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슬픔
책장에서 묵혀둔 책을 꺼냈다. 우스운 얘기지만 책을 읽으려면 책꽂이가 아니라 내 주변에 있어야 한다. 침대 머리맡, 책상 위, 가방 속. 내 손 닿는 곳에 있어야 언제든 집어 들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건 책꽂이로 건너 간 책이 다시 나오기는 영 쉽지 않다.
요즘 나는 오래된 버릇을 깨고 책장 앞에 자주 선다. 다른 이의 책장을 구경하듯 생경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책을 왜 샀지? 아니! 이 책이 있었어? 뭐지? 왜 그 책은 없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대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샀고, 책장에 있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찾아도 속죄를 찾지 못하겠다. 도무지 자신을 마저 읽어주지 않는 주인이 야속해 이 집을 떠나버린 듯하다. 지금 같으면 얼마든지 그 책을 아껴 읽어줄 수 있을 텐데.)
분명 책이 술술 잘 읽히는 '때'가 있다. 그건 몇 년에 한 번 찾아오기도 한다. 보통은 애를 쓰며 의무감에 책장을 넘기다가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덮어 버리곤 하는데 요즘에는 거의 10대로 돌아간 기분이다. 책을 읽고 싶어서 얼른 집에 가고 싶을 정도다. 사무실에서는 읽을 수 없다. 독서하는 사람인 것을 들키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내 비밀 취미다.
'나를 보내지 마'를 꺼내 든 건 빨간 책방의 영향이 컸다. 팟캐스트야 얼마든 다시 들을 수 있지만 그래서 그 책을 읽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먹기 좋게 이유식으로 잘게 썰어주는 것을 받아먹기는 쉬우나 독서는 너른 대지 위에 서는 것과 같다.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것까지 모두 내 몫이다. 당연히 들을 때는 재밌던 것도 흥미를 잃을 수 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살아남았다. 완독의 기쁨을 누렸고 추수하는 만족감도 얻을 수 있었다.
캐시, 토미, 루스는 헤일셤 출신이다. 그들은 헤일셤에서 교육받고 18세가 되면 헤일셤을 떠난다. 학교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나 미술 작품을 제출하는 것이다. 마담은 한 번씩 학교에 와서 학생들의 작품 중 잘된 작품을 골라 가져 간다. 토미는 미술에 소질이 없어서 한 번도 마담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루스는 토미와 연인 사이가 되고 헤일셤을 졸업한 후 코티지에서 생활할 때 까지도 그것이 유지된다. 코티지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캐시는 간병사가 되어 기증자를 돕는다. 루스와 토미는 기증자가 된다. 루스는 2번째 기증을 하고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루스는 캐시와 토미에게 사실은 너희 둘 사이를 내가 계속 갈라놨음을 고백하며 마담의 주소를 준다. 그곳에 가서 둘의 사랑을 증명하면 3년간 기증을 유예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소문이 있다는 것이다. 루스는 죽고 캐시와 토미는 마담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에밀리 교장선생님과 마담으로부터 그들은 진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왜 그들은 항의하지 않는 거지?', '왜 모든 진실을 알고서도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지?'였다. 두 번째는 영혼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해 클론을 복제하고 생육하여 가차 없이 쓰고 버리는 인간이, 클론에게는 없다고 믿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였다. 여기까지 분개하고 빨간 책방 2부 방송을 다시 들었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나왔다. '... 이 책을 읽고 왜 이 클론들은 저항하지 않는지에 대해 분노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은 문학 외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응? '나를 보내지 마'가 복제 인간에게 인권이 있는가? 없는가? 인간과 복제인간 중 더 인간적인(?) 것은 누구인가? 하는 주제가 아니었단 말이야? 물론 책을 읽은 후 감상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싶었다. 이 책에서 그들이 느꼈던 그 의미를 나도 발견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캐시는 11년째 간병사로 일해 오고 있다. 그녀는 '헤일셤' 출신이다. 그녀가 그곳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달리 보는 이들이 있다. 한 기증자는 곧 죽음을 앞두고 그녀에게 헤일셤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그녀는 헤일셤의 풍경들,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얘기해 준다. 그리고 나면 기증자는 그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듯이 다시 그 얘기를 반복해 주기 원한다.
