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도 좀 번역해줘 Ⅱ

by 김밀


엄마는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서 일을 해야 했고 자신의 신세가 가여웠고 길 가다가 눈물이 터지는 날도 많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라도 화를 내고 싶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디에나 화를 낼 수도 없었고 자식만큼 그러기에 만만한 대상도 없었으리라. 그중에서도 큰 딸은 거의 그런 엄마의 넋두리를 들어주기 위해 맞춤형으로 태어난 존재나 다름없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랬다는 건 아니었고 나는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욕을 먹을 말이지만 나는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보다 엄마가 어려웠다. 엄마가 불쌍해서 엄마로부터 놓여 날 자신이 없었다. 내 존재 자체가 커다란 죄책감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 돈 번다고 나가서 하루 종일 종종거리고 다니는데 자식새끼들 중에 어느 놈 하나라도 먼저 나서서 엄마 위하는 놈이 없고. 내가 돈을 뭐하러 벌어? 내가 뭐한다고 이러고 살아?"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친구들이 한 말이 있다.

"아니 뭐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이렇게 사연 있는 여자처럼 나왔어?"

나는 내가 봐도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티면 좋을지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또 무슨 얘길 듣게 될지, 내가 바로 잡을 수 있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떨어져 살게 되니 엄마의 연락이 잦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이 오고 전화가 왔다. 했던 얘길 하고 또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를 한 번 보러 가고 싶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도 마음에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연락도 없이 엄마가 일하는 가게로 찾아갔다. 그때 엄마 얼굴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건 당혹 그 자체였다. 몰래 빌린 돈을 받으러 사채업자가 갑자기 들이닥친 것처럼 엄마는 당황했다. 가게에는 엄마와 같이 일하는 주방 이모가 한 분 있었고 사랑방처럼 가게를 드나드는 교회 집사님들이 몇 분 있었다.

"... 너 왜 왔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들어선 이상 되돌아 나갈 수도 없었다.

"그냥. 엄마 보려고 왔지."

가게에 있던 사람들은 아! 딸이야? 저번에 결혼했다는? 하면서 얼굴이 밝아졌고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사람들 중에 웃지 않고 있는 건 엄마와 나뿐이었다.

"어머 뭐 뚱뚱하니, 못 생겼느니 하더니 그렇지도 않네."

아마 그 집사님은 나를 위한다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전해 들은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엄마는 자주 나를 부끄러워했고 사람들한테 그런 식으로 내 소개를 해놓는 일이 잦았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마 엄마는 그 날 가게에 들어 선 내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가게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엄마는 처음으로 어정쩡하게 웃었다.

"아우. 뭐가 안 그래. 너 근데 왜 왔어?"

나는 급하게 동네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들른 거라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사실은 눈물이 터지려고 해서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나를 따라 나오기는 나왔다.

"말하고 와야지. 그렇게 불쑥 오면 어떡하냐. 다음부터는 말하고 와. 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친정엄마가 생각나서 온 것이었다. 10분 거리에 사는 것도 아니고 아예 도시가 달라졌는데도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엄마를 보고 기대도 없었지만 그마저도 무너져 고아라도 된 듯 서러웠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엄마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왔으면 밥이라도 먹고 가던가. 입은 이만큼 나와서 울상을 해 갖고. 차라리 뭐가 불만이라고 말을 하던가. 앞으로 그럴 거면 오지 마.

지금 내 나이라면 웃음으로, 농담으로 그 순간을 넘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죠? 저 못생기지 않았죠? 맨날 엄마는 저보고 뭐라고 한다니까요. 저 온 김에 밥 먹고 갈래요."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 많은 숱한 싸움 속에서도 이혼 서류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 서류가 등장했다. 놀랍게도 엄마 쪽에서가 아니라 아버지 쪽에서였다. 내가 결혼한 후니까 정말 수년만에 아버지와 엄마의 큰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한테서도 엄마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잘못했네, 엄마가 말을 잘못했네요. 이 쪽 저 쪽 얘길 하느라 전화통이 불이 났다. 그런데 어쩐지 아버지가 결연했다.

