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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Apr 15. 2020

[영화] 윤희에게


평일 오후 씨네큐브는 내가 바랐던 느낌 그대로였다. 바닥에 깔린 카펫에 소음이 적절하게 스며들어 공간은 고요하고 따뜻했다. 나는 비밀을 만든 참이었다. 아무에게도 오늘 이 연차를 말하지 않았다. 오늘 내가 보낸 시간은 오로지 나만 아는 시간이다. 살면서 나는 종종 이렇게 비밀을 만들었다. 비밀을 만들면서 나는 설레고 행복했다. 그 비밀에 갇혀 우쭐한 기분도 느꼈다. 살면서 우쭐한 기분을 느낄만한 일이 많지 않은데 나는 그렇게 비밀을 만들어 나를 끌어올려주고 숨도 쉬었다. 


광화문은 특히 내 비밀이 많이 묻어있는 장소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누군가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있고 싶을 때, 사람이 없는 곳에 있고 싶을 때 광화문을 찾았다. 씨네큐브에서 봤던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런 비밀의 한토막이었다. 


윤희에게를 예매했지만 거의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내가 이 영화를 고른 것은 다분히 눈 때문이었다. 나는 압도적으로 눈이 쌓인 풍경을 보고싶었다.

영화는 눈처럼 고요히 흘러간다. 그렇게 소리 없이 흘러가는데도 나는 툭하고 자꾸 눈물이 났다. 일테면 새봄이 아빠에게 엄마와 왜 헤어졌는지 묻는 질문에 아빠가 한참을 말을 고르다 입에 문 사탕을 뱉으며

"너희 엄마는 사람을 외롭게 해."

라는 대사를 할 때, 준의 고모가 팔을 벌리고 안아달라고 하자 준이 

"안아달라는 얘기야?" 

라면서 어색하게 다가가서 고모를 꽉 안아줄 때, 윤희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 화면에 무심히 툭 잡히는 순간 속수무책 마음이 허물어졌다. 

준의 말처럼 인생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재회한 순간 윤희의 얼굴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리움과 미안함, 반가운 마음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혼재된 그 눈빛은 그 짧은 순간 얼굴에 달빛처럼 일렁였다. 

그 재회 장면은 아마 윤희의 기억 속에 하나의 희망처럼 따뜻하게 남아있게 되겠지. 아무리 눈이 쌓인 풍경이 아름다워도 가장 아름다운 건 결국 사람, 그중에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결국 만나게 되는 풍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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