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에 가는 몇 가지 방법

by 김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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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쯤이었을 것이다. 차이나타운에 처음 갔던 것이. 서울 토박이였던 나는 인천으로 주소지가 변경된 이후로 주말이 되면 의무처럼 어디든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인천공항 외에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갈만한 곳이 없었다. 어디 가자, 어디 나가보자 라는 말을 달고 사는 내게 남편은 그럼 차이나타운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나름 인천 토박이였는데 집과 학교 근방을 제외하고는 잘 몰라서 나와 별반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우리 집에서 차이나타운까지 갈 수 있는지 포털 사이트의 길 찾기 서비스에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앙상했는데 같은 인천 내 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 반 이상씩 걸렸다. 다행히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한 번만 타면 차이나타운에 갈 수 있었고 우리는 버스를 타러 나가기로 했다.

완연한 봄은 아니었는지 한껏 옷을 여며도 꽤 쌀쌀했다. 버스는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였던지라 우리는 한참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사실 이 정도면 안 가도 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주말에 꼭 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을까? 먼 거리로 출퇴근을 하느라 회사, 집만 반복해도 하루를 다 써버리는 주중이 너무 억울했던 걸까? 결혼 초 주말 나들이에 대한 열망은 확실히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에게 슬슬 짜증이 차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연애할 때도 우리는 차가 없었다. 그래도 한 번도 차가 없어서 불편하다거나 가고 싶은 곳을 못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는 대중교통으로 못 갈 곳이 없었고 지방으로 여행을 가도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한 번도 내 남자 친구도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결혼을 앞두고 회사 대리님과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던 중에 어쩌다 차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제 남자 친구는 차가 없어서 거기까진 못 갈 거 같아요."

"뭐? 차가 없어?"

대리님 얼굴은 못 들을 얘기라도 들은 듯 경악스러운 얼굴이었다.

"네. 그런데 불편한 건 없어요."

"하... 29살 먹은 남자가 자기 차도 없다는 거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봐. 아직 결혼 전이니까."

그 얘기를 지하철에서 들었을 때 나는 정확히 내 감정을 기억한다. 나는 그 대리를 심하게 경멸했다. 그리고 완전히 선을 그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회사 내에서는 이것저것 훈수 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 대리는 몇 번 더 나에게 경악했다. 예물, 예단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집도 알아서 우리끼리 준비한다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얼굴을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묘한 쾌감이 생겼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솔직히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 대리의 말이 떠올랐다. '차가 없는 남자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차가 없으면 불편하긴 하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차를 사면 되는 일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차는 너무나 비싼 물건이었다. (3년 후 우리는 작은 차를 샀다.) 이미 삼천포로 빠져버린 마음을 붙들고 간신히 서 있을 때 버스가 저 멀리에서 달려오기 시작했고 이 곳에 사람이 서있는걸 처음 봤다는 듯이 버스는 바로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좀 더 가서 섰다.

밖에서 오들오들 떨었지만 막상 버스를 타니 따뜻했고 안도감도 들었다. 처음 가 본 차이나타운의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눈이 즐거웠고 유명하다는 곳에서 짜장면도 먹고 길거리 음식도 사 먹으니 기분이 한결 풀렸다. 그 유명하다는 신포 닭강정까지 줄 서서 포장했는데 그다음부터가 또 문제였다.

우리는 닭강정 냄새가 매콤하게 퍼지는 박스를 들고 또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30분인가 40분쯤 기다렸던 버스가 드디어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데 우리가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어째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버스 정류장을 홱 지나쳐 버렸다.

남편은 처음으로 짜증을 냈다. 나도 완전히 지쳐 버렸고 닭강정을 길가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택시를 탈까 고민도 해봤지만 여기에서부터 집까지 택시를 타면 통행료까지 합쳐서 얼마가 나올까 싶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겨우겨우 다음에 온 버스를 잡아 탔는데 이제는 이 버스가 굽이 굽이 온 동네를 다 돌고 정류장마다 선 후에 우리 아파트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2시간여 만에 집에 도착해서 식탁 위에 식어버린 닭강정 박스를 올려놨다. 그때 우리는 알 수 없는 적의로 가득 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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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관한 일화가 또 있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설 명절이었다. 한 겨울 눈이 가득 덮여 콜택시를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시댁에 가기 위해 나선 참이었고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옥돔세트를 준비했었다. 옥돔 박스를 들고 우리는 택시를 기다리다 지쳐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밟지 않아 새하얀 눈길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걸었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우리는 도로 한가운데 서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한참 웃었다. (도로도 개통하기 전이었다.) 겨우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도착해서 두 번쯤 더 갈아타고 시댁에 도착했다. 어디 다녀오면 하루가 다 갔다.

"우리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심각한 얼굴로 얘기했다. 그렇다고 이 집을 버리고 서울로 가자니 서울 어디에서 산단 말인가? 한참을 고민해도 답은 없었고 이야기의 끝은 늘 '버스 노선이 많아지면 좋겠다', '얼른 이것저것 세워져서 사람들이 많이 살면 좋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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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차이나타운에 도착하니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나 혼자였고 여전히 뚜벅이인 나는 이번에도 포털 사이트 길 찾기에 가는 길을 검색했다. 8년의 세월이 흘러 검색 결과는 풍성해졌고 선택지가 다양했다. 나는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새로 생긴 수인선을 타기로 했다. 코로나 탓인지, 평일인 탓인지 차이나타운에는 진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햇빛만 쨍쨍할 뿐 너무 고요해서 이상한 기분까지 들었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방문한 김에 여기저기 걸어보고 골목골목 구경도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좀 더 걸어서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똑같은데 마음은 너무 달랐다.

우리는 그때 불안했다. 우리가 한 선택이 맞는지, 결혼 전까지 우리는 당당했는데 자꾸만 불안하고 쪼그라드는 마음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우리의 자만이었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어야 됐던가? 순간순간 흔들리는 마음도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지나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대로 동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건물이 들어선다. 이제 우리처럼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이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까?


간사하기도 하지. 그렇게 아무것도 없다고. 정말 여기 우리밖에 안 사는 것 아니냐고 심란해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건물이 너무 많다고, 원래 이 앞에 뻥 뚫려서 시원한 풍경이었는데 이제 다 가로막혔다고, 어딜 가나 사람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고 있다. 버스 노선은 빼곡하게 채워졌고 심지어 버스가 있어도 타지 않고 슬슬 걸어 다니는 것을 즐긴다.

새삼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주저앉기는 했어도 도망가지는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많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것 마저도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