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도 무사히 집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만 하면 된다. 나가면 어쩔 수 없이 걷게 된다. 잠시 걷다 돌아오긴 더 어렵다. 걷다 보면 속도가 붙으니까.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다리를 바지에 끼워 넣고,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하루치의 걷기를 할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걷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 때가 있다.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자기혐오에 빠졌을 때다. 살짝 감상에 젖는 정도가 아니라 푹 절여졌을 때, 내 마음이 오이지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시큼털털하게 느껴질 때 걸어볼까? 생각이 든다.
본능적으로 안다. 걷다 보면 염분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도.
삼 남매는 늘 집에서만 놀았다. 방 한 칸이나 다름없는 좁은 집에서 애들마저 한 귀퉁이씩 차지하고 있으니 엄마는 답답해서 화가 많이 났다. 빗자루를 들고 애들을 내쫓았다.
"1시간 있다 들어와. 그전에 들어오면 알아서 해!"
삼 남매는 쫓겨나고도 집 앞에서 한참 서로 눈치만 봤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 동네에서 어린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어린이라고 놀이터로 향했다. 한 번도 놀이터에서 놀아 본 적도 없으면서. 놀이터에 도착하니 더 막막했다. 이곳에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막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 들어가도 될까? 쭈뼛거리며 놀이터에 들어가서 그네를 하나씩 차지하고 일단 앉았다. 그네를 타는 것도 아니고 안타는 것도 아닌 상태로 땀까지 흘려가며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애들을 흘깃거렸다.
"야! 안 탈 거면 나와!"
금세 그네도 뺏겼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놀이터 벽에 바짝 붙어서 다른 애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을 사렸다.
"누나 몇 분 지났어?"
동생이 물으면 나는 옆에 있는 슈퍼 앞으로 가 커다란 시계를 봤다. 엄마가 말한 1시간이 너무 길어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시간이 무섭다는 것을 그 순간 온몸으로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살짝만 몸을 돌려도 누군가와 살이 닿았던 그 집이 끔찍해서 딱 1시간만이라도 혼자 있길 원했던 것 같다. 그때 삼 남매를 내쫓지 말고 엄마가 나가서 1시간만 걷다 들어왔다면 엄마의 상태는 좀 더 좋아졌을 텐데. 우리가 1시간을 겨우겨우 채우고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그렇게 참담한 얼굴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깊은 우울증과 무기력이 엄마의 다리를 붙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놀이터에 나가서 같이 놀 친구가 없었던 우리처럼 엄마에게도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자고, 잠깐 앞에 나가서 걷자고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
삶이 무너질 때 나 또한 같이 걷자고 말해주는 이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 끝이 무서워서라도 나는 걷기로 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잠식당하기 전에 팔을 크게 앞 뒤로 털어주면서 앞으로, 앞으로 다리를 뻗었다.
요즘 아침마다 걷는 나는 어떤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예방주사를 맞듯, 비타민을 챙겨 먹듯 걷고 있다. 어떤 일이 다가와도 크게 앓지 않고 지나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