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온도와 바람, 쾌청한 하늘까지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는 날씨였다. 남편과 나는 광화문의 한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사귀기 전이었다. 친구 사이였던 우리는 휴무가 맞아 점심을 먹기로 한 참이었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남편 대신 내가 앞장섰다. 광화문은 나에게 빠삭한 동네였다. 점심을 어디에서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날씨도 좋으니 좀 걷자고 했다. 광화문에서 흥국생명 빌딩을 지나 정동극장 앞까지 갔다. 정동길은 걸어도 걸어도 좋은 곳이었다. 한참을 걸어 시립 미술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카페는 작지만 2층으로 되어 있었고 우리는 커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빨강머리 앤이 살 법한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 창문과 경사진 벽을 가진 작은 공간이었다. 이상하게 1층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2층에는 우리뿐이었다. 우리는 창문 앞 테이블에 앉아 광합성을 했다.
따뜻한 햇빛이 비췄고 이런저런 얘기도 끊기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서 이 침묵을 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이 공간의 모든 분위기와 공기,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아도 편한 이 순간이 좋았다. 그때 불쑥 남편은 그런 얘길 꺼냈었다.
"우리 아버지 말이야. 옷을 좋아해."
뜬금없는 얘기였다. 가족 얘기를 들어 본 적이 몇 번 없었고 아버지 얘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다 뜬금없이 옷이라니.
"우리 아버지도 옷 좋아해. 예전에 양복점 하셔서 집에 양복이 아직도 많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맞장구쳤다.
"그게 아니라 진짜 병적으로 좋아한다고. 옷이고 신발이고 장신구고 그냥 막 사 오고 집 안에 막 쌓여 있어. 군대 갔다 오니까 집에 방이 3개 있는데 그중에 방 하나가 아버지 옷으로 가득 차서 밖에서는 그 문을 열 수가 없더라. 그 열 수도 없는 방 문 앞에는 구두가 천장까지 쌓여 있고. "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던 그런 집인가? 저장 강박?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물건을 못 버리고 집에만 쌓아두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아르바이트생인지 직원인지 헷갈리는 모호한 직장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는 몇 개월 전부터 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다섯 명의 신입 중에 한 명이었다. 우리는 동갑이라 금방 말을 놓고 친해졌다. 남편의 첫인상은 차가워 보였다. 하얀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속에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거기다 외동아들이라고 하길래 약간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산 도련님 같은 스타일이구나'라고 스스로 선입견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날 그 카페에서 불쑥했던 얘기는 너무 의외였다. 그 이후로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짧은 얘기를 몇 마디 더 덧붙였고 나도 내 가족에 대한 어떤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아무래도 00이랑 결혼할 거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네가 00이랑 결혼하면 나는 ★★이 딸을 낳겠다. (★★은 그때 친구가 썸을 타고 있던 사람이었다)
-진짜. 진지하게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얘 심각하네...
(친구는 내 결혼 후에 두고두고 그 날 내가 보낸 카톡 얘기를 했다. 앞으로 자기 어떻게 살면 되냐고, 돈은 많이 벌겠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그런데 정말 남편이 그 얘길 했던 순간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나는 얘랑 결혼하겠구나.' 뜬금없는 생각이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친구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회사에서 이제 막 알게 된 동갑의 동료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그 생각에 강하게 사로 잡혔다. 친구에게도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남편도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귀하게 자란 도련님'이라고 생각할 때는 묘한 거리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말하기 쉽지 않았을 부모님에 대한 얘길 꺼내는 순간 '너한테 내 얘기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어른들은 예전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남한테 사랑을 줄 줄도 안다, 그러니 사랑받고 자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특유의 자신감이나 사랑스러움, 누구라도 결국은 날 좋아할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을 동경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이 갖고 있는 상식과 이해의 폭이 나와 너무 달랐다.
문제 하나 없는 가정이 어디 있을까? 파고 들어가 보면 어느 집안에나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애정이 기반이 되는 가정이 있다. 우리 집도 시댁도 그런 가정일 것이다. 다만 그걸 느낄 수 없을 뿐.
오히려 반대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했으니 배우자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을 만나야 못 받은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 서면 알 수 없게 자꾸 움츠러들고 내가 너무 어두워 보였다. 누군가의 앞에서 소심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에 끌렸다. 속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있는 그대로 내 얘길 해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결혼에 대해서,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또 가정을 이루려는 시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많은 대화를 하고 수많은 다짐을 했어도 결혼은 실전이었다. 시시각각 나타나는 문제 앞에 우리는 자주 휘청거렸다. 우리가 닮고 싶지 않았던 내 부모의 모습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아차! 싶었지만 결국 이게 닮았다는 건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가 상처 받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았다. 잠시 얼굴에 스쳐가는 쓸쓸함도 읽을 수 있었다. 천진한 얼굴로 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되묻진 않았다. 그게 위안이 됐다. 구구절절 내 감정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5월15일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날이다. 결혼할 줄 알고 시작한 연애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