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대상을 찾아서
2020년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저희는 여섯 명쯤 아이를 낳을 생각이에요.'라고 선언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계획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다짐보다 지금은 더 놀라운 수 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둘은 결혼을 앞두고 자식을 최대한 많이 낳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식구를 감당할 수 있는 큰 저택을 원했다. 그들의 바람대로 런던 근교에 있는 큰 저택을 신혼집으로 구했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다.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대로 그 저택에 사람들을 초대해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집에서 끊이지 않았고 한 소녀는 해리엇을 롤 모델로 삼았다.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었던 사람들도 그들의 집에서 안온하고 완성된 가정의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고 모든 상황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벤은 확실히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태어난 순간부터 너무 크고 힘이 센 아이였던 벤은 보통의 아이들과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갖게 했다. 벤의 폭력성이 목격되는 날이 많아지고 다른 형제들은 벤을 피하기 시작했다. 부모도 벤을 통제하지 못하겠다고 느꼈을 때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파티는 지속되기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저택에 방문하지 않았다. 친척들은 벤을 시설에 맡기자고 해리엇을 설득했다. 해리엇은 마지못해 그들의 제안에 응하고 벤은 보호 시설에 갇혔다. 어느 날 해리엇은 강한 충동에 이끌려 벤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거의 죽기 직전의 벤을 집으로 데려온다. 모든 평화는 그 날로 다시 깨져 버렸고 자식들도, 그녀의 어머니도, 심지어 데이비드도 저택을 떠난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전 그저 죄인이죠!" (140p)
"난 그런 말을 누가 했으면 하고 원하는 거예요. 난 그런 사실이 인정되기를 원해요.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 없다는 사실을 난 참을 수가 없어요."
"그 일이 내 능력 밖이라는 사실을 모르겠어요? 내가 이 애를 우리에 가두시오 라는 편지를 동물원에 써 주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과학자들에게 그 애를 넘기기를?"
"하느님 , 맙소사. 물론 그건 아니죠." 해리엇이 대답했다.
(...)
의사의 얼굴에서 그녀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을 보았다. 그 여인이 느끼고 있는 것이 투영된, 어둡고 고정된 시선이었다. 그것은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정상인의 거부, 이질성에 대한 공포, 또한 벤을 낳은 해리엇에 대한 공포였다. (143p)
불쌍한 데이비드... 항상 그런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을 해리엇은 알았다. 때때로 불쌍한 해리엇, 그러나 그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항상 무책임한 해리엇, 이기적인 해리엇, 미친 해리엇... (158p)
저택에 모인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친척들과 지인들은 전복된 가정의 책임을 해리엇에게 물었다. 왜 그녀는 아이를 이렇게 많이 낳으려고 했지? 왜 벤같이 이상한 아이를 낳았지? 왜 벤을 다시 데려왔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이 저택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해리엇의 꿈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고 느꼈던 사람들조차 벤이 태어나자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로 돌아갔다. 타인의 불행을 미리 예견한 듯 팔짱을 껴고 전능감을 느끼는 사람들 속에서 해리엇은 도대체 이 불행의 이름이 뭐냐고 외친다. 함께 꿈을 꾸었던 데이비드도 벤의 출산을 도왔던 의사도, 벤을 검사한 의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그녀를 두려워했다. 벤을 낳은 해리엇 자체가 모든 불행의 원인인 것처럼.
그렇다면 해리엇이 벤을 그대로 보호소에 두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5명의 자식들은 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 집을 편안히 돌아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발길을 끊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음식 냄새가 멀리까지 퍼졌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드와의 관계는 예전과 같이 유지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집에 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할 수 있는 방문자는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존재감이 큰 아이였던 벤이 저택에서 없음으로 파티는 유지되지만 오히려 그의 부재는 더 큰 존재감으로 부각될 수 있다. 그래서 그 순간 느껴지는 죄책감을 메우기 위해 찾는 이름은 결국 해리엇이다. 왜 사람들은 벤의 아버지인 데이비드를 욕하지 않는가? 벤에게 일말의 부성애도 보이지 않았던 데이비드였다. 보호소로 보내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도 데이비드는 망설임이 없었다. 해리엇이 결국 벤을 데려왔을 때 가장 큰 좌절감을 느낀 것도 데이비드였다. 그렇다면 이런 아버지 데이비드는 지탄받을 부분은 없는가?
... 그녀는 완고하게 주장했다.
"우린 행복해지려고 했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니, 나는 행복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결코 없어.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려고 했지. 그래서 바로 번개가 떨어진 거야."
"그만둬, 해리엇! 당신은 그 생각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몰라? 유대인 학살과 형벌, 마녀 화형과 분노한 신들!"
그는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희생양들"
해리엇이 말했다.
"희생양도 잊지 마"
"수천 년 전부터 앙심을 품은 신들"
그가 마음속 깊이 불안해하면서 화가 나서 주장하는 것임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처벌하는 신들. 불복종에 대해 처단을 하고 있어."
"하지만 이러저러하게 되리라고 결정한 우리가 대체 누구야?"
"누구냐고? 우리가 그렇게 한 거야.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우리는 우리가 믿고 행한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졌어. 그리고... 불운이 닥쳤지. 그게 다야. 우리는 쉽게 성공할 수도 있었어. 우리가 계획했던 그대로 될 수도 있었어. 이 집안에 여섯 명의 아이가 있고 모두들 행복해하는.... 글쎄, 가능한 한." (159p)
작가는 자꾸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당신들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어? 그녀가 아이를 최대한 많이 낳겠다고 했을 때, 첫 아이를 낳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어? 벤을 다시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책임한 모성애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결국 모두 그녀를 비난할 때 당신도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어?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날카롭게 나를 찌른다. 나 또한 그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을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전가하는 사회의 시선은 해리엇의 꿈보다 확실히 미개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60년대다. 그 시대에서 약 6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어쩐지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