그가 원한 것은 헤일셤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것처럼 헤일셤을 '추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삶이 곧 완결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게 해서 그것들이 실제로 자기 머릿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서는, 약 기운과 통증과 피로감으로 잠 못 이루는 그런 밤 동안 나의 기억과 자기 기억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우리, 그러니까 토미와 루스와 나 같은 이들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내가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17p)
앞의 이 문장을 읽고 보니 분개하며 읽었던 에밀리 교장의 마지막 열변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너희의 안전을 보장해 준 데 대해 우리에게 고마움을 느꼈으면 한다. 이제 너희 둘을 좀 보렴! 너희는 멋진 추억이 있고 교육을 받았고 교양이 있어. (...) 헤일셤 이전에 클론들은, 우리는 너희를 '학생'이라고 부르는 게 더 좋지만, 그저 의학 재료를 공급하기 위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단다. (358p)
이제 이 나라 어디에서도 헤일셤 같은 곳은 찾아볼 수 없단다. 이제 남은 건 정부가 운영하는 거대한 '사육장' 뿐이다. 그곳의 상황이 과거보다 좀 나아졌다 해도, 얘들아, 그런 곳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면 너희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을 거다.(363p)
4번째 기증 (기증자의 마지막 기증)을 앞두고 헤일셤 출신인 토미와 캐시는 그들의 사랑을 증명해 3년 동안 기증을 유예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바란다. 하지만 '사육장' 출신인 기증자의 꿈은 고작 자신이 헤일셤 출신이라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여기에서 왜 그들은 자신이 그저 기증자로 쓰이다 죽는 것에 대해 저항하지 않아?라는 반응은 불필요해 보인다. 인간에게도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결론이 있다.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 평생 살면서 몇 번쯤 정신적, 신체적 아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필수 조건이다. 나는 내 운명과 맞서 싸울 거야! 내 앞에 모든 불행은 꺼져!라고 외치고 나가는 그 순간에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응, 체념 그런 것이 인간에게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끝이 있는 모든 존재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캐시와 토미는 오랜 시간을 돌아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했다. 그들은 토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마담을 찾아가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아예 기증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간병사 일을 그만두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3년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담의 집에서 마주친 에밀리 교장과 마담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랑을 증명하면 3년간 기증을 유예해준다는 소문은 거짓이었고, 너희의 그런 믿음이 감동적이지만 사실 너희가 그런 소문을 믿을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덕분이다. 너희 같은 다른 클론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 줄 아니? 그들이 어떻게 사는 줄 알면 너희는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거야!라는 에밀리 교장과 마담의 말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다.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너희에게 혐오감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너희의 영혼을 증명하려고 했어. 그래서 너희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했고 결국 나는 큰 빚더미에 앉게 됐어. 나는 힘든 상황에서도 너희한테 선의를 베푼 거야.
캐시와 토미는 자신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다른 곳의 실상을 제대로 알 기회도 없었고 그런 것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근원자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사실 다른 클론들은 더 가혹한 운명을 살고 있으니 너희는 이 정도에서 감사히 여기고 너희의 목적을 다 해.라는 말에 캐시와 토미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캐시와 토미는 진실을 맞닥뜨린 후에도 크게 좌절하지 않고 기증센터로 돌아간다. 토미는 4번째 기증을 마치고 결국 생을 마감하고 캐시 또한 간병사의 일을 계속해 나간다. 인간이 그저 다음 날에도 눈을 뜨고 하루를 사는 것처럼 클론들도 자신의 목적대로 그저 하루를 살뿐이다.
다만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차로 돌아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했을 뿐이다. (393p)
그래서 이 마지막 문장은 결국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잠시 그렇게 머무르다 돌아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하는 존재라고 자조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혼이 있는 모든 존재,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결국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할 뿐이다.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