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내가 다시 걷기까지 – 장루를 만나기 전, 그리고 그 후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정기 진료를 앞두고 나는 늘 그랬듯, 스스로 장을 비우는 선택을 했다.
대장 내시경처럼 정식으로 요구된 준비는 아니었지만,
몸의 예고 없는 반란이 언제 일어날지 몰라 늘 불안했기 때문이다.
약을 먹고, 장을 비우고, 준비를 마치고 남편의 차를 탔다.
긴 시간의 이동을 대비한 나만의 작은 방어였고,
그나마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대비책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졸음쉼터와 휴게소를 수없이 들러야 했다.
아마 열 번은 훌쩍 넘겼고, 스무 번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어디든 정차가 가능하면 차를 세우고, 나는 재빨리 뛰어내렸다.
차 안엔 항상 챙겨 다니는 여벌의 옷과 속옷들이 있었고,
그날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었다.
그 옷들은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나는 공중 화장실 바닥을 닦고, 내 흔적을 지우며 서 있었다.
비참했다.
말 그대로 존엄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지는 순간.
한참을 화장실 변기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괜찮아?”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대답했다.
“응… 괜찮아.”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 아버지는 늘 아픈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돌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아픈 풍경 속에서 자란 아이였다.
늘 아프다 말하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울던 나.
그때부터 알게 됐다.
아프다는 건, 내 몸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아픈 사람 곁의 사람도 같이 무너진다는 걸.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남편에게는 그런 아픈 기억이 되지 않기로.
내가 눈물 흘리면,
그 사람 마음이 더 아플 테니까.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하루는 병원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잠시 외출을 했는데,
차를 타고 나가던 중 갑작스레 장이 반응했다.
우르르쾅쾅,
그야말로 몸 안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차 세워줘!”
그리고 가방만 낚아채 들고,
근처 수풀 속으로 전속력으로 뛰어들었다.
나올 땐 온몸에 가시풀 자국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몸 하나 제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자괴감.
그렇게 나의 하루들은
예측할 수 없는 몸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장루를 선택했다.
장루를 달면 모든 게 나아질 줄 알았다.
삶이 원래대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걸을 수 있다.
언제든 집 밖을 나설 수 있고,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듣는다.
장루가 나를 되찾아준 것이다.
아무도 내게 "그건 부끄러운 거야"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려는 내게
조용히 '감춰야 한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무언의 시선,
그 아무 말도 없지만 너무도 큰 침묵들이
내가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장루는 나를 살게 했고,
내 삶을 다시 걷게 한 고마운 친구다.
감출 이유도,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는 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장루는 나에게 자유를 준 친구다.
숨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조금은 다르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지금의 나,
누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