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화려했던 '부부의 세계'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한자릿수 시청률이 흔해진 요즘 이 드라마는 28%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뽐냈다. 사람들은 왜 이 드라마에 열광할까? 불륜이라던가, 이혼이라는 소재는 지금도 TV를 틀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한 번쯤은 만날 수 있다. 대단히 특별한 소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자극적이었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평도 많지만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붙잡아놓은 이야기의 힘까지 폄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에 또 다른 부부의 세계가 있다. A.S.A 해리슨의 '조용한 아내'이다.
심리 상담가로 일하고 있는 조디와 건축 사업가로 일하는 토드는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20년간 함께 살고 있다. 둘은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안락한 주거 공간을 소유했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프로이트라는 이름의 개만 키우고 있다. 어느 날 토드는 나타샤라는 20대 대학생과 바람을 피운다. 나타샤는 심지어 토드의 가장 오래된 친구 딘의 딸이다. 토드와 나타샤의 만남은 한순간의 불장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타샤가 토드의 아이를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나타샤는 조디와의 이혼을 요구하며 신혼집으로 쓸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토드는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여자 조디를 떠나 공격적이지만 매혹적인 나타샤를 선택하기로 한다. 토드는 나타샤와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조디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한다. 조디는 그 전처럼 토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토드는 이번에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디와 토드, 토드와 나타샤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부부의 세계'와 '조용한 아내'는 닮은 구석이 많다. 아니, 세상의 모든 불륜에 대한 이야기가 디테일만 다를 뿐 이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신뢰를 저버린 남자에 대한 복수다. 지선우는 어떻게 이태오를 파멸시킬까? 이태오는 어떤 죗값을 받게 될까? 드라마에서도 보여줬지만 부부는 단순한 복수극이 어렵다. 단순히 권선징악으로 해결하기에 부부란 복잡하고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아내'도 마찬가지다. 조디는 토드에게 어떤 벌을 내릴까? 조디는 비참하게 쫓겨나게 될까? 그런 결과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본다면 이 소설은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속도감 있는 문체 덕에 거의 한 번에 내달릴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랬구나' 하고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조디의 과거,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조디는 왜 토드와 이십 년 동안 살면서도 결혼을 하지 않았나? 그녀는 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거부했나? 그것이 이런 상황(토드가 바람을 피운)에서 여러모로 불리하게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권리가 없는 자리를 고수했나?
이 소설은 그래서 조디와 토드의 파탄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조디의 트라우마와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성장기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소설에 무게감을 심어주고 뻔한 불륜 이야기와 차별을 둘 수 있게 해 줬다.
소설에는 인물의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단순한 문장 같지만 이 말이 주는 힘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 방향, 가치관 같은 것이 당연하게도 내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러드: 당신이 어머니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조디: 저한테 애가 셋 있었다면요? 저라도 똑같이 했을 것 같아요. 끝까지 버티는 거죠. 하지만 부모님의 실수에서 뭔가 배우지 않겠어요? 저는 그런 입장에 놓이지 않을 거예요.
제러드: 무슨 뜻입니까?
조디: 전 결혼하지 않을 테니까요. 가정을 갖지 않을 거예요.
(중략)
제러드: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이 저지른 실수의 대가를 당신이 치르는 셈일 텐데요.
조디: 저는 제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제러드: 행복은 우리가 미리 처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조디: 제 처지가 어머니처럼 되고 만다면, 탓할 사람은 저 자신밖에 없겠죠. (164p)
실제로 그녀는 숨 막힐 만큼 번쩍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그것을 포착했다. 무의식은 그저 책에나 나오는 이론, 날조된 패러다임, 과장된 환상이 아니라 마치 얼굴에 붙은 코처럼, 피클 단지처럼 사실적인 것이다. 융에 따르면 무의식 속의 모든 것은 외적 표현을 찾는다고 한다. 의식으로 전환되지 않는 내적 현상들은 운명이라는 외적 사건 속에 현현한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비슷한 명제를 이야기하며 인물의 성격이 곧 운명이라고 말했다. (42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