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이모에게

by 김밀


2020년 1월 17일, 죽은 사람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병실에 들어갔을 때 이모는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얼굴이 좀 노랗게 보이긴 했지만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이모의 얼굴이 잠든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는 성큼성큼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모가 정말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의 몸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소리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부고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낮은 탄식만 흘러나왔을 뿐 큰 감정적 동요가 생기지 않았다. 왜 눈물이 나지 않을까? 드라마만 봐도 우는 내가 이모의 부고 소식에 왜 침착한가?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였다.

병실에 들어가서 이모를 보고야 알았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아서였다는 것을. 장례식이야 몇 번 참석해 봤지만 그것도 그저 영정 사진을 봤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모의 몸속에 숨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53세의 아직 너무 젊은 이모 앞에서 나는 끝이라는 단어를 실감하며 속수무책으로 울고 말았고 이모의 아들, 나보다 어린 사촌이 오히려 나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내가 그를 위로해야 하는데 오히려 내 등을 두드려주고 자꾸 무릎이 꺾이는 나를 붙잡아줬다. 그게 미안해서 더 서럽게 울었다. 사촌동생은 20일 후에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이모는 아들의 결혼식을 결국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버렸다.

빈소가 차려졌고 저녁이 되자 조문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사람들은 모두 황망한 얼굴들이었다. 부고 문자를 받고 오긴 했으나 고인이 이모라고 생각도 못하고 부모나 그 외 친척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가 기절할 듯 주저앉는 이도 있었다. 이모는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이후로 사람들과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모의 가장 젊은 날의 기억도 이모의 아픈 얼굴이라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이모는 20대에 암이 발병했다. 그때 서울에 살던 우리 집에서 병원을 다니기 위해 잠시 같이 살았었다. 이모는 항암치료로 얼굴이 까맣게 변해 있었고 머리카락이 남아 있지 않아 더워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까맣게 변해 버린 이모의 마른 손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이모는 그때도 잘 울지 않았다. 태연한 얼굴로 농담을 던지고 나와 놀아줬다. 다행히 암이 완치되고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모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에 놀랐지만 이모는 이겨냈던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충분히 이겨내리라 생각했다. 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모는 이번에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죽기 직전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모는 감정 표현이 적은 사람이었다. 호들갑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좋은 일도 슬픈 일에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모의 마음에 그렇게 큰 고통이 있었던 것도 이모의 몸이 그렇게 아팠던 것도 가족들은 뒤늦게 알았다. 사람들은 속에 담아두고 표현하지 못했던 이모가 안쓰럽고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 마음이 미안해서 더 서럽게 울며 죽음을 애도했다.


이모의 납골함은 예산군에 위치한 추모공원에 모셨다. 등산이 취미였던 이모가 좋아할 만큼 아주 높고 몇 겹의 능선이 보이는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고통이 없는 그곳에서 이모가 가고 싶었던 모든 산을 다 가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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