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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Apr 16. 2020

[넷플릭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루머의 루머의 루머

Unbelievable, 13 Reasons Why *스포 있음*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 매달 썸네일이나 보는 가격을 이만큼이나 지불하고 있다는 생각에 해지의 유혹이 치솟는다. 그러다가 한 번씩 좋은 작품을 만나면 어쩔 수 없다. 계속 구독하는 수밖에.  최근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봤다. SNS를 통해서 추천하는 글을 몇 번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함께 사는 사람이 이 작품을 먼저 보고 추천해줬다. 다 보고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더불어 나는 시즌3까지 챙겨 본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떠올랐다. 2개의 이야기에 담긴 중요한 사건과 그것을 다루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마리 애들러는 어느 날 새벽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녀는 즉시 위탁모와 친구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신고한다. 하지만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수사 방향은 엉뚱하게 흐른다. 오히려 이 사건은 마리의 자작극으로 결론이 난다. 경찰은 거짓 신고와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고소하기에 이르고 그녀는 친구, 직장, 집 등을 뺏긴다.

또 다른 주에서도 강간 사건이 발생한다. 듀발 형사는 강간 사건을 조사하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고 해당 사건의 담당 형사인 라스무센 형사와 공조를 시작한다. 그리고 깨끗한 범죄현장만 남기고 아무 증거도 남기지 않은 범인을 끝까지 추적한다. 그리고 끝내 범인을 잡고야 만다. 그 범인의 하드 디스크에는 자신이 강간한 여자들의 사진들이 남아 있었고 마지막으로 복구한 사진을 통해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마지막 피해자를 알게 된다. 마리 애들러였다.


마리 애들러는 왜 자신의 자백을 번복했을까? 강간을 당하고도 왜 그녀는 그것이 자작극이라고 거짓말을 했을까? 3살 때부터 시설에서 자라고 여러 위탁 가정을 거치면서 그녀는 선의를 갖고 자신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깨우쳤기 때문이다. 남자 경찰들은 그녀에게 찾아와 그 날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말해 보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남자 형사가 와서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몇 번이나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한 후 심지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진술서로 다시 한번 작성하라고 한다. 그들은 거기에서 틀린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왜 처음 했던 진술과 두 번째 했던 진술이 다르지? 심지어 그녀의 위탁모는 그녀가 관심받기를 좋아하고 실제 성폭행을 당하면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없다며 마리의 침착한 태도가 이상하다고 형사들의 마음에 '의심'을 심어 준다.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나면 넌 전과자가 돼. 전과자가 되면 넌 지금 사는 곳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어. 너 강간을 당한 게 맞아?라고 형사들은 추궁한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사는 곳을 잃을 수 없어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듀발 형사와 라스무센 형사도 똑같이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났다. 그녀들은 피해자가 겁먹지 않도록,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이야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꾸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려고 하는 피해자에게 그런 것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것은 너의 자유라고 안심시켜준다. 마리 애들러의 현장과 다른 피해자들의 현장은 모두 증거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차이는 그 수사의 중심에 피해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 나오는 해나 베이커 또한 강간 피해자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같은 학교의 브라이스였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고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 해당 사건에서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시즌 1의 내용이다.

시즌 2에서는 해나 베이커가 사실은 자유분방(?)한 학생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시즌 3에서는 급기야 가해자인 브라이스가 주인공이다. 브라이스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사과한다. 그리고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돕는다. 하지만 끝끝내 그는 용서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2개의 드라마는 '강간'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고 모두 범인이 밝혀진다. 차이점은 명확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가 왜 강간을 했는가?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를 잡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저 그에게 수치심을 부여하고 처벌을 받게 한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는 해나 베이커, 강간 사건의 피해자는 점점 이야기의 중심에서 밀린다. 그리고 심지어 가해자인 브라이스를 전면에 내세워 그가 가진 나약한 모습들, 반성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너희는 왜 기회를 한번 더 주지 않니? 왜 용서를 받아주지 않아? 그 주변 친구들과 시청자를 비난하듯이 그의 눈물, 외로움을 부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잊은 것이 있다. 브라이스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는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편안한 침대를 뺏긴 적이 없고 비싼 식사와 명문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된 적이 없다. 그가 살고 있는 안온한 삶 속에서 미안함을 느끼며 살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맞은 죽음이 그 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어떤 이야기에서 강간은 그저 소재였을 뿐이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 속에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 우리는 강간이 그저 소재에 불과한 영화, 소설, 드라마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발버둥 치는 여성, 폭력적으로 관계를 맺는 가해자를 조명하며 카메라의 앵글마저도 자극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강간을 당한 여자들은 하염없이 울거나 모든 의지를 상실한 여성으로 그렸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나왔던 피해자들의 모습은 새로웠고 충격적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침착했다. 사건을 침착하게 진술했고 그 이후에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물론 힘든 시간들을 겪고 있었고 불안과 공포에 떨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강했다.


마지막에 마리 애들러는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사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다. 그 강인하고 밝은 미소는 어른의 미소 그 자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조건 없이 잘해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사과를 받아내고,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었다. 이렇듯 용서는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그게 아니라 이 사람도 사정이 있어.'라고 어물쩡 넘어가려는 태도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다.

마지막으로 듀발 형사와 라스무센 형사에게 팬레터라도 보내고 싶을 정도로 빠져들었는데 그녀들은 피해자에게는 따뜻했고 배려가 넘쳤지만 일에 있어서는 빈틈없고 냉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감상에 빠지지 않으며 해야 할 일을 온전히 해내는 태도. 그것이 내가 이 드라마를 통해 배운, 일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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