을 세 명의 사람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3명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변형해서 내 인생에 세명이 함께 한다면, 성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의미를 발견해 본다. 그리고 나는 그 세명을 경쟁자, 심판,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태해진 마음에 더 잘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의의 경쟁자. 나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주고 피드백을 해 줄 수 있는 심판, 마지막으로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위로해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만 있다면 벅차고 힘든 인생 조금도 더 수월하게 성공이라는 곳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에게는 운 좋게 이 세 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 경쟁자이자, 심판이자,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쌍둥이 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1. 선의의 경쟁자 


내 인생은 태생부터가 경쟁이었다. 엄마 뱃속에서 쌍둥이 형과 10개월간 동고동락을 했다. 자연 출산이었다면 내가 형이 되었을 텐데, 예상치 못한 제왕절개 수술로 인해 출생 순서가 바뀌었다. 2분 14초 차이로 형에게 패하며 세상에 나왔다. 1전 1패. 이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형과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고구마 하나를 먹어도 쌍둥이 형과 나누어 먹어야 했다. 학창 시절에는 형이 자지 않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아무리 졸려도 형 옆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나는 늘 형에게 미치지 못했다. 공부도 형이 더 잘했고, 옷도 형이 잘 입었고,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더 많았다. 취업도 형이 빨랐고, 경제적으로도 형이 앞서간다.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형은 늘 잡힐 듯 말 듯, 나보다 한 발 앞서가며 내 경쟁심에 불을 집힌다.


그렇게 쌍둥이 형과 경쟁을 하며 산 인생이 벌써 40년이다. 때로는 친형이자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했지만, 늘 나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고, 패배감을 안겨주기도 하면서 나를 자극하는 내 인생의 라이벌이었다. 때로는 형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적도 많았지만,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남아있다는 '동기부여'의 힘으로 바꾸니 좀 더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40년간 쌍둥이 형과 경쟁하면서, 때로는 경쟁에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과 태도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삶의 방식이 되었다. 패배를 돌이켜보고 반성하며 더 노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돌이켜 보면 무의미한 경쟁도 많았고, 시기 질투심으로 형을 대한 적도 많았지만, 형과의 의미 있는 경쟁이 있었기에 좀 더 단단해지고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2. 객관적이고 냉정한 심판


형과 나는 일란성쌍둥이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나를 보며 형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옷만 똑같이 입혀 놓으면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도 될 만큼 외모가 닮아 있다. 하지만 그 속은 완전히 다르다. 상대적으로 감성적이고 여린 마음을 가진 나와는 다르게, 형은 가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냉철하고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끔 정나미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냉정하게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한다. 돈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도 밝다. 이래저래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게다가 형이라는 귀속 지위를 철저히 활용하는 인간이다. 말끝마다 '형이.. 형이… 형이…'를 입에 달고 산다.


그놈의 '형' 소리가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니 형이 한 말을 들어서 잘 안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나쁜 적도 있었지만 몸에 좋은 약이 쓴 것처럼 지나고 나면 늘 내 인생의 약이 되었던 것 같다. 형이 똑똑해서 라기보다, 나를 객관적으로 봐주고 냉정하게 판단해서 해준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형은 내가 주관이나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나를 객관적으로 봐준 사람이었다. 내가 잘못된 일을 하거나 미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위로 이전에 냉철하게 상황판단을 하고 대안을 함께 고민했다.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현실조언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만약 그런 순간에 형이 단순히 ‘괜찮아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며 형식적인 위로만 건넸다면, 내 삶이 딱 거기에서 멈췄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심판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심판 없는 경기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내 인생의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주인공은 나지만, 그 그라운드 위에서 내가 펼치는 플레이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심판이 없다면 나는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듣기 좋은 얘기는 그 순간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 실질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둘러보면 내 주위에도 나를 냉철하게 판단해 줄 심판 몇 명쯤은 있을 것이다. 그걸 보지 못해서 경기를 망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때로는 남의 말도 좀 듣고, 내 옆에서 나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심판 한 두 명은 고용해 보자. 순간은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독이 아닌 득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3. 둘도 없는 친구


어린 시절 나는 쌍둥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싫었다.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아야 했고,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를 늘 해명(?) 해야 했다. 때로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까지 부연설명을 해야 했다. 게다가 학창 시절에는 지독히도 안 맞는 성격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먹다짐을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이 지나고 서로의 인생이 방향이 달라질 때쯤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형제가 되었다. 특히 나의 가장 힘든 시절, 형은 늘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하고 챙겨줬다. 내가 재수를 하던 시절, 꼴에 과외해서 돈 좀 번다고 치킨도 사주고, 듣기 평가 공부하라고 CD플레이어도 사준 형이었다. 군대 시절에도 자기 휴가를 반납하고 동생의 면회를 오곤 했다. 형 같지도 않은 게 형 노릇을 하니까 꼴 같지도 않은 적도 많았지만, 돌이켜 보니 형은 수십 년간 그렇게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고, 힘든 순간 늘 곁을 지켜주며 든든한 친구로 동생의 삶을 응원했다. 돈이 없을 때 돈을 줬고, 마음이 허할 때 마음을 전했고, 힘이 필요할 때 힘을 보내줬다.


40년이 지난 지금 형과 내 인생의 항로는 많이 달라졌다. 하는 일도 성격도 이제는 쌍둥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간극이 크다. 하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함께 세상에 태어나 준 쌍둥이 형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선물이고 행운이자, 또 한 명의 스승인 것 같다. 그런 형이 앞으로도 나의 친구로, 경쟁자로, 심판으로 오래오래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나 또한 형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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