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동해 24화

약속

일흔둘

by 김가희





겸, 오늘은 숨이 조금 막히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았다네. 아무도 나를 묶어 두지 않았으나 또다시 감정에 휘둘려 그릇된 판단을 내릴까 봐 스스로를 경계했지.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보려던 시도가 오히려 나를 더 좁은 자리로 몰아넣는 듯했네. 관계와 일이 얽힐 때마다 말을 아끼고 요구를 줄여오던 태도가 과연 성숙이었는지, 아니면 두려움이었는지 묻게 되더군. 결국 내 눈을 가린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네.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세운 담장이 실상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음을 비로소 직시하게 된 것이지.


그래서 계약서를 다시 펼쳐 들었지. 이번에는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문장으로 사안을 보려 했다네. 무엇이 명시되어 있고 무엇이 누락되었는지, 어디까지가 책임이며 어디서부터가 선택인지 차분히 따졌네. 불편하더라도 모호한 지점은 다시 적어 넣으며 공정함이란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 세워야 함을 깨달았지. 인간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모험인지, 명문화된 질서가 도리어 서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역설을 배웠다네. 대표에게도 우리 둘의 시간을 존중하기 위한 단호한 설명으로 내 뜻을 전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맑아졌다네.



나는 그를 더 이상 과거와 겹쳐 보지 않기로 했다네. 예전에는 사소한 표정 하나에도 오래된 장면들이 따라붙어 현재의 판단을 가로막곤 했지. 오늘은 그 과거의 편린들을 의도적으로 떼어내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그대로 둔 채 지금의 관계만 남겨 보려 했다네. 상대를 구원하거나 나를 증명하려던 욕심을 접고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동업자로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지. 타인을 내 과거의 보상체로 삼으려 했던 오만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타자 그 자체가 서 있을 공간이 생겨났네. 감정이 빠져나간 자리에 비로소 기준이 들어선 것이지.


서명을 마치고 나니 이 행위가 단기적인 협업을 넘어 1년이라는 시간을 지탱할 구조를 만든 것임을 실감했네. 범위와 비용, 역할과 마감이 적힌 문서가 우리 사이의 흐름을 규정하는 질서가 되었지. 말로만 떠돌던 흐릿한 약속들이 숫자와 날짜로 굳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네. 대표가 첫 원고료를 선급으로 이체하고 내가 1차 전달 일정을 확정하던 순간, 작지만 단단한 출발을 느꼈지. 합의는 신뢰를 낳고, 일은 감정보다 견고한 기록 위에서 자란다는 걸 알았다네.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보다 손에 잡히는 책임이 인간을 더 정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웠네.




집으로 돌아와 장비 소모품을 점검하며 앞으로 쌓일 결과물들을 상상했다네. 이번 계약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약속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 할지를 선언하는 일이었지. 불안에 묶여 있던 예전의 태도에서 벗어나 명확함으로 버티는 쪽을 택한 셈이라네. 관계를 지키려 나를 깎아내는 대신 기준을 세워 함께 가는 길을 선택했네. 오늘의 서명은 나의 방향을 확정한 표시이며, 이 구조가 쌓여 나를 지탱하는 진정한 기반이 될 거라 믿네.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긋는 선의 궤적임을 이제야 선명히 느끼고 있다네.


계약 뒤의 정적은 생각보다 조용했네. 그동안 내가 기준이 없어서 불안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실체 없는 감정으로 버텨왔음을 알게 되었지. 문서가 관계의 자리를 대신하니 자연히 기대도 함께 줄어들더군. 예전 같으면 서운함이 끼어들었을 틈에도 오늘은 아무런 파동이 생기지 않았네. 감정으로 연결된 줄을 스스로 끊어낸 뒤 찾아온 약간의 허전함이 있었으나, 그 온기가 사실은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그 자리를 채웠다네. 홀로 선다는 것은 따뜻한 군중 속의 열기를 포기하고, 서늘하지만 맑은 고독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이라네.



대표와 나눈 대화 속 배려를 가장했던 문장들이 사라졌네. 필요한 말만 남은 간결한 문장은 상처를 주지도 않지만 어떤 기대도 남기지 않았지. 나는 그동안 관계 속에서 인정의 신호를 찾느라 에너지를 소모해 왔던 모양이네. 구조로 모든 것을 옮겨 놓고 나니 동등해졌다는 것은 곧 기대할 자리조차 사라졌다는 뜻임을 깨달았네. 그 사실이 조금 서늘하게 다가왔지만 이것이 비로소 마주해야 할 진실처럼 느껴졌지. 의미를 덧칠하지 않은 담백한 소통이야말로 서로를 가장 덜 소모시키는 방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네.



겸, 나는 늘 타인과 무언가를 세우고 있다고 믿으며 내 몫보다 많은 헌신을 떠안곤 했지. 하지만 계산서를 정리해 보니 그것은 종종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선택이었네. 먼저 내어주고 나중에 보상받기를 기다리는 미련한 습관을 계약이라는 도구로 끊어냈다네. 이제는 부족하다는 감정이 밀려와도 그 위에 기준을 먼저 올려두기로 했네. 먼저 나를 줄이는 일 없이 내 몫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며 서 있겠다고 다짐하는 중이라네.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숨겨두었던 나의 결핍을 직시하고, 정당한 대가와 거리를 요구하는 법을 비로소 익힌 것이지.


