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최형욱 (시각예술가, 빈둥디렉터)
이번 프로젝트는 주로 영유아부터 학령기 자녀를 둔 아버지들의 동시대성을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대화 프로젝트이다. 우리가 ‘대화’를 주 방법론으로 삼은 데는 무엇보다 팬데믹 상황에 기인한 바가 컸다.
기존의 기획이나 프로그램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재 시점에서, 나를 포함해서 소위 문화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사업의 가시적인 성과에만 급급해 왔다는 자기비판이 출발점이 되었다.
언택트 상황은 우리가 멈추어서 질문하기를 허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멈춰 서서 질문하고 대화함으로써 우리가 교감하고자 했던 대상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자 하였다.
‘아버지’만큼 실체도 없고 여러 가지 과거의 이미지와 의미와 그리움과 원망이 끈적하게 얽혀 있는 단어는 또 없을 것이다. 이 실체 없는 단어의 현상과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동시대를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별 아버지들과 만남을 시도하였다.
우리가 하고 있는 시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사업 주관기관도, 기획자도, 참여하신 아버지들도 정확히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를 기대하며, 밤마다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형의 울림이 있었다.
먼저, 동시대 아버지들의 개별성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정한 이해의 틀이 필요하였다.
우리가 만났던 아버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화된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아버지들이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들이 삶의 태도와 실천들이 쉽지 않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아버지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환영하는 듯한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실재 육아와 살림에 적극적인 삶을 사는 아버지의 존재를 거북스럽고, 외롭고, 무언가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집에 있는 아버지를 누가 좋아해? 창피하지도 않아?’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의 무의식적 기저에는 이러한 반응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우리 사회에 어떤 뿌리 깊은 관성이 자리 잡고 있길래, 개별 아버지들의 육아에 대한 능동적 선택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동시대 아버지들을 형성한 기존의 ‘아버지다움’에 대한 해석이 먼저 필요했던 이유이다. 공교롭게도 대화를 나눈 우리 모두는 당신의 아버지 존재에 대한 기억이 부재하거나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현재 노인 남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시각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에 대한 관념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된다. 노인이 된 남성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은퇴를 앞둔 60대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80대까지 전반적으로 전쟁 전후에 태어나 우리 사회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분들의 이야기이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머리에 떠오른 그림이 하나 있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그림이다. 혁명의 사명을 완수하느라 갖은 고생과 감옥살이를 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맞이하는 한 가족의 당혹감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특히 퀭한 아버지의 눈동자와 딸아이의 공포스러운 눈빛이 인상적이다. 가족은 아버지가 집에 없는 일상이 매우 평온했고 아무도 그가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듯하다.
지금도 건설일용직 현장에 가보면 외국인이나 70대 어르신들이 주로 나오신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어떤 전설적인 이력을 보유하고 계셨다. 지하철 1호선 공사 때, 어느 대학병원을 건설할 때, 강남의 빌딩을 지을 때 그 현장을 손수 매만졌던 과거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그 일용직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한창때 사업체를 크게 운영하였다. 평균적으로 직원을 열 명쯤 거느린 중소기업 사장님 이셨다. 그리고 금융실명제 당시 명의를 빌려준 통장이 부도나서 혹은 IMF 때 밀린 어음을 받지 못해서 사업이 기울었고, 그 이후로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현장 일을 하려는 젊은이가 없어서 자신들이 죽으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푸념을 쏟아내신다. 그들은 단지 돈 때문에 현장에 나오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연로한 몸을 이끌고 현장에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의 활동을 지금도 이어감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인 것 같았다.
이러한 개인사의 바탕에는 국가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버지의 남성성은 국가적 맥락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남성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 스스로 군사력과 전투력을 향상하는 일은 남성적 민족성의 핵심을 이루었다. 산업화 시대, 국가 부의 원천은 농토가 아니라 남성의 노동력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군대, 월남 파병, 중동 파견, 중공업, 제철, 제강, 자동차산업 등 군사화된 남자의 강인한 신체는 국가 부의 원천이었다. 노동력과 군사력을 제공하는 정상 시민은 곧, 남성을 의미했다.
