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양육환경과 놀이실험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 보고서
양평에서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이 대도시로 되돌아가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략 시골-친자연 환경의 단점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다양한 문화 혹은 경험 인프라의 부족
두 번째 자녀의 대학 입시를 준비 시 상대적으로 큰 매력과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움
세 번째 학교-학원-집 동선의 불편함
네 번째 어린이 청소년의 자율 보행이 어려움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이유는 저마다 가치 우선순위에 따라서 판단을 달리할 수 있겠지만 자율보행이 어렵다는 문제는 저도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2024년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데 인간 어린이는 점점 자율 보행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명백히 사람보다 차를 우선순위에 둔 인위적인 정책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두 다리의 힘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고 스스로 탐색하고 탐험하는 것은 어떤 교육 프로그램보다도 인간됨을 형성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 네 가지 원인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자치적인 네트워크를 경험할만한 시간적 여유와 공간적 밀도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이 양평살이의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시간적 여유가 많고 주거 밀도가 적당히 높으며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도 중 쉬거나 들릴 만한 공공 공간이 충분하다면 아이들은 마을 안에서 자치적인 활동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일일이 쫓아다니며 하교 후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일은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매우 생경한 부모업무입니다. 어린이가 하교 길에 우연히 서로 만나 공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직업적인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실험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인간의 창조성의 발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평소 염두하고 있었고, 저희 자녀들이 초등 입학 이후 점점 어린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근린에서 자율적인 보행을 할 수 없고 스스로 사건을 만들어나갈 가능성이 줄어드는 현실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5-6년만 지나면 저희 자녀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년기에 무언가 큰 공백을 남긴 체 그냥 청소년기로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2019년 저희 넷째가 아직 돌 잡이었던 시절, 이러한 문제의식을 나눌만한 동료
예술가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저희 넷째가 아직 돌 잡이었던 시절, 이러한 문제의식을 나눌만한 동료 예술가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교육일을 하면서 만났던 동료들에게 저희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였고 그중 소중한 몇몇 동료들이 응답해 주었습니다. 평소 놀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린이와 예술교육, 환경, 공간에 대한 비슷한 관심을 가진 예술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저 포함 5명의 예술가-교육활동가들이 모여서 그리고 '놀이공동체 빈둥'이라는 비영리단체이름으로 지역문화 공모사업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첫 번째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시범으로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장기적인 가시적 목표는 어린이스스로 실험적인 놀이 공유지를 건설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은 숨은 목표가 있었습니다. 어린이의 인격으로서 독립된 삶과 여유시간, 자율적인 놀 권리를 지지해 줄 지역사회 어른들을 모으는 게 숨어있는 두 번째 진짜 목표였습니다.
2019년 그렇게 양평에서 10명의 가정을 중심으로 7주간 실험적으로 공터에서 소위 모험놀이터를 만드는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워크숍 및 여러 자료공유회는 저희 5명의 예술가들이 준비하였고 본격적으로 나대지를 구하고 놀이터에서 정기적으로 놀면서 놀이 활동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은 어린이와 그 어린이의 지지자인 부모들이었습니다.
7 주간의 기적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정말 훌륭하였습니다. 스스로 위험을 다스리면서 천재적으로 놀이를 발생시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 워크숍이 2019년 9월-10월까지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부모들은 계속 그 공터에서 놀이 모임을 지속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예술강사라는 직업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매주 평일 오후에 모이는 자율 모임에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엄마들끼리 순번을 정해서 모임을 운영하고 간식 준비를 하였고 매주 금요일마다 방과 후 3시에 모여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식사시간 모닥불에 모여서 어묵탕과 라면 끓어 먹고 나서도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아서 한 동한 엄마들이 고생하셨습니다.
2019년까지 사용하기로 한 공터 주인과의 약속 때문에 또 다른 놀이실험부지를 알아보려는 엄마들의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가까운 곳에 비어있는 더 넓은 대지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의 인맥을 통해 땅 주인으로부터 2년-3년 정도 건축 계획이 없으니 당분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토목개발업을 하시는 한 아버님이 자신의 포클레인을 가져와서 야산 구릉 대지를 무료로 정리해주셨습니다. 엄마들은 모래주머니 폐타이어 부서진 목재 등을 모두 일일이 실어 나르는 등 함께 열심히 이사를 도왔습니다. 새로 이사한 곳은 이전보다 더 좋았습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직업군인이신 한 가정의 도움으로 저렴하게 군용 물품점에서 밀리터리 잠바를 공동구매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추위를 잊고 놀았고 엄마들은 모닥불 피우고 담소를 나누며 아이들의 놀이를 멀찍이서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순간, 보이지 않는 갈등의 씨앗이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