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갓기획 Dec 09. 2019

제66화: 잘 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 게

오랜만에 친한 선배들과 1박 2일 골프여행을 갔다. 첫날 라운딩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음주가무를 즐긴 후,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 7시부터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려온다. 형님들 대부분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침잠이 없다. TV 소리를 들어보니, 뭔가 치고받고 사람 죽어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형님들의 채널은 드라마도 아닌 예능도 아닌, UFC 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이날 UFC 채널에서는 '한국 파이터 명승부 10'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국 파이터들의 명경기를 10위부터 1위까지 선정하여 보여준다. 형님들 모두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TV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마치 자기가 그 파이터라도 되는 것 마냥 심하게 감정이입한다. 프로그램이 끝나기 무섭게 어느 형님이 을 뗀다.


"이야~~ 한국애들 싸움 잘하네"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어땠네. 저땠네’ 등 아는 지식에, 주워들은 지식까지 긁어모아 한국인 파이터들에 대한 찬양가를 불러댄다. 이때 구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어떤 형님이 굵직한 한마디를 던져온다.


“야. 바보들아. 저건 다 잘하는 것만 보여주는 거니까 그런 거지”


순간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정리되고 적막이 흐른다. 나 또한 어떤 생각에 잠긴다.


‘때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그 이면의 것을 보지 못하고 보이는 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방의 좋은 면, 잘되는 면만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마주한 현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에 더 강하게 든 생각인지도 모른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 주변에는 강사로 활동하는 선후배들이 많았다. 만날 때마다 ‘이번 달 2천을 찍었네’, ‘연봉이 1억이 넘네’, ‘강의하는 것이 너무 즐겁네’ 등 좋은 얘기만 했다. 그런 정보들이 쌓이다 보니 나에게 있어 강사로서의 삶은 장밋빛 미래로만 그려졌다. 지인들이 편향된 정보만 전달한 것일 수도 있고, 선택적 인지에 의해 내가 듣고 싶은 정보만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현실로서 마주한 강사로서의 삶은 만만치 않다. 오히려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힘겹게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선배 강사들이 말해 주지 않은 힘듬과 불편함도 많다. 고정 수입이 없기에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고객들의 요구는 상사의 요구보다 더 까다로울 때가 많고,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스트레스도 크다. 1년에 한 번 받는 인사평가와는 다르게, 매번 강의가 끝날 때마다 강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압박감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후회가 되거나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좋아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 감춰진 것들을 알고 시작했더라면, 좀 더 대비를 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는 밀려온다. 그래서 오늘은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사실에 근거해서, 좋아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 감춰진 비밀(?)을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


1. 좋아 보이는 것 그 이면에 감춰진 단점도 있다.


커피숍을 하는 친구가 있다. 커피숍을 사무실 삼아 일도 하고 낭만적이다 싶었는데, 하소연이 장난이 아니다. 화장실 청소에,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는 고역이며, 진상고객도 짜증 나는 데, 커피숍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들어오는 민원 처리는 최악이라고 한다. 젊은 나이에 지방 대학의 교수가 된 친구는 요즘 탈모로 고생인데,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라고 한다. 학생 모집하러 고등학교에 영업하러 다녀야 하고, 그때마다 잡상인 취급을 받다고 한다. 산학협력 추진단장까지 맡아 사업기획서 쓰랴 프로젝트 진행하랴 몸이 개라도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연봉은 대기업 대리 시절 받던 연봉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커피숍 사장이라서, 대학 교수라서 꼭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이면에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단점도 함께 존재한다. 모든 일에는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섞여 있다. 겉으로 봐서는 절대 모른다. 그 안에 들어가서 봐야 정확하게 보인다. 모든 것에는 내가 보는 것의 이면이 있다는 뜻이다. 균형 잡힌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2. 겉으로 보이는 결과 뒤에 숨겨진 더 큰 노력이 있다.  


대박집 보고 따라서 가게 차리면 망한다는 말이 있다. 대박집이라고 해서 겉으로 보기에 특별해 보일 것도 없는데, 항상 손님들이 넘쳐난다.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다. 비슷한 재료와 레시피로 가게를 차렸는데, 손님은 커녕 파리 새끼 한 마리 구경하기 힘들다.


'뭐가 다른 것일까?'


아마 한 번이라도 생활의 달인에 나온 맛집 사장님의 재료 준비 과정과 조리 과정을 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힘들고, 고되고, 복잡한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인장의 땀과 노력, 그리고 눈물로 버물인 마법이 함께 하기에 맛집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의 혀를 잡아 끄는 맛은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면의 노력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눈에 보이는 좋은 것만 보려는 인지적 편향 때문이다.  현상은 보이는 결과일 뿐, 그 안에 담긴 노력의 크기와 과정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흔한 비유로 지금 어딘가에서 우아하게 떠있는 백조의 물 밑에 있는 발을 볼 줄 알아야 한다.


3. 상대적으로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도 있다.


오랜 시간 퇴사를 꿈꾸어 왔다. 그렇게 나는 내가 목표로 했던 나이 40에 퇴사를 했다. 불안감도 있었지만 지옥 같은 출근길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하는 상사도, 매일매일 작성해야 하는 보고서도 없기에 행복했다. 아침에 내가 출근하고 싶은 커피숍으로, 교외로, 지방으로 출근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 딱 내가 하는 만큼 보상받고,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상사도, 이것저것 부탁하고 도와달라고 하는 동료도 없다.


하지만, 늘 혼자 다녀야 하고 밥도 혼자 먹는 경우가 많다. 웃고 떠들고 이야기할 동료도 없다. 기업체 교육에 나가서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상사 뒷담화도 까고, 회식 뒷얘기도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시절 그 추억이 생각나 살짝 눈가가 젖어오기도 한다. 게다가 금융권의 대우는 180도로 변했다. 대기업 과장의 대우는 온 데 간데없고, 거의 반 빚쟁이 취급을 한다. 직장인 일 때는 알지 못했던 직장인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따박따박 들어왔던 월급, 아무렇지 않게 썼던 법인카드, 팀장님이 대신 내주던 술값, 밥값, 하루 5잔도 넘겨 마셨던 커피 머신 등 생각보다 직장인으로 누렸던 것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상대방에 비해 더 누리고 있고, 더 행복한 것 몇 가지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소중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요즘은 제주도 출장이 잦다.  날씨가 좋아 그런지 제주도에 사람들이 다. 귤을 사기 위해 들른 감귤 농장에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옆에서 어떤 신혼부부로 보이는 젊은 부부의 대화가 들려온다.


“자기야. 귤 상자 안쪽에도 잘 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젊은 부부의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는 신부의 말이 너무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기만하면 상대적으로 내 삶은 불행할 수 있다. 그 커 보이는 남의 떡에도 속 빈 곳이 있고, 보이지 않는 뒤쪽은 썩어있을 수 있는데, 오로지 내 눈 앞에 보이는 그 모습만 가지고 판단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좋은 것, 잘된 것, 부러운 것 그 이면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단점도 있고, 잘되기까지 쏟아부은 그 사람의 노력이 있고, 반드시 그런 사람의 모습에 비해 내 삶이 나은 면도 있다. 좋은 것을 보고 배우려고 닮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의 것을 보는 혜안을 가질 때 내 삶도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83화 : 인생에 함께하면 좋을 세 명의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