이러한 문화 아래서 우리의 노동자 아버지들은 자신의 삶을 국가와 사회에 일치시켰다. 국가를 지키고, 산업화의 기적에 일조하면 오늘보다 내일은 나아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충족시켜야 할 기본값 자체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뭐든 열심히 하면 어제보단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므로 군부, 마초, 엘리트 남성들이 주도했던 조국 근대화는 자기 효능감이 매우 높았다. ‘하면 된다’는 정신은 그 시절 모두의 구호였다.
그런데 IMF 구제 금융사태와 더불어 변화가 시작되었다. 헤게모니는 노동이 아니라 금융 자본으로 넘어왔다. 금융 자본 흐름에 따라 노동력은 때때로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노동이 점점 쓸모없어짐에 따라 남성들의 호주머니는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1) 또 다른 한편에서 소비 자본주의의 확산은 기존의 남성다움의 가치를 점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근검하라’ ’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의 시대에서 ‘즐겨라! 관광하라! 소비하라!’가 중요한 시대적 명령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롭게 요구되는 시대적 명령 앞에 남성들은 상대적 경쟁력을 잃어갔다. 결정적으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신자유주의에 따라 인간들의 삶이 불투명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고 기획할 수 없게 되었다. 2)
집으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가지고 돌아온 아버지 존재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근본적으로 ‘노동-일’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이 되었다. 존재들은 무엇을 통해 사회 안에서 의미를 찾고 자리매김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당당했던 과거의 아버지들은 어느 순간 퇴직할 때가 되었고, 혹은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반강제로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특히 큰 기업이나 공직사회에서 훌륭하게 자리매김했던 아버지일수록 은퇴 후 매일 출근하던 자리가 사라졌을 때 그 충격의 강도는 정비례하였다. 그는 다만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인데 은퇴 이후 존재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저주받은 ‘삼식이’로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매일매일 밖에 갈 곳이 있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어버렸을 때 제일 먼저 밥 먹는 것부터 문제가 된다. 대체적으로 오랜 시간 집안의 공간을 주체적으로 운용했던 안주인과 동선이 겹치면서 갈등이 점점 첨예해진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회에서 자신을 찾는 이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은퇴 후 갈 수 있는 일자리는 기존 연봉에 반의반도 되지 않는 자리뿐이다.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자체가 상처를 입는 것이다. 이것도 그나마 좋은 경우이다. 자식의 사업 자금으로, 자녀의 유학 및 결혼 자금으로 자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 노부모는 ‘노인 빈곤’이라는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 진입하게 된다.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사람의 일과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다 보니 그 외에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가치는 폄훼되었고 그저 사회가 기대하는 생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에 대해서는 ‘미달’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비숙련직도, 아이, 구직자, 청년도, 주부, 노인도 모두 미완의 존재라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가 붙는다.
어린 왕자 이야기에서 네 번째 별에서 사업가를 만나는 부분이 나온다. 그는 하루 종일 별을 소유하기 위해 별의 숫자를 세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중요한 일들을 하느라 공상할 시간이 없다. 어린 왕자는 그에게 ‘진짜 소유란’ 무엇인가 반문한다.
“나는 꽃 한 송이를 갖고 있어요. 난 그 꽃에게 매일 물을 줘요. 화산도 세 개나 갖고 있는데 매주 청소를 해줘요. 내가 꽃이나 화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죠. 그렇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유익할 게 없잖아요.”
어린 왕자의 관점에서 산업적인 명분 아래 정량적 결과물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보다 무언가 유지하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이 세계에 이로운 일인 것이다.