"나 이번에 진짜 이혼할 거다. 너희 엄마랑 사는 거 나도 이젠 못 견뎌. 사람을 은근히 피 말리고 무시하고."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엄마 험담을 하는 것은. 평생 아버지 험담을 듣고 자란 내가 어쩐지 아버지 쪽으로 조금은 마음이 더 기울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버지가 엄마 흉을 본 일이 없다는 것도 한 몫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런 얘길 꺼냈을 때 이번에는 심각하구나 싶었다.


"아우 속이 다 시원하다. 내가 평생 이혼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쪽에서 알아서 이혼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이제 나도 아주 자유롭게 살 거야. 아주 잘됐어."

엄마는 진짜 시원한 듯 뻥뻥 큰 소리를 쳤다. 이혼해야지, 이혼할 거야, 벌써 이혼했지 소리를 엄마로부터 늘 듣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엄마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자유를 얻겠구나 싶었다.

"그래. 엄마도 아버지 때문에 참고 산 시간도 길고 맨날 우리 때문에 살았다고 했잖아. 이제 우리도 다 컸고 엄마도 이제 이혼하고 편하게 살아.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얘기했어."

"아버지한테 전화 왔었어?"

"응. 아버지는 벌써 결심하신 거 같더라."

엄마는 갑자기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혼 얘길 꺼낸 아버지는 법원을 들락거리며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다. 상황이 점점 이혼으로 향해가고 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아빠한테 또 전화 온 거 없어?"

"뭐 별 다른 얘긴 없었어."

"아니 너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뭐? 왜?"

"아니 지금 부모가 이혼하게 생겼는데 자식새끼가 손 놓고 가만히 있을 거냐고?"

".... 아니 평생 이혼하고 싶다고 한 사람 엄마 아냐?"

"나쁜 년. 세상에 너 같은 자식이 어딨냐? 부모가 이혼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뜯어말려야지. 그걸 이혼하라고 부추기고 있어? 나쁜 년"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정말 멍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퓨즈가 나간 것 같았다. 일시정지. 그럼 내가 30년이 넘게 들어온 얘기들은 다 뭐였단 말인가? 그건 그야말로 그냥 하는 소리였던가? 솔직히 나는 치가 떨렸다. 어느 쪽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제 와서 이혼하면 뭐하겠냐고, 아직 결혼 안 한 자식도 있는데 마음 돌려야지 이렇게 갈라설 것이냐며 엄마가 화해를 청했고 아버지는 그 화해를 받아 줬다고 한다.




아주 질 나쁜 장난에 당한 기분이었다. 내 부모를 보면서 부부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저들을 묶는 유일한 힘은 자식뿐일까? 미움 말고 애정 같은 원료가 있긴 한 걸까? 평생을 궁금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렇게 헤어지길 원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면서 살기도 했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이 제일 속상했다. 그렇게 자식 탓을 할 거면 차라리 헤어졌으면 싶었다. 그런데 사실은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니. 사실은 이혼을 원한 게 아니었다니. 그야말로 그건 그냥 넋두리였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마음을 많이 놔버렸다. 내 머리로는 도무지 내 부모의 말을, 내 엄마의 말을 해석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도, 반대로 받아들이기에도, 이면의 뜻을 파헤치기에도 매번 실패했다. 살아도 살아도 어려웠다.

번역기가 있다면 엄마의 말을 100% 번역할 수 있을까? 내가 그나마 조금 짐작하는 것은 엄마도 엄마 마음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갈팡질팡 할 때마다 그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수시로 변하는 변덕을 다 부리는 것도 결국에는 본인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인도 모르는 마음을 자식이지만 타인은 절대 알 수 없다. 나이를 먹고 유일하게 그것 하나를 깨달았다.

비가 오니 빗길에 운전하지 말고 집에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서 내가 만든 제육과 사골을 먹고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 모두 엄마 마음에 있었을 것이다. 늘 엄마 마음속에 있는 그 두 가지 마음 때문에 나는 혼란스러웠고 끝끝내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이 되었다. 깨달음을 얻었지만 잘 안된다. 무의식 중에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자동 센서가 발동하는 모양이다. 지그시 센서를 눌러 꺼 본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더 이상 내 영역이 아니라고.


(그래도 엄마가 이 글을 보지 않기를. 끝끝내 브런치의 존재를 모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