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설] 김지은입니다-김지은

by 김밀


채널을 돌리다 그 인터뷰를 잠시 봤다. 검은색 재킷을 입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여자가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어느 정도보다 나는 다시 채널을 돌렸다.

김지은에 대한 이야길 먼저 꺼낸 건 엄마였다. 엄마는 통화에서 느닷없이 어제 본 뉴스 얘길 했다. 그리고 "그 여자 좀 이상해 보이지 않아?"

라고 했다. 엄마는 안희정이라는 사람도 잘 모르고 정치라면 무관심하다. 안희정을 두둔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 날 김지은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성폭행을 당한 여자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나도 포털 사이트의 자극적인 기사에 이끌려 그녀가 안희정에게 보냈다는 문자, 침실에서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기사들을 봤다. 기사 밑에는 불륜을 미투로 포장했느니, 한 가정을 파탄 내놓고 뻔뻔하다느니 갖은 욕설이 달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어느 쪽의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아니, 매일매일 무의식적으로 연예기사를 소비하듯 그냥 넘겨버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늘 가는 인터넷 서점의 메인에 이 책이 걸렸다. 제목에 이끌려 클릭했다가 이 책을 쓴 사람이 그 김지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니 별점 및 구독 후기들이 가득했다. 거의 별점 다섯 개였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김지은 씨에게 빚을 졌어요’ 등의 찬사가 이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가장 최근에 했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댓글을 읽었다. ‘그만 좀 해라, 얼굴이 두꺼워도 유분수지, 이젠 이걸로 책까지 팔아먹는다, 솔직히 민주원만 불쌍하지’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은 내가 본 인터넷 서점의 댓글의 온도와는 정 반대로 그녀를 비난하느라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김지은에게 일어난 일이 궁금해졌다. 어떤 미투에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용암처럼 들끓는 경우를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피해자를 비난할까?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왜 그녀에게 무한 찬사를 보낼까?


저녁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결국 나는 그날 밤을 설치고 아침부터 이 책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끝까지 읽었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 여자 이상해 보이지 않아?’

이상한 여자 김지은, 피해자답지 않은 김지은, 수행 비서답지 않았던 김지은, 00 답지 않아서 그녀를 믿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2년을 버텼다. 그야말로 버텨냈다.

총 4번의 성폭행, 그 외에 수많은 성추행, 근로기준법 따위는 통용되지 않는 근무 강도와 시간, 상명하복의 철저한 그들만의 세계 속에 김지은이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언론에서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김지은에게 물었다. 고학력의 엘리트코스를 밟은 여성이 왜 4번이나 성폭행을 당했나? 왜 거절의 의사를 명백히 밝히지 않았나? (여기에서 품게 된 의문은 대체 어느 정도 학력이면 그런 일을 당해도 수긍이 가는가? 여기에서 학력이 왜 나오는가?)

그렇기에 김지은은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했고 도지사를 연모했고 그것은 불륜일지언정 폭행이라는 거친 이름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목소리보다 가해자의 부인이 내는 연극 대본 한쪽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웃긴 일이었다. 가해자의 부인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며 김지은에게는 나쁜 년, 가정을 파탄내고 남자가 돌아서니 복수한 년 등의 갖가지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그 모든 비난과 거짓의 촘촘한 바늘 속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회사 회식을 빠지는 일에도 눈치를 보며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연차를 쓰는 일에도 동료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회사의 강압과 불합리 속에서 한 달치의 돈을 벌기 위해 얼마든지 허리를 굽혀 본 사람들이 어째서 성에 대한 문제만큼은 거절하지 않았느냐?라고 이중잣대를 들이대는가 말이다.

그녀는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였다. 한 달치의 월급이 필요했고, 그 월급이 있어야 그 달의 생활이 가능했다. 더군다나 일반 직장과 비교해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안에서 그녀가 8개월 만에라도 이 사건을 터트리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들만의 제왕을 심판대에 세우기로 마음먹는 일은 엄청난 용기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가해자가 가해자답게 사죄하고 반성하며 살지도 않는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여전히 그녀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데 피해자는 어째서 피해자다워야 하는가? 사람들이 말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같은 행동은 대체 무엇인가? 인생이 끝난 듯 넋이 나가 있어야 하고, 몸을 웅크리고 아무와도 만나려 하지 않아야 하는가? 그건 가해자에게 요구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조할 일이 아니라, 오전에는 미투를 지지한다고 하고 밤에는 자신을 미투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또 한 번의 성폭행을 자행한 그 사람에게 강요할 일이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누가 대체 성폭력을 당했다며 제 인생을 그렇게 해체하면서까지 강간 경험을 내놓을까? 내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새빨갛게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죽는다면 더한 거짓말로 모든 게 새롭게 날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안희정 측 변호사는 내 결혼 경험과 학력, 나이가 왜 이번 사건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271p)


그녀는 끝내 생존하여 (어느 정도 이상한 여자 같다는 말에 동의하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사건이 가진 의미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그녀는 제대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고, 뉴스에 나와 구조 요청을 보냈다. 그녀가 그 인터뷰에서 보여 준 표정, 말투, 얼굴의 생김새, 옷차림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김지은'이라는 사람만 나노 단위로 분석했다. 왜 피해자를 분석하는가? 아니, 사람들은 그녀가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싫은 듯하다. 자신이 호감을 가졌던 정치인, 차기 대통령으로 뽑고 싶었던 인물, 그 사람의 부인이 올린 눈물의 호소를 더 믿고 싶어 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고 그녀가 보낸 구조 요청이 받아들여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얼마나 많은 선입견을 가진 인간인가? 내 좁은 경험, 내가 알고 있는 얕은 지식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얼마나 많은 판단을 내리는가? 이 책을 읽고 나는 두려워졌다.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리는 가치 판단,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이 정말 옳은 일인가? 끊임없는 자기 검열, 선입견을 깨려는 노력이 동반하지 않는다면 결국 눈이 어두워진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녀에게 빚졌다는 구독 후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