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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Feb 27. 2017

나의 iPhone에서 보냄

지난 메일을 정리하는 일. 지난 일기장을 펼쳐보는 일.

메일 정리를 했고 나한테 보내는 메일함에 담긴 쓰다만 글을 발견했다. 뭐 이런 생각을 했나 싶다. 다만 그냥 지나간 일기장을 펼쳐보는 건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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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풍경>

뭐가 끝난 거지. 침대에 누워서도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끝났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끝. 수도 없는 끝이 있었다. 그건 맞는 말이다. 얼마 전에는 졸업 논문을 대충 마무리 지었고 몇 달전에는 지루한 인턴생활의 종지부를 찍었으며 그 친구는 1년여의 해외생활과 오픽 시험 점수와의 등가교환을 막 끝냈고 아, 여자친구와도 끝이 났다.

언제부터인가 끝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모습만 봐서는 우아하게 착지를 했는지 데굴데굴 구르다가 간신히 한숨을 돌리고 있는 건지 잘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서로 다른 길을 지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친구와 친구의 친구와 내 친구의 친구들도 모두 친구 아니랄까봐 참 누구 말대로 그게 그거여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황망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참 열심히 산다.

그래서 우리는 밑도 끝도 없는 끝을 이야기하며 종종 그 형태를 그려보기도 했다.

'아 끝이 안 보인다 진짜.'

조울증이 심한 친구를 놀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너나 할 거 없이 감정의 진폭이 커져서 이제는 누구 하나 제대로 그 친구를 놀릴 수 없게 되었다.

또 다른 친구는 참 안쓰럽다. 면접을 앞두고 떨고 있는 친구에게 그 회사는 붙어도 안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여자친구가 있기 때문에. 끝을 끌어안고는 '다 끝났어. 여자친구한테 잘 할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너그러워질 수밖에.

'야 너 변호사 되면 나 이혼할 때 공짜로 변호해줄 거지?'

'야 너는 글을 써 글을. 문학을 하자.'

'야 섹스나 하자. 굳이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 까지 하자고. 일단 너는 걔랑은 헤어지고.'

괜히 이런 말을 하고 어쨌든 끝의 끝이 또 다가오니까 우리는 서둘러 또 다른 끝을 찾아야 한다.

'나 다시 그 애랑 만나기로 했어. '

이렇게 친구의 공식적인 연애 공백기는 끝이 났다. 물론 그렇게 끝내는 건 너무 하다고 그랬었다. 하지만 나의 연애들은 그렇게 끝을 냈다. 친구의 지난 연애도 그렇게 끝이 났었는데,

'너는 다시 끝을 시작한다고? 끝났다. 너도 진짜.'
괜히 나는 이렇게 말했다.

가만 있어보자 하고 친구는 손가락으로 내가 만난 여자를 세어보기 시작했다. '그래 그 크리스마스에는 S가 있었지. 락 페스티벌 같이 간 여자는? 아, 그래 그래. 야 어쩌려고 그렇게 사냐. 이 새끼 진짜 나쁜 새끼네?'

'왜?'

'몰라 일단 나빠. 이유는 차차 생각하자.'

'야. 끝은 항상 너무 한거야. 이렇게 끝나도 저렇게 끝나도.'

소설 하이피델리티에서 주인공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지나간 여자들에게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내고 그때 당시를 물어봤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는 없으므로 페이스북 검색창에 지나간 여자애의 이름을 적었다. 인스타그램도 찾아보았다.

물론, 친구 추가는 누르지 않았다.

그냥 게시물에 '좋아요'를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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