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순-정 (이영희)

by 김밀

인스타그램 피드에 이 책 소개가 떴을 때 눈이 정말 커졌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기다려왔던 그런 책이 아니던가! 책 표지도 그야말로 월간 윙크나 밍크를 떠올리게 했고 책방에 신간이 입고되기만 손꼽아 기다렸던 만화책 제목이 순서대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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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심야 라디오와 함께 내 감성의 큰 지분을 차지했던 바로 그것. 순정 만화였다. 오렌지 보이(꽃보다 남자)가 광풍처럼 교실을 휩쓸고 가도 나는 일본 만화보다는 국내 만화가 더 취향에 맞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미라 작가였다. 90년대에 순정만화 좀 읽었던 사람이라면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얼마나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는지 이슬비와 서지원, 푸르매, 백장미라는 인물에 얼마나 감정이입을 하고 많이 울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복잡하게 꼬인 사랑과 삶의 타래 속에서 과연 누구의 사랑을 지지해야 할지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미라 작가의 '사랑입니까?'도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이은혜 작가의 '블루'가 있다. 문방구에 가면 블루 공책, 블루 책받침, 블루 엽서로 온통 블루 천지였다. 나도 그때 블루 노트 몇 개를 갖고 있었고 그 노트에는 꼭 일기를 썼다. 우선 그림체와 색감이 너무 예뻤고 승표니 연우니 하는 이름들도 그땐 너무 멋있었다. 중학생의 나에게 그들의 어른 라이프는 너무나 진지하고 멋졌고 어른이 되면 누구나 그런 깊은 사랑의 고민과 열정을 쏟아부을 일이 생기는 줄 알았지만....(생략하겠다.)


웹툰을 열심히 볼 때도 있었지만 어쩐지 웹툰에 예전만큼 마음을 쏟지 못하는 이유는 책장을 넘길 수 없기 때문인 듯하다. 스크롤 한 번으로 휘리릭 넘길 수 있는 웹툰은 틈이 없다. 만화책을 읽을 때는 어떤 장면에서 한참 동안이나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꼭꼭 마음에 새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수없이 빌려 봤던 만화책 속에서 울고 웃고 따라 그리면서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잊어버렸지...)


그래서 더 이 에세이가 반가웠다. 나와 같이 순정 만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 읽었던 만화의 여운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니! 또 그런 만화에 대한 얘기들을 실었다니 책을 안 살 수 없었다. 과연 받아 본 책은 설레는 챕터로 가득했다. 심지어 이 책을 읽으니 다시 보고 싶은 만화들이 많아서 열심히 검색을 했으나 역시 많이 절판되어 있었다. 싸이월드와 함께 막을 내린 나의 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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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게 된 뮤지션이 있다. '박문치'라는 뮤지션인데 처음 이름을 들은 것은 음악의 숲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였다. 분명히 내 나이 또래는 아닌 것 같은데 들려주는 노래는 심상치 않았다. 이건 분명히 90년대 노래 같은데. 난 노래를 듣자마자 빠져 버렸다.

96년생이 만드는 90년대 노래라니. 나에게는 이 노래가 레트로가 맞고 향수를 자극한다지만 어린 친구가 이런 과거의 느낌을 살려 노래를 만들어내다니 그저 신기했다. 노랫말도 사운드도, 랩도 모두 딱 듣기만 해도 그때 그 노래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순정만화도 90년대 가요도 다 과거이기에 내가 아름답게 아련하게 미화해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추억의 조각들을 좀 갖고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 그저 생각만 해도 자동으로 그 시대의 나로 돌아가게 해주는 그런 것들.


싸이월드는 없어졌지만 나의 기억 속에 90년대는 아직 생생하니까,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순정 만화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안녕, 나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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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우리 집에도 이런 유물이 남아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