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용기

by 김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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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일찍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 평소 같으면 남편은 안돼. 못 일어나. 혼자 갔다 와. 했을 텐데 조금 꾸물거리다 일어났다. 나는 신나서 옷을 챙겨 입었다. 산책이라고 했지만 설렁설렁 걷는 느낌은 아니었다. 남편이 힘들다고 하면 돌아서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하기에 원래 내가 반환점이라고 생각하는 곳까지 갔다. 점점 걸음이 느려지던 우리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바닷물이 반쯤 빠져나간 갯벌 위에는 갈매기가 빼곡히 줄을 서서 식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습적으로 펼쳐진 풍경에 우린 넋을 잃었다. 매일 봐도 똑같은 바다는 없다. 조금씩 하늘도, 바다도 다르다. 강도 높은 산책 덕분에 땀으로 범벅을 하고 아파트에 들어섰다.

"햄버거 시켜먹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운동 안 하고도 먹었는데 운동했으니까 진짜 먹어도 돼!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변명하느라 바빴다. 햄버거를 주문해놓고 샤워를 하고 청소기까지 돌렸다. 물걸레질까지 해서 반짝반짝해진 집에서 커튼은 바람에 나부꼈고 우리는 개운했다.

마침 햄버거가 도착했다. 우리는 햄버거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진짜 완벽한 주말이구만!"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주말 풍경이었다.




이번에 이사를 오면서 입주 청소를 예약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몇 개의 업체가 나왔는데 그중에 우리 단지에서 청소한 후기를 올려놓은 업체를 선택했다. 비포 애프터 사진으로 잘 정리해놓은 후기를 보니 마음에 들었다.

"몇 평이에요?"

"46형이에요. 평수는 스무 평 정도라고 하던데"

"그럼 25만 원이에요. 아침 9시까지 갈게요."

청소를 예약한 날 아침이 되어 관리실에서 열쇠를 받아 갔다. 문을 열고 집을 둘러보고 있자니 카트 끄는 소리와 함께 중년의 여자분 두 분이 들어왔다. 청소도구와 약품을 가득 실은 카트를 현관으로 들이밀며 나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장님이 느닷없이 말했다.

"와. 진짜 더럽네요. 세상에 어쩜 이렇게 더럽게 해 놓고 살았대요?"

나는 좀 당황했다. 왜냐면 집을 보러 왔을 때 이만하면 깨끗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를 나간 집이니 치워놓고 가지도 않았을 거고 어느 정도 더럽겠다 예상했는데 도배도, 장판도 싹 새로 되어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화장실이나 주방의 싱크대, 가스레인지가 있던 자리 정도는 더러웠지만 이 정도도 생활 흔적 없이 어떻게 쓴단 말인가? 또 그러니 청소업체를 굳이 부른 것이기도 하고. 그냥 매번 하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끝이 아니었다. 내가 블로그를 통해 봤던 비포 사진인 듯 청소 전 방방마다 사진을 찍으면서 연신 불평이 쏟아졌다.

"아우. 정말 더럽다. 내가 ◇단지, ◆단지 다 청소해봤는데 확실히 다른 아파트에 비해서 훨씬 더러워. 금방 살다 나갈 집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어쩜 이렇게 더럽게 살아? 어머어머 화장실 이거 뭐야? 서울역 화장실이 더 깨끗하겠네."

사장님이 말한 ◇단지, ◆단지는 국민임대 아파트였다. ◇단지에 사는 내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것도 보지 못했는지 사장님은 끝까지 혀를 찼다. 그 순간은 그저 당황스럽고 얼떨떨한 기분에 몇 시에 청소가 끝나냐고만 묻고 집으로 돌아왔다. 놀이터를 건너 집으로 돌아와서 곱씹어 볼수록 속이 상했다. 내일 이사 간다고 집에는 미리 싸놓은 짐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화장실과 베란다를 둘러봤다. 세제를 풀고 청소를 시작했다.

