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후유증
어머님, 자식 대신에 화분을 키울게요.
겨우 놀이터 하나 건너온 같은 단지 내의 이사긴 했지만 8년 만의 이사였다. 양쪽 부모님은 대충 정리되면 초대하라는 전화를 남기셨다. 그렇게 계획한 2주간의 집들이 대장정이 끝났다. 양쪽 식구들이 한주씩 번갈아 방문했다. 친정부모님이 왔다 가시고 우린 한차례 싸웠다. 시어머님이 왔다가시고 남편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집들이는 고됐다. 집들이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친정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면 아침부터 배가 자주 아팠다. 체력장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던 후로 이런 긴장감은 흔치 않았다. 체력장 때문에 중학교도 자퇴하고 싶었던 나였다. 남편은 친정부모님이 오시는 일에 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시부모님이라면 모를까.
이번에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쓸고 닦고, 두 번 세 번 돌돌이로 머리카락이나 소파 위의 먼지를 떼고 다녔다. 지하철역으로 마중을 하러 가면서 날이 흐려서 실망스러웠다. 날씨가 좋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날씨는 기분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부모님은 마스크를 낀 채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차를 타려는데 그냥 근처에서 아무거나 먹자, 어디까지 갈 거냐, 몇 분이나 걸리냐 질문이 쏟아졌다. 진작부터 엄마는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자고 한터였다. 하지만 엄마 환갑 생신까지 겸한 집들이에서 진짜 내가 라면이나 끓여왔다면 어땠을까?
동네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 있었다. 우리도 몇 차례 가봤지만 갈 때마다 맛이 좋은 식당이었다. 20분 정도 차를 달려 식당 있는 곳으로 가는데 느낌이 싸했다. 진입하기도 전에 차가 막혔다. 주차장과 그 주변 도로도 이미 차가 가득했다. 기다릴 리도 없겠지만 아버지는 보자마다 차부터 돌리라고 난리다. 비까지 떨어지는 이 흐린 날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차를 돌려 근처 칼국수집으로 갔으나 대기 50분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신이 아득해졌다. 할 수 없이 허름하긴 했어도 우리가 몇 번 가서 맛이 검증된 칼국수집으로 갔다. 다행히 여유 있게 자리가 있었고 빠르게 칼국수와 파전 하나를 주문했다. 파전이 먼저 나왔는데 너무나도 길고 까만 머리카락이 엄마의 젓가락질 몇 번 사이에 2개나 걸려 나왔다. 엄마의 미간은 신속하게 찌푸려졌고 주인아저씨가 소환됐다. 다행히 칼국수는 해물이 산처럼 쌓여서 만족스럽게 나왔고 바닥까지 비웠다.
부모님은 새 집을 마음에 들어하셨다. 그 전 집보다 방 하나 더 있을 뿐이지만 훨씬 넓어 보이고 예쁘게 꾸몄다고 흔치 않게 칭찬도 해주셨다. 미리 맞춘 환갑 떡을 앞에 두고 사진도 하나씩 찍고 집들이의 마무리는 괜찮았다.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저녁 늦게 일어나 멍하게 앉아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이런 전화는 반가운 쪽은 확실히 아니다. 다분히 품평의 의도가 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았다. 집이 좋더라는 몇 마디 서론 뒤에 역시 본론이 나온다.
"아버지는 집에 와서 저녁에 내가 밥 차려주니까 밖에서 사 먹는 음식보다 이게 훨씬 낫다더라. 돈 주고 어디 나가 사 먹지 말아야 돼. 그리고 아까 그거 해물전도 봐라. 기름이 가득해서. 몸에 제일 안 좋은 게 기름이야. 밖에 나가서 그런 거 먹고 돌아다니지 말어."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항상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오면 그 날 저녁 엄마의 품평회 시간이 있었다. 카톡이나 전화로 방어도 못하게 날아들어 그날 들인 노력과 에너지를 허무하게 무너뜨리곤 했다.
"오늘 내가 너 돈 쓴 거 보니까 넌 실속 있게 돈 쓰는 법 좀 배워야겠더라. 어디 그렇게 화려하기만 하고 먹을 거 없는걸 돈 주고 사 왔냐?"
"호텔 뷔페라고 비싸기만 하고 배불러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뭐 젓가락 갈 만한 것도 없고 다음부터 이런데는 가지 마라."
예상을 했어도 기운은 빠지고 서운하다. 그런 얘기 아버지랑 둘이 식탁에서 1시간을 한들 누가 뭐라고 할까? 나한테 굳이 전해야 되나? 그리고 파전을 그럼 기름으로 부치지, 공기로 부치냐고! 조개껍데기 산처럼 쌓아놓고 칼국수 그릇 바닥이 다 보이게 먹을 땐 언제고. 부글부글. 하지 못한 말이 가슴에 차올랐다.
