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주우러 간 K-장녀
몇 주전 엄마의 생신을 앞두고 친정에 방문했다. 방문하기 전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침에 전화가 왔는데 일정이 있어서 받지 못했다. 일정이 끝나면 저녁에 전화해야지 했는데 오후가 되니 또 전화가 왔다. 내일이면 볼 텐데 무슨 일이지? 싶어 전화를 받았다.
" 내일 와서 아버지가 존 리니 뭐니 하면서 연금이니 주식이니 하면 네가 꼭 좀 말려. 아주 요즘 존 린지 뭔지 유튜브에 빠져갖고 맨날 그 얘긴데 미치겠어. 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주식이야. 네가 얘기하면 들으니까 내일 와서 그 얘기 꺼내면 주변에 주식하다 패가망신한 사람 많다고 꼭 말려."
아. 생신 축하와 어버이날을 기념한 방문인 줄 알았는데 하나의 임무가 더 있었다. K-장녀에게는 늘 이런 주문이 뒤따랐다. '네가 동생들한테 얘기 좀 해.', '네가 아버지한테 얘기 좀 해.' , '네가 엄마한테 얘기 좀 해.' 그 말들 뒤에 따라오는 말은 '네 얘긴 듣잖아.'였다. 내 말을 들을 확률은 50:50이다. 다만 본인이 하기 힘든 얘기를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전달하고 싶은 사람들의 부탁일 뿐이다. (이 부탁의 지분율은 엄마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처음에 든 생각은 짜증이었다.
1. 엄마는 아직도 이런 부탁을 한 단 말이야? (거의 옹알이를 뗀 이후로 계속 이런 부탁을 받아왔다.)
2. 아버지는 무슨 주식이야! 이놈의 스마트폰을 다 갖다 버려야지! (부모의 무분별한 유튜브 시청은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런 부탁을 받으면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다. 언제 아버지가 '존 리' 아저씨의 얘기를 꺼낼지 모르니, 그 얘기를 꺼낸다면 나는 또 어떻게 아버지의 의지를 꺾는단 말인가? 한 편으로는 '습관'적으로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못 미더워하는 엄마에게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몇 차례 실망을 안긴 아버지의 전적이 있긴 하다.)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평생 작은 자영업을 하시고 그 자영업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작은 가게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 있다 집으로 퇴근하는 것 말고 특별한 사회생활은 없었다. 유일하게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는 일요일마다 가는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그 교회 생활도 여러 부침으로 자주 옮기다 보니 이어진 인간관계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다. 그러니 아버지는 친구가 없다. 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거나, 친구와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오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수다를 풀어내는 곳은 엄마뿐이고 엄마는 많이 지친 상태다. 그러니 아버지가 엄마의 흥미와는 상관없는 주제에 빠져 저녁 밥상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얘기를 멈추지 않으면 짜증부터 나는 것이다. 엄마의 상황도 이해가 가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K-장녀는 늘 이 애증이 문제다.
식사를 하는 내내 별말씀이 없으셨는데 역시 밥을 다 먹어갈 때쯤 포문이 터졌다.
"너 '존 리'라고 알아?"
엄마는 다급하게 눈짓을 보냈다.
"아버지가 요즘 그 사람 유튜브를 자주 듣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노동의 가치보다 (....) 자는 사이에도 돈이 일하게 하라고 (....) 아버지는 그래서 연금펀드를 들고 싶(....)"
"아버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주변에도 주식하다가 빚만 떠안은 사람들도 많아요. 저희도 아예 관심 없는 건 아니어서 공부 좀 하고 해보려고요. 저희가 공부 좀 해서 괜찮을 것 같은지 알려드릴게요."
아버지는 수긍하는 눈빛을 보냈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자 엄마는 나를 보고 식탁 위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
아버지가 존 리 아저씨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받고 싶어도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다. 이런 장애물이 없었다면, 엄마에게 말을 쏟아낼 시간에, 딸인 나에게 그 공을 왜 받아야 되는가 설명할 시간에 스스로 그 공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K-장녀인 나에게 이 집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너뿐이라는 사인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아버지가 영어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알파벳도 읽지 못한다. 알파벳을 알려달라는 아버지께 몇 번 시도를 한 적이 있고, 집에 가면 A, B, C를 따라 쓴 종이들을 숱하게 발견했지만 그 이후에도 역시 알파벳을 떼지 못하셨다. 그러니 스마트폰의 앱을 깐다던가, 아이디를 만든다던가 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도 못하신다. 두 번째는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하는 (카카오톡, 유튜브 외에) 모든 것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공인인증서를 다운로드한다던가, 앱에 들어가서 어느 항목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원하는 연금 저축 펀드를 가입한다던가, 그 연금저축 펀드에서 원하는 금융상품에 투자를 한다던가 하는 것을 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존 리'아저씨가 하는 말에 공감을 던지며 몇 번씩 같은 유튜브를 반복 청취한다고 해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평생 돈을 벌었는데 돈을 벌어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줄을 몰랐어. 먹고 살 돈도 없으니 그냥 돈 생기면 통장에 넣어 두기만 했지. 근데 남은 게 없어. 이런 것도 공부를 좀 했어야 됐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 보니까 너무 나이만 먹었어."
