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무 일 없는 하루에도 나는 싸웠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말 안에는 사실, 누구도 몰랐던 나만의 싸움이 숨어 있어요.
누군가는 그저 평온한 하루였다고 말하겠지만
저는 알아요.
그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했는지를.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시계도 아니고, 핸드폰도 아니에요.
배에 붙은 장루 파우치입니다.
밤새 새어나오지 않았는지,
파우치가 잘 붙어 있는지,
조금이라도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 하루도 괜찮겠다”는 안심을 얻습니다.
전날엔 가능하면 음식도 조심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습관도 지켜요.
이 모든 건 ‘내일’이라는 하루를
좀 더 무사하게 보내기 위한 작은 준비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장애인복지관 안의 작은 카페입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웃는 얼굴로 하루를 시작해요.
겉으로 보면 별일 없어 보이는 하루지만,
그 속엔 조용한 긴장이 늘 함께합니다.
혹시 파우치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냄새가 나면 사람들은 알까?
화장실에 사람이 많으면 어떻하지?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아요.
그렇지만 나는 내 일에 집중합니다.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사람들은 외출이 ‘즉흥적’이길 바라죠.
하지만 저에겐 그 즉흥이라는 것도
나름의 계획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어디를 가든, 그 근처에
화장실이 있는지, 깨끗한지는 꼭 확인해요.
‘화장실이 마음 편한 곳’이라는 기준이
어쩌면 저에겐 장소를 고르는 가장 큰 기준이 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매번 점심을 굶거나,
큰 준비를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내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누군가에겐 당연한 하루가
저에겐 여러 번의 계산과
작은 용기의 합으로 완성되는 하루입니다.
어떤 날은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아요.
“괜찮으세요?”라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죠.
그래서 전,
스스로에게 물어요.
“오늘도 잘 버텼니?”
“조금 힘들었지, 그래도 잘했어.”
드러나지 않는 장애는
때때로 아무런 배려 없이
‘정상’인 척 살아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런 하루를 살아낸 나를 토닥입니다.
“누다야, 오늘도 고생했어.”
혹시 당신도 지금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불편함과 싸우고 있나요?
아무 일 없는 하루를 간절히 바라고 있진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조용한 전사입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표시 나지 않아도,
당신이 하루를 견디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