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하기 적당한 때

by 김밀


"내년에는 혼인신고 해야될텐데."

"그러게"


"올 해는 혼인신고 해야될텐데."

"그러게"


1년에 한 두번쯤은 연례행사처럼 주고 받은 대화였다. 늘 '그러게' 다음이 없었다. 혼인신고 안했다고 우리가 부부가 아닌 것도 아닌데 뭐. 애써 그 의미를 부정하며 그 시간을 유예했다.


2012년 10월 결혼식을 올린 우리 부부는 30대를 목전에 둔 동갑내기였다. 요즘 많은 부부들이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야 해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혼인신고부터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결혼 전 내가 국민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면서 집 때문에 혼인신고를 서둘러야 될 이유가 사라졌다. 결혼식하고 천천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혼인신고는 점점 뒤로 밀렸다.

신혼여행에 다녀와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 양 쪽 부모님은 하루 이틀 간격을 두고 혼인신고는 했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네' 라고 대답했다. '잘했다. 그런건 빨리 해야돼'라는 부모님께 또 '네'라고 대답했다. 철저한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며칠 지나면 할 거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혼인신고는 7년 동안 미뤄졌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결혼식까지 올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지켜 본 우리가 부부가 아닌건 아니지만 가끔 묘한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그런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냥 서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기 바빴다. 하지만 주민등록등본을 뗄 일이 있을 때는 여전히 우리는 같은 주소를 공유하는 동거인일 뿐이었다. 서류 상으로는 여전히 남남이었고 우리는 서류를 들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되어 서로 멋쩍은 웃음만 교환하곤 했다.

굳이 말하고 다닐 필요도 없고 묻는 이도 없어서 우리는 그렇게 주소 공유 관계의 동거인인 채로 지냈다. 주민등록 등본을 뗄 때와 마찬가지로 부부싸움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혼인신고도 안했고 둘 중에 한 명만 짐싸서 나가면 끝이야. 서류상으로도 바뀌는 것 없고 그냥 저 문만 나가면 남남이야!"


이제와서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정말 화가 났을 때 이 소리를 하곤 했다. 그 종이쪼가리 한 장이 없음으로 우리의 관계는 A4 한 장의 무게보다 가벼웠고 종이 뒤집듯 이 결혼은 뒤집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런 얘길 내가 내뱉고 늘 깨달았다. 사실 그건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 종이가 주는 위력이 분명이 있다는 것을.



2019년 5월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한지 7년만이었다. 구청은 주차장이 꽉 차서 몇 번을 돌아도 차 댈 곳이 없었다. 결국 다른 곳에 차를 세우기까지 30분이상이 걸렸다. 혼인신고 창구를 찾아 작성한 서류를 내밀었다. '완료됐습니다.' 라는 대답이 떨어지기까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7년만에 먹은 굳은 결심이 무색하리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인 줄 알면서도 '정확한 결혼식 날짜는 언제죠?' 같은 질문을 받지는 않을까 긴장했다. 하지만 정말 아무 질문도 없었고 그저 서류를 검토하고 더 수정하거나 추가해야할 사항이 없는지만 봤을 뿐이었다. 싱겁게 끝난 혼인신고 앞에 어떤 리액션을 해야할지, 이 특별한 날 어떤 세레모니를 해야할지 난감한 얼굴로 구청을 빠져나왔다.

"주차하는데 30분 걸렸는데 접수되는데 3분만에 끝났네? 기분이 이상하다."

"뭐가 이상해. 원래 해야되는 걸 한 것 뿐인데."

남편은 오히려 말끔하고 시원한 얼굴이었다. 역시 과도한 의미부여는 나 뿐이었나? 서류상으로는 신혼부부(?)였다. 2020년 올 해는 그러니까 결혼 1년차 부부인건가?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런 얘길 하니 다들 입이 벌어졌다.

"와. 뭐 거의 유럽스타일이네? 프랑스 부부야 뭐야?"

"세상 쿨한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우리 부부는 쿨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간이 길어졌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씩씩하게 신랑,신부 입장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가족이 되는 것이라는 건 체감하기 힘들다. 결혼하고 1,2년 차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결혼하니 좋아? 결혼 생활은 어때? 였는데 그 때 마다 '보이스카웃 캠프 온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었다. 우리는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미션을 받고 캠프에 참여한 듯 했다. 깨를 볶는다거나, 낭만적이라거나 하는 결혼이라는 말에 씌워진 포장을 걷어내면 그저 한 집에서 서로의 미션을 수행하는 수련회같은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생활 습관을 맞춰가기도 하고, 의외의 식성, 식사 속도도 맞춰갔다. 그런 것들 말고도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도 실감하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이 결혼의 지속성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언제든 이 결혼이 맞지 않으면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충분히 연애를 하고 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이 제도 안에 우리가 온전히 맞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은 순간순간 들었고 그 때 마다 '혼인신고'를 미루는 것으로 계속해서 어떤 확신을 기다렸다.

그것을 미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남편도 나와 같았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발이 묶여 절뚝이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자랐고 과연 가족을 하나 더 늘리는 것이 괜찮을까? 굳이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가족이 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서로가 있음으로 충분히 든든하고 계속해서 이 안정감을 유지하고 싶은 순간이. 그럴 때면 '우리 혼인신고 해야지'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그것도 서로 그 마음이 통해야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쯤이면 됐다 싶은데 남편은 아닐 때도 있었고, 남편이 결심이 서면 내가 뒷걸음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결정적인 계기로 드디어 혼인신고를 둘 다 결심하게 됐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작년 5월 남편은 회사를 그만뒀었다. 나는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드디어 시간이 생겼으니 이럴 땐 여행을 가야 된다고 주장하는 쪽이었고 내키지 않아하는 남편과 일주일간 터키 여행을 갔었다. 그 전에도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우리는 터키 여행에서 돌아와서 마음을 결심했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고.


그 마음이란 '이제는 서로를 알겠다, 이 결혼을 믿을 수 있겠다'가 아닌 '우리 두 사람은 진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럼에도 같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고작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결혼을 무르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종이 한 장보다 더 촘촘하고 무거운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있었고 그건 저 문만 나서면 되는 간단한 일은 애초에 아니었다.


결혼에 대해, 가족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 이 결혼이라는 것에 온전히 발을 들이기로 마음 먹기까지 걸린 시간 7년, 정해진 답은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고, 세상의 속도에 비하면 너무나 느렸지만 우리만의 답을 찾아 나갔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그렇게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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