2시쯤 끝난다는 얘기에 시간보다 10분 정도 전에 미리 갔다. 현관을 닦고 있던 사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아래 위로 훑더니 빈손으로 왔어요? 음료수라도 사 갖고 와야지. 젊은 사람이라 그런가? 대뜸 말했다. 나도 고생하시는 분들한테 물이니, 간식거리니 챙기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길가던 사람한테 우리 집 청소를 하라고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엄연히 요청한 청소 대금을 지불하고 맡긴 건데 이제는 음료수를 안 사 왔다고 이런 타박을 듣다니. 내내 속상한 마음에 음료수 따위를 챙길 기분도 아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당연히 이곳저곳 청소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깨끗해진 집을 보니 마음이 좀 누그러지기도 했다.

"내가 멀리까지 청소 다녀봐도 LH만큼 더러운 아파트가 없어요. 이상하게 그렇더라고. 솔직히 이런 집은 청소 뼈 빠지게 해 봐야 청소한 티도 안 나고 우리도 힘 빠져. 바뀐 거 잘 모르겠죠? 새집이 아니어서 그래."

"깨끗해요. 오기 전에 돈은 계좌로 입금했어요."

사장님은 핸드폰을 얼른 꺼내 계좌를 확인하더니 금세 얼굴이 풀어지면서 이것도 원래 돈 받고 해주는 건데 하면서 피톤치드를 뿌려주겠다고 했다. 피톤치드고 뭐고 나는 얼른 두 사람이 이 집에서 나가줬으면 싶었다. 새로 이사 오는 집에 이런 험담이라니. 왜 나는 또 한마디도 못했을까!




두 사람이 돌아가고 혼자 집에 남겨지니 괜히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LH에서 순번이 돌아와 한 달 내로 이사 갈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회사만 아니었으면 기뻐서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친정이며 시댁에서 경제적으로 아무 지원도 받을 수 없었어도, 사회 초년생이라 남편이나 나나 모은 돈이 거의 없었을 때도 국민임대 아파트가 됐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휴거라느니, 임대 아파트 아이들을 따돌린다는 기사를 보면 기운이 빠지기도 했지만 우린 이 집이 있어서 행복했다.

이 곳에 들어오고 주변에 친한 사람부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정말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도 이 곳에 살기 전까지 국민임대 아파트가 뭔지도 잘 몰랐다. 홈페이지를 들어가 봐도 종류가 너무 다양했고 이것과 저것의 차이점이 뭐고 그러니 나는 이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얼마인지 아무리 봐도 어려웠다. 그래도 절박하면 다 하게 된다고 끝나지 않을 만큼 서류를 떼러 다니면서도 지치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는 사람마다 최대한 자세히 성실하게 답변해줬다. 서류를 뭘 떼야하고 공고가 올라오는지 확인은 어떻게 하고, 심지어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문의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질문했지만 한 명도 임대 아파트에 나처럼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당첨되고도 들어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각자 사정이 다 다르니 일반화할 수 없지만 점점 나는 사람들이 와 정말 싸다! 진짜 부럽다!라고 했던 말들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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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임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어떤 용기가 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어느 아파트 살아요?라고 물어볼 때 머뭇거리지 않고 LH요!라고 한 번에 말할 수 있는 용기, 거긴 일반 아파트 아니죠? 거긴 어떻게 들어가는 거예요? 소득 뭐라던데.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을 용기, 언제까지 거기 살 거야? 대출받아서 신축 아파트로 옮겨. 요즘에 대출 안 끼는 집이 어딨어. 너무 안정적으로만 살려고 해도 발전이 없어.라는 오지랖 섞인 걱정에도 의연해질 용기 같은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토요일 오후 이 작고 안락한 집에서 최고의 휴일을 맛봤다. 다시 한번 이사하길 잘했다고 서로의 공을 치하하며. 밖에서 보면 대규모 브랜드 아파트 공사현장 앞에 이름도 잘 안 보이는 아파트 단지일지도 모르겠다. 자이도 아니고 푸르지오도 아니지만 여긴 그저 우리 집,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 준 소중한 보금자리다. 가끔 이 집이 족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 집에 살 수밖에 없는 우리 형편을 탓하기도 하고, 이 곳을 못 벗어나는 것이 갑갑할 때도 있었다. 남들 말에 흔들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고작 하루 이틀이면 그런 심란한 마음은 가라앉았다. 사장님은 잠깐 살다 가는 집이라고 얘기했지만 이전 집에서도 나는 7년이 넘게 살았고 이 집에서도 생각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 곳은 머무는 집, 머물 수 있어서 좋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