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몸과 함께 살아가는, 유쾌하고 향기로운 일기

[6화] 왜 나는 숨겨야 했을까 – 감춰야 했던 나의 장루 이야기

by 누다


나는 찜질방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사우나의 뜨거운 김, 구운 계란, 식혜 한 잔,
그 작은 일상이 내게는 가장 큰 쉼이었다.


하지만 장루를 갖게 되면서
나는 그 세계에서 조용히 퇴장했다.
익숙했던 공간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 친구들이 일본 온천 여행을 이야기했다.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난 온천 못 해.”


순간 공기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론 또 하나의 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지는 일본이 아닌 베트남이 되었다.

호텔 수영장은 예쁘다기보다,
멋이 있었다. 고요했고, 비현실적일 만큼 조용했다.


꼭대기 층에 자리한 그곳은
마치 구름에 닿아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하늘도, 바다도, 나도
모두 한 톤으로 잠잠해진 느낌.
친구들은 그 공간을 감탄하며 바라봤지만,
정작 수영복을 꺼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배려가 고마웠다기보다,
나는 미안했다.

즐거워야 할 여행이었는데
내가 또 무언가를 막아버린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삶뿐 아니라
누군가의 자유도 조심스럽게 제한하고 있었다.




옷은 계절과 상관없이 늘 같다.
헐렁한 바지, 길게 내려오는 상의.
장이 불편한 날이면 더 조심스러워진다.


배 위에서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장루 주머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풍선’ 같다.


그래서 나는 원피스를 입는다.
조금 더 흐르고,
조금 더 가릴 수 있도록.


어느 한날,
조금은 덜 헐렁한 바지를 입고 산책을 나섰다.
작은 가방 하나에 핸드폰, 물티슈, 봉투.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가볍게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도, 계속 걸을 수도 없는
낯선 상황이 벌어졌다.
주머니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바지는 좁았고,
화장실은 너무 멀었다.


나는 가방을 배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고
한 손으론 그 ‘풍선’을 조심스레 받쳤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가방을 바짝 잡은 손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혹시 터지면 어쩌지?’
‘이 길 끝까지 가야 할까, 돌아갈까...’

머릿속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걷고 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는 거였다.


그 순간,
문득 친구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네 친구의 동창,
직장암으로 장루를 단 사람이
공원을 걷다 풍선이 터졌다는 이야기.

옷도, 신발도 다 버리고
자신의 아파트 입구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는 말.


그땐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날,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등 뒤로 흘렀다.


그날 나는
조용한 공포와 함께 걸었다.
한 발, 한 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장루는 이제 내 삶의 일부지만,
아직 나는
이 삶을 온전히 껴안을 용기를 연습하는 중이다.


우리는 아직
장루를 ‘숨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걸 당당히 드러내며 살아간다.


감추는 게 예의가 아니라,
이해하는 게 배려인 세상이 된다면
나도 조금 더 편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몸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그래서 오늘도
나는 천천히,
향기로운 걸음으로
내 안의 두려움을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