작업 파일을 정리하며 내가 진짜 두려워했던 것은 갈등이 아니라 고립이었음을 알았네. 감정의 끈을 느슨하게 하면 혼자가 될 것 같았지만 정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대표는 정해진 일정에 답했고 나는 맡은 분량을 준비하며 일은 감정 없이도 명확하게 굴러갔네. 불필요한 해석을 덜어내니 오히려 일의 속도와 선명함이 남더군. 관계의 무게를 덜어낸 자리에 비로소 업무의 본질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네. 고립은 타인이 나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해 관계 속에 함몰될 때 일어나는 일임을 이제야 알겠네.



겸, 나는 이제야 동등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네. 상처를 들추어 위로받기보다 빈자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쪽을 택했지. 누군가에게 기대어 결핍을 채우려던 관성을 버리고 부족한 부분은 계산하고 조정하며 나를 보호하려 하네. 오늘 느낀 허전함은 무언가를 잃은 손실이 아니라 정돈된 내면의 증거라 생각하네. 관계의 온도는 낮아졌을지언정 구조는 단단해졌으니, 이 균형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나를 잃지 않을 것이네.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억지로 막기보다 그 구멍을 감싸는 단단한 테두리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네.




며칠이 지나자 내 안에서 말투와 태도가 달라졌음을 체감했다네.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말하게 되었지. 예전에는 오해를 막으려 문장을 덧붙였으나 이제는 상대의 질문이 오기 전까지 침묵을 견디기로 했네. 분명함은 무례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상대의 반응을 미리 상상하지 않으니 생각이 또렷해졌지. 판단이 단단해질수록 마음은 고요해졌고, 나를 지키는 태도는 오히려 소리를 낮추는 데서 온다는 걸 배웠네. 침묵은 방어가 아니라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한 가장 고귀한 선언임을 느꼈다네.


그렇다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 예전의 방식에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따뜻한 착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기대를 얹어 두고 상대가 충족해 주길 기다리던 일방적인 해석의 시간이었네. 환상을 내려놓는 일은 사람을 잃는 것만큼이나 상실의 감각을 남기더군. 그럼에도 서운함이 줄어든 자리에 평온이 찾아온 것을 보면, 내가 가졌던 그동안의 온기는 결국 내가 만든 환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네. 진실은 때로 차갑지만, 그 차가움이 우리를 망상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약임을 인정하게 되었지.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다시 냉정함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기도 하네. 혹시 내가 너무 벽을 세운 것은 아닌지 스스로 따져 보게 되지만, 그 불안은 실재하지 않는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걸 안다네. 나는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상을 믿는 대신 문서에 적힌 사실과 실제의 행동만을 근거로 삼기로 했네. 생각이 과장되려 할 때마다 세워둔 기준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더군. 요동치던 감정의 파고가 차가운 이성의 틀 안에서 점차 잦아들고 있다네. 상상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포를 실제의 숫자로 치환하는 법을 배우며, 나는 비로소 밤의 고독과 화해하고 있다네.


대표와의 소통은 이제 일정과 비용이라는 명확한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네. 관계의 밀도는 낮아졌으나 오해의 소지가 사라지니 서로의 영역에 대한 존중이 쉬워졌지. 부탁과 요구를 구분하고 거절의 두려움을 걷어내니 동등한 위치에서 말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네. 그 확신은 요란하지 않지만 묵직한 안정감을 주지. 나를 바로 세우고 인정받고 싶던 미련을 내려놓는 이 과정이 결국 나를 가장 정직한 자리에 가져다 놓았네. 타인의 기분이 아닌 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일 때, 비로소 타인과의 진정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역설을 마주하고 있다네.




며칠 사이 내 표정이 단단해졌다는 말을 들었네. 눈치를 보며 말을 고르지 않으니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고 선택과 결정의 속도가 빨라졌지. 누군가의 기대를 읽느라 힘을 빼는 대신 맡은 몫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이 내가 지켜야 할 진정한 권위임을 깨달았네. 회의 자리에서도 내 말이 먼저 중심이 되어 일정을 못 박으니 오히려 상대의 반응도 부드러워지더군. 관계의 안정은 모호한 부드러움이 아니라 서늘한 명확함에서 온다는 걸 실감했네. 질서가 잡힌 관계 안에서는 구태여 친절을 증명하지 않아도 존중이 싹튼다는 사실을 말일세.



겸, 나는 이제 이 일을 언제든 물러날 수 있는 유예된 상태로 두지 않겠네. 단기적인 감정에 흔들리기보다 결과로 말하고 책임지는 쪽을 택하기로 했지. 떠날 궁리를 하며 스스로를 방치하던 태도를 버리고 1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책임지며 단단해지려 하네. 며칠 전 넘긴 파일에 대한 피드백도 감정의 개입 없이 투명한 계산 속에서 처리되었네. 작업이 반복될수록 구조가 안정되는 것을 보며 일은 결국 정직한 축적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네. 회피는 잠시의 편안함을 주지만, 책임은 영원한 자유를 준다는 진리를 몸소 체험하는 중이라네.


생각해 보니 이 모든 변화는 단지 계약이라는 절차의 문제가 아니었네. 과거를 정리하고 나를 과소평가하던 습관을 멈춘 결과라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서서 책임을 다하고 성과를 증명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네. 감정에 기대어 위태롭게 서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발밑이 단단해졌음을 느끼네. 이 명료한 구조가 이어지는 한,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네. 오늘은 그 확신이 유독 선명하며, 이 명징한 감각이야말로 내가 평생 찾아 헤맨 진정한 안정이었음을 깨닫는다네.





환상을 걷어내고 책임의 무게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관계는 소모적인 감정을 넘어

동등한 존재들의 정직한 연대로 진화한다.

진정한 약속은 내 삶의 궤적을

스스로 규정하고 지키겠다는 선언이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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