65세를 목전에 둔 아버지의 한탄이었다.
평생 아버지는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살아온 분이다. 엄마보다 4살이나 많았지만 늘 엄마가 더 연상처럼 보인다는 얘길 듣게 만들어, 엄마의 심기를 상하게 하곤 했다. 그런 아버지도 환갑을 넘어서니 눈에 띄게 그 연세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여전히 꾸준히 등산을 하고 러닝머신을 뛰고 옷도 깔끔하게 입지만 얼굴에 새겨진 세월이 이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너무 늦은 건 알지만 이제라도 해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을 (또!)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처음으로 관련 유튜브나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식당에 가면 앞뒤 테이블이 모두 주식 얘길 하는 주식 광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관심 없던 내가.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투기','패가망신','풍비박산'으로 대표되던 주식이라는 이미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돈'에 대해 공부를 하고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야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필요한 순간에, 노후에 찾아 쓸 돈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아버지나 나 같은 사람들이다. 세월이 지나도 늘어나지 않는 도토리를 손에 쥐고 남은 도토리를 땅에 묻어두는 것 말고는 할 줄 모르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이 도토리로 묵도 쒀서 팔고, 도토리로 물건도 교환할 때 우리는 그저 땅에만 묻어뒀다. 주변 사람들은 점점 달라진 생활을 영위하며 우릴 떠나는데, 늘 우리는 도토리를 묻어 둔 땅 주변만 뱅뱅 돌면서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고 십수 년이 지나서 땅을 파보면 역시나 도토리는 모두 썩어있다.
존 리 아저씨가 던진 공을 주우러 갔다가 나는 이 공놀이에 푹 빠져버렸다.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 것 마냥, 인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 마냥 책에 밑줄을 긋고 관련 글들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저 아버지 덕분에 연금 펀드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반색하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이제 내 것도 시작해달라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버지 연세에 연금저축펀드 가입은 많이 늦었다. 근로소득이 없는 아버지는 세액공제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본인의 ‘돈’을 운용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원하시는 ‘연금저축펀드’ 가입을 도와드리기로 했다.
친정집에는 인터넷이나 와이파이 같은 것이 안되기 때문에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먼 거리에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하셨다. 당장 내일이라도 가겠다고 하시는 아버지를 겨우 진정시켜서 다음 주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고 그것이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언제였을까? 어쩌면 학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농협에 앉아 대기표를 들고 기다리던 때가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색할까 봐 집에 긴 플레이리스트로 끊길 염려 없는 노래도 틀어놨지만 생각보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괜찮았다. (아버지는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원했던 연금저축펀드 계좌 개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깔아드린 증권사의 앱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내가 알려드린 곳을 누르고 화면을 위로 올리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나는 이걸로 큰돈 벌 생각도 없어. 여기 넣을 수 있는 돈이 작은데 어떻게 큰돈을 벌어. 그냥 딱 5년 동안만 더 일할 생각이니까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천천히 해볼 생각인 거야.”
연금 저축 펀드 계좌가 생긴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안에 돈을 넣어두기만 해서는 땅속에 도토리를 묻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무 밑에 있는 땅에서 수풀 가득한 땅으로 도토리를 옮긴 것과 같다. 그러니 계좌를 개설한 후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K-장녀에게 나머지 일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관심에서 멀어질 주제에 너무 깊이 몰입을 한 것은 아닐까? 내 발 등을 내가 찍은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그래도 만족해하며 집으로 돌아가셨으니 어버이날 선물을 드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이 뿌듯함이 좋았다. 뿌듯했으니 됐다. 싶었다. 하지만 가끔 이 뿌듯함은 나를 배신했다.
그래서 말이다. 잠들기 전에 스쳐간 씁쓸한 기분은 왜 나만? 이라는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앞으로 더 번거로워질 아버지의 연금펀드 관리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존 리 아저씨는 주식이 필요하다고 말만 하고, 아버지는 주식을 하고 싶다고 말만 하고, 결국 그게 가능하려면 필요한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은 내 몫이라는 (주식 이외에도 여러 주제로 인생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답답한 상황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