남성성과 연결된 가장-생산-노동이라는 뿌리 깊은 신화 체계를 재구성하는 유연한 시도가 없다면 앞으로 우리 아버지들의 존재는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리’는 존재 자체가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신뢰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자신의 자리 하나가 있고 없고 가 존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세상에 단단하게 서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연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듯이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면 이를 구축할만한 가시-비가시적 공간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책상 자리 하나가 사라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경험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사실은 있다. 천한 직업과 아닌 직업의 차이는 급여 수준에도 있지만 반듯한 책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도 크다.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화장실과 탕비실이 있느냐 없느냐는 존재의 존엄성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건설노동자는 공사 현장에서 소변과 오줌을 눌 곳이 없을 때 공사 현장 아무 데나 가서 일 처리를 하게 된다. 그는 현장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더럽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때 그 누구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애초에 공사 현장에 화장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 건축주나 현장감독의 책임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공사 감독이나 건축주는 현장 노동자를 바라보며 경멸의 시선을 재생산한다.
근로 노동자에게 반듯한 책상이 생겼다 해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턴직원의 책상은, 가장 책임이 작고 위험부담이 낮은 업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출입구 가까이 회사 모든 구성원에게 열린 방향으로 놓이게 된다. 반면 부장님은 누구도 볼 수 없는 제일 안쪽에 창을 등지고 놓이게 된다. 불안한 존재들의 자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긴장이 조직사회에는 늘 있기 마련이다.
왜 기성세대 아버지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노동자-정상 시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인데 궁극에는 갈 곳이라는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첫째 이유는 아마도 집안에서 범죄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마초-남성성-국가로 이어지는 공통점에는 합법적 폭력 행사의 그늘이 있다. 국가는 가정 내 문제는 경제적 주권이나 의사결정권을 가진 가장에게 위임함으로써 일종의 암묵적인 폭력 권한을 인정하였다. 가정 사범들의 낮은 형량이 이를 반증한다. 물론 자상하고 유머감각 넘치는 옛 어르신들도 분명 많이 계신다. 하지만 몇몇 폭군 아버지들은 그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였다.
두 번째 이유는 정서적 에너지 분배에 실패한 혐의가 있다. 인정 욕구를 따라가는 동물인 인간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공동체서 좀 더 많은 에너지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어느 한쪽으로 점점 짙어지기 쉽다. 대부분의 사회생활에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 남성은 집과 ‘집안’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일종의 자신의 무의식을 내려놓는 ‘이드 id’의 공간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반면 사회와 회사는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슈퍼에고 super ego’의 공간이다. 이런 까닭에 노동자 남성은 도덕적인 슈퍼에고를 선보이는 공간에서 더 착실하고 좋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노동과 부가가치 창출, 임금노동자, 일정 기능을 갖춘 인재를 ‘정상 인간'이라는 범주로 묶어두고 그 주변부의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존재를 미달의 상태, 아직 미완의 상태로 간주하였다. 공공 행정 서비스를 받거나 은행 업무를 보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이 정상 국민임을 증명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아르바이트는 젊은 시절 잠시 거치는 고생으로 치부한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따라가기 싫어하는 일본은 우리보다 십여 년 앞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두고 젊은이와 노인이 서로 경쟁하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도 머지않았다. 아니 이미 도래했다.
우리가 보고 자랐던 과거의 아버지에 대한 어두운 관념의 그늘이 현대의 남성-가장-아버지에게도 연속적으로 길게 드리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안에 있는 남성을 정상 시민에서 탈락한 존재로 바라보고, 혹은 잠재적 범죄자, 아직, 미달, 보류 상태로 보는 시각들이 과거로부터 재생산되는 것이다.
설사 아버지들이 변화하는 젠더 역할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유연한 역할을 수행한다 해도 극복해야 할 사회적 불편한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 주거공간에서 아버지는 신분증명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아버지가 아파트에서 아기를 업고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기 위해 대낮에 현관을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짧은 동선 안에서 여러 시선을 거치게 된다. 자신의 존재에 정당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경비 할아버지께서
“요즘 출근 안 하시나 봐요?”
동네 할머니가
“대체 애기 엄마는 어디 갔어?”
어린이집 차를 함께 기다리는 이웃 엄마가
“... “
자신이 길을 가는데 무언가 해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면 그는 ‘난민’이다.
1) 엄기호 외,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 모음, 2011, p154
2) 엄기호,『Ibid』,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