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거짓말 조차 피곤해진 사이

by 김밀


2000년대 초반부터 드문드문 써오던 블로그를 뒤지다 이 메일을 발견했다. 아무 내용도 없이 그저 캡처된 이미지 파일만 올려진 포스팅이었다. 나는 그 페이지에 꼼짝없이 붙들렸다.


KakaoTalk_20200601_151057430.jpg


이 메일을 보낸 이가 수 만 분의 확률로 이 글을 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 글을 본인이 썼다는 걸 기억할까? 나는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고 나는 그야말로 놀랐다. 정말 잘 쓴 이별 편지였다. 문단과 문단의 나눔, 단어 선택, 길이 모든 것이 완벽했고 무엇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만해. 이제 끝났어.' 이 얘기를 이렇게 우아하게 했었다니. 처음 이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단어와 단어를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 흐릿하게 겨우 읽었다. 그렇게 겨우 읽고도 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몇 날 며칠을 울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이 메일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메일을 캡처해서 블로그에 갖다 두다니!) 내게 가장 아팠던 부분은 당연히 '내게 있어서 너라는 존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남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는 문장이었다. 끝났구나. 아니 예전에 끝났었구나. 되돌아 갈 수 없구나 실감했다.

이 메일을 받은 것은 십수 년 전이다. 그때 나에게 악역은 분명히 상대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이렇게 쉽게 잊을 수가 있어? 나는 매달렸다. 겁이 나서 열렬하게 매달리지는 못했어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정리되지 못한 마음을 안부라는 이름으로 메일에 적어 보내기도 했다. 아마 그에 대한 대답이 저 메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어렴풋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악역은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연인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한 때는 뜨겁고 열정이 가득한 인간관계가 있다. 10대, 20대, 30대를 통과해 오면서 나를 스쳐간 사람의 숫자는 헤아리지도 못할 것이다. 한 때는 밤을 새 가며 이야기를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를 하고 웃고 우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지금 연락하고 지낼까? 거의 없다.


20대 때는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만나야 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 만났다. 일주일에 4-5일은 점심이나 저녁 약속을 잡았다. 주말에 집에 있는 건 낭비였다. 나는 분명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에너지를 뺏기고 있었다. 내 모든 기가 그렇게 소진되는 줄도 모르고 모든 인간관계가 하나라도 끊어질까 전전긍긍하며 내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결혼을 하면서 많은 인간관계가 정리됐다. 그 사람들이 왜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채 파악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30대가 되자 그렇게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각됐다. 예전에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멀어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인간관계의 깊이가 꼭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가장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제일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버거운 관계임에도 자연스럽게 멀어지지 못한 경우다. 어쩐지 만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쌓이고, 다음에 만나자는 빈말이 실현되지 않길 바라게 되는 인간관계들.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약속을 잡고 자기 멋대로 약속을 어기거나 그저 자신의 빈 시간을 채워주길 바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나 자신에게 점점 미안해졌다. 그들을 알고 지냈는지 얼마나 오래됐는가? 한 때 그들과 얼마나 깊은 시간을 보냈는가와 별개로 이제는 그런 관계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했다. 그 사람이 상처 받지 않도록 최대한 포장해서 그럴듯하게, 믿음직스럽게 핑계를 댔다.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반복될 때 그들이 그 의미를 알아주길 바랐다. '이 사람은 더 이상 나와 만나고 싶지 않구나.' 하는 것을. 그렇게 매번 핑계를 대고 만남을 미루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년이나 2년이 지난 후에 뜬금없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하거나 카톡을 하는 사람들. 미안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이제 선의의 거짓말 조차 하기 피곤했다. 충분히 욕을 먹을 행동이지만 나는 그들의 카톡을 차단하고 발신자를 차단했다. 아니. 욕을 먹더라도,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할 수 없다. 나중에 길을 가다가 마주쳐서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뺨을 맞더라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내가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싫고, 이 사람과 하는 대화가 온통 나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이 사람을 피하고 싶다.


예전에는 그래도 그런 식으로 연락을 끊는 것은 잘못이지. 한 때는 친했던 사이였는데 그런 식으로 연락을 끊는 건 너무 비겁한 거 아냐?라는 생각도 했다. 나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그런 경우를 당해보기도 했고 그게 그렇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그 입장이 되니 알겠다.

"오늘 진짜 너 만나고 오니까 기가 쪽 빨린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으면 그 관계는 굳이 피하고 싶은 마음까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렇게라도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피하고 싶은 사람은 저런 말 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타인의 감정과 에너지를 축내면서도 눈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당신이 싫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조차 스트레스다. 그런 얘길 할 때는 앞으로 이 사람과 만남을 지속하고 싶을 때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면 그런 설명과 그 이후의 감정도 불필요해진다. 그저 연락을 끊고 욕을 먹기로 작정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내 주변에 내가 고정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열 손가락 안에 겨우 꼽을 만큼 남았다고 해도 괜찮다. 이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건강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으니. 선거에 나가고 정치에 출마할 생각도 아닌데 의미 없이 많은 인관관계는 독일뿐이다.



KakaoTalk_20200524_111303542_02.jpg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때 저 메일을 보낸 이와의 관계에서 악역은 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록 진심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기억나니?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안부를 전하는 이가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사실 저렇게 정중하고 깔끔한 메일을 보내준 것만 해도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미안하다. 그렇다고 다시 메일을 보내 그땐 내가 미안했어. 같은 사이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인간관계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더 이상 나를 떠난 이유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여기에 남겨 보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인신고하기 적당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