남편은 전화를 끊고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 왜? 뭐라셔?라고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에 통화 내용을 전달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러시는데 매번 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속상해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지. 네가 그러면 옆에 있는 나도 짜증 나."
아니 이건 또 무슨 얘기람. 남편의 말에 결국 스파크가 튀었다. 화르륵. 우린 식탁에 앉아 울고 불고 한차례씩 바람을 쐬겠다며 나갔다 와서 후폭풍을 끝냈다.
일주일 후 어머님과 이모님이 오셨다. 몇 시쯤 도착하실지 전화하니 글쎄. 오늘 갈지 말지 모르겠다는 애매한 대답이 떨어졌다. 무슨 말이야? 온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남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아니. 너희 바쁘면 그냥 볼일 봐. 뭐가 바빠? 오늘 쉬는 날인데. 확실히 말해줘. 어머님은 미지근하게 가겠다고 말씀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했다. 남편은 이미 심기가 불편하다.
어머님과 이모님은 갈지 말지 모르겠다는 말과 달리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셨다. 날씨가 화창하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 와중에도 우리 부모님 왔을 때도 이렇게 날씨가 좋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스쳤다. 날씨가 좋다고 품평회를 비켜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점심 식사는 가까운 곳에서 하기로 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너 저번에 봤을 때 보다 살이 빠졌다. 얼굴이 핼쑥한데?"
어머님은 남편을 보고 말했다. 남편은 몸무게가 늘었다. 누굴 만나도 살이 쪘다는 얘길 듣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그냥 컵에 물이나 따르고 숟가락이나 바로 놨다. 어머님은 접시에 남은 수육을 자꾸 남편에게 더 먹으라고 했다. 이거 싸갈 수도 없고 아깝잖아. 다 먹고 가야지.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아무리 아까워도 며느리한테는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이런 조명은 누가 달았어?"
남편이 자기가 했다고 하자 어머님과 이모님은 갑자기 웃었다.
"이거 봐. 아들은 안 해도 남편은 한다니까. 마누라가 해달라고 앵앵거리면 해줘야지 뭘 어째."
그 조명은 남편이 바꾸고 싶어서 고르고 단 것이다. 제가 해달라고 한 거 아닌데요. 소리는 속으로만 했다. 우리는 이번에 이사 오면서 소파를 버리고 각자 앉고 싶은 1인용 의자 한 개씩을 사기로 했다. 그렇게 했다는 말에 또 한 번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졌다.
"이 집이 뭐 평생 둘만 산다니 호호호"
나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언제고 한 번은 해야 될 말, 그동안 타이밍만 보고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그 말. 그 말을 해야 될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느낌이 왔다.
"어머님. 남편은 이 집 이사 와서 더 애 안 낳아야겠다는 확신이 섰대요. 그냥 이렇게 둘이 여유롭게 살자고요. 저는 그냥 자식 대신에 화분을 키우려고요."
5초 정도 찰나의 정적이 스쳤다.
"아 그래! 누가 뭐라니. 나도 키워줄 수도 없고 돈으로 도와줄 수도 없고 낳으라 마라 못해. 너희 둘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
어머님은 급하게 맞장구를 쳤다.
"8년 동안 궁금하셨을 텐데 한 번도 물어보지도 않고 낳으라고 채근도 안 하셔서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어요."
"그래. 뭐 주변에서 보면 가진 거 없어도 낳으라 마라 참견하는 시댁도 많더라. 나는 안 그러잖아."
묘하게 줄타기를 하던 대화는 어머님의 공치사로 대충 마무리됐다. 나중에는 (절대 병원은 안 간다며 고집을 피우는) 아프신 아버님 얘기도 나오고, 결국엔 다 돈이 문제라며, 자식을 못 낳는 것도 돈이 없어서 다 이렇게 되는 거라고 한탄하셨다. 돈 얘기가 길어지자 남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어머님과 이모님을 보내드리고 집에 와서도 남편은 별로 말이 없었다. 부모를 만나고 심난하지 않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몇 마디 툴툴거렸다고 짜증을 부렸던 걸 생각하면 우울해 하든 말든 받아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대망의 집들이가 모두 끝난 날이니까 치킨을 시켰다.
치킨을 앞에 두고 우린 집들이 뒤풀이를 했다.
"고작 일주일이면 입장이 바뀔 것도 모르고."
"그러게. 미안해."
내 자식 같은 화분들을 둘러봤다. 저 작은 화분에서 싹만 올라와도, 꽃만 피어도 이렇게 기쁜데. 내 자식이 웃고 말하고 걷는 모습을 보면 왜 기쁘지 않을까? 부모가 된 친구들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한 기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식물을 키우면서 인정하게 됐다. 비교도 못할 기쁨이겠지.
그래도 우린 자식을 낳는 일에는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겠다. 양쪽 부모님을 만나면 더 그 용기가 줄어든다. 어쨌든 집들이는 끝났다. 오늘따라 이 집의 고요함이 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