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싫어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 나는 얼마든지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아침 드라마부터 일일 드라마, 미니시리즈, 주말 드라마 모두 챙겨봐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부부의 세계가 그렇게 난리인데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한 회를 다 본 적이 없다. 다음 날이면 줄거리와 중요 장면이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한다. 드라마를 거의 기사로 읽는 수준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드라마를 즐기지 못하게 됐을까? 그것은 자유 때문이다. 드라마를 봐도 되고, 보지 않아도 되는 무한한 자유가 이제 나에게는 있기 때문에 드라마가 시시해져 버렸다.
어릴 때 드라마 시청은 금지였다. 엄마는 만화영화를 보는 것 외에는 TV 시청을 금지하는 편이었다. 평일 저녁, 일요일 아침에 하는 만화영화로도 만족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나는 이제 낭만을 아는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여전히 TV는 금지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으니 뒤가 불룩 튀어나온 저 브라운관에 펼쳐지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나는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친구들은 가요톱텐에 더 열광했지만, 나도 가끔은 댄스가수들의 무대를 몰래 보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건 미니시리즈 드라마였다. 맞벌이를 시작한 엄마의 퇴근 시간은 좀 애매해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날과 볼 수 없는 날이 들쑥날쑥 이었다. 이제 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데 열쇠 구멍에 열쇠가 꽂히는 소리가 나면 몸은 후다닥 TV를 껐지만 마음은 돌아서지 못하고 종종거렸다.
그렇게 금지된 TV 시청 속에서 야금야금 본 드라마들이 있다. 이 드라마들은 누군가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한 장면쯤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방영 순서대로 얘기하면 1995년 방영한 '재즈'부터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꽤 센세이셔널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했다. 무려 오렌지족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나오고 살인 사건도 등장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이 안경을 쓰고 그들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드라마가 전개된다. 담비라는 이름의 정혜영이 어린 내 눈에도 너무 예뻤고 신비스러웠다. 그리고 특히 끈적한 멜로디로 시작하는 '내 기억 속으로'라는 OST가 압권이다. 이제껏 수많은 드라마를 봐왔지만 아직도 나에게 최고의 드라마 OST는 이것이다. 이건 거의 '재즈'라는 드라마와 한 몸 같은 노래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어지러운 심정만큼이나 이 노래가 나오면 내 마음은 어지러워졌고 그 혼란스러운 마음이 너무나 좋았다.
'다가와.
느끼게 해 줘. 우리만 아는 몸짓으로.
내가 알 수 없었던 너의 슬픔과
너의 사랑도 들을 수 있게...'
1996년 방영한 '8월에 신부'에서 내가 기억하는 건 단 한 장면인데 그 장면이 몇 날 며칠이고 꿈에 나올 정도였고 나중에는 눈을 뜨고 있어도 그 장면이 자동 재생됐다.
정찬과 김지호가 황량한 바닷가에서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정찬이 김지호에게 말한다.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김지호는 처연하고 아련하고 사연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찬에게 안긴다. 파도가 거세게 친다.
나는 확실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저들의 저 사랑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이렇게 운명적인 사랑이 있나 싶고, 별의별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 뒤로 몇 년 동안이나 내 인생에서 가장 낭만적인 대사는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였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바닷가 모래사장에 세워놓고 그 대사를 하는 나를 상상했다. 아무리 상상이래도 그 사람과 둘이 안는 장면까지 상상하지 못한 걸 보면 초등학생에게 그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무려 전생에 관한 드라마였다. 길 가다가 정찬과 비슷한 체형의 남자 뒷모습만 봐도 아련해질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1998년에 방영했던 류시원, 명세빈 주연의 '순수'가 있다. 라디오 PD 류시원과 작가 명세빈이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둘은 이복남매라는 것이 밝혀져서 고뇌하고 아파하는 내용이다. 그때 류시원은 지금의 이미지와는 매우 달리 훤칠한 키에 다정 다감한 이미지로 인기가 높았다. 둘이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깊이 사랑해서 차마 서로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장면을 보고 오열하길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가도 엄마가 오면 후다닥 TV를 꺼야 했고 그 와중에 울었다는 것도 감추려고 세수를 빡빡하기도 했다. 아무리 세수를 해도 엄마는 알았을 거다. 얘가 또 드라마를 보고 질질 짰다는 것을.
금지된 것을 몰래몰래 한다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짜릿한가? 엄마 몰래 TV를 보는 행위 자체가 스릴이 넘치는데 그 와중에 사랑이야기라니. 아무래도 나는 TV에서 뿜어내는 낭만에 너무 심취했던 것 같다. 엄마가 오기 전까지 뒤통수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TV를 보다가 내 방에 혼자 남아 불을 끄면 아까 봤던 그 장면들이 고스란히 영사기를 돌린 듯 재생됐다.
저들은 저렇게 처절하게 사랑하는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저렇듯 고뇌하는데 나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고작 초등학교 5, 6학년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모든 게 다 시시해졌다. 도대체 왜 금을 그어놓고 공으로 사람을 맞춰서 내보내는 피구 경기를 매 체육시간마다 하는 건지, 소풍을 어디로 갈 건지, 그래서 버스 안에서는 누구와 옆 자리에 앉을 것인지 고민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하찮았다. 지금의 나보다 12살의 내가 훨씬 세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고민했다.
내 인생의 드라마라고 할 만큼 몰입해서 봤던 드라마들이 자라면서 얼마나 많았을까? 무한정 자유로워진 나는 드라마에 자주 심취했고 몰입해서 잘 빠져나오지 못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수많은 주인공들을 동경했고 그런 사랑을 부러워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잘 잊어버렸고 결국엔 어떤 장면도 남아있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어린 시절 봤던 드라마의 어떤 장면들과 그 날의 내 모습 같은 것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에 그만큼 강렬했다는 의미겠지. 그냥 놀이터에 나가서 얼음땡이나 좀 더 하지 그랬니? 싶기도 하지만 그때 내가 심취했던 것들이 결국 내 감성을 만들고 그 이후에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기반이 됐다고 생각한다. 생각난 김에 '내 기억 속으로'나 한번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