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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오리 Jun 11. 2016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를 읽고

요즘 트위터나 페북에서 자주 보이는 책인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를 읽었다. 170페이지를 조금 넘는 얇고 가벼운 내용의 책이다. 내용은 "회사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간단한 내용인데, 튀는 제목과 재밌는 일러스트가 흥행에 매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IT직군과 거리가 먼, 일반 대기업 위주의 얘기겠거니 생각했는데 저자도 IT쪽 출신이고, 언급된 회사원들 사례도 IT직군인게 약간 의외였다. 개발자, 시스템관리자, 기획자 등등의 제보가 언급되어 재밌다.


제목에서 언급하는 야근/보람이 저자가 비판하는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난 이 책이 말 하고자 하는 내용을 "종신 고용의 시기는 지났다. 회사와 당신은 일방적으로 종속된 관계가 아닌 계약 관계임을 명심하고 줄 건 주고, 받을 건 잘 챙겨먹자." 로 이해했다. 당연히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참고로 난 이 책에서 비판하는 사축에 가까운 사람이라능.


회사와 나는 일방적인 종속관계가 아닌, 대등한 계약관계를 명심하라는 부분에는 매우 동의한다. 무비판적으로 회사의 방침에 동의를 할 이유도 없고, 회사가 자기 커리어에 반하는 요구를 한다면 적절한 목소리를 내어야 하겠지. 특히 책에서 언급한, "업무 영역 자체가 매우 특수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길러봤자 시장에서 평가받지 못할 일이 맡겨진다면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라"는 부분에 매우 동의한다. 


IT 서비스 쪽에서 보자면 서비스 운영 담당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발자들이 서비스 운영보다는 신규 서비스 개발을 더 선호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레거시 시스템을 다룬다는 부담감 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써 보는게 재미도 재미거니와 나중에 이직을 생각해서라도 신규 기술 훅훅 써 보는게 더 낫겠지. 또한 핫한 기술을 사용해 뭔가 신규 기능 개발을 하는게 아니라, 서비스의 비즈니스 로직만 계속 뜯어고치고, 수정하는 건 참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근데 딱히 보상은 뭐가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업무량을 적절히 조절해서 균형있는 일/생활을 보장한다? 월급을 더 준다? 흠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 동의하기 어렵다기보다 실상과 동떨어진 부분은  "받는 만큼 일하자" 이다. 받는 만큼 일하려면 대체 어느 정도 일해야 어느 정도를 요구해야 할 지 기준이 있어야 할텐데, 객관적인 업무 능력 평가, 기여도 평가, 그에 따른 연봉 산정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모두가 "받는 만큼 일하자" 마인드라면 과연 회사(아니면 사회? 하여간..)가 제대로 동작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내가 사축 마인드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서도.  연봉 4000받는 개발자는 어느만큼 일 해야 할까? 연봉 6000은 연봉 4000보다 얼만큼 더 일을 해야 할까? 내가 개발한 코드가 회사에 얼마나 기여를 했나? 그럼 코딩하지 말고 기획회의에 더 들어가는게 밥값하는걸까? 그래야 내 연봉 더 오르나? "받는 만큼 일하자" 의 아주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면 결국은 다 맘대로 생각해서 내가 할 일의 양을 산정할텐데, 이러면 같은 돈을 받아도 기준을 높게 잡은 사람만 더 일하고, 낮게 잡은 사람은 덜 일하고도 "난 받은 만큼 일했는데 뭐." 라고 생각하겠지. 더 일하는 사람은 "쟤는 왜 저래 일 안해?" 라고 생각해서 같이 놀던지, 딴 회사 가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돌아갈 정도면 해피해피할 거고, 체리피커들만 남았다면 회사 망하겠지 뭐.


결국 그래서 이 책을 봐도 재밌고, 속 시원하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신뢰할 "개발자의 연봉 별 업무량 가이드" 같은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그래서 그냥 심심풀이 재미로 보긴 좋은 책이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바라긴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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