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동해 22화

회귀

예순여섯

by 김가희





요즘 나는 다시금 내 자리를 확인하고 있네. 오래 써 온 책상, 손에 익은 방식들, 그리고 쉽게 휘청이지 않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일세. 매일 아침 차를 내리고 펜을 쥐는 이 사소한 질서가 나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임을 새삼 깨닫는다네.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가장 단단한 성벽과도 같았지.


이 관계 앞에서도 나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서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네. 충분히 쌓아 온 시간과 경험은 나를 지탱하는 견고한 지반이 되어 주었지. 덕분에 예전처럼 불안에 기대지 않아도 무언가를 건넬 수 있다는 감각이 선명했네. 상대를 통해 나를 증명하려 들지 않고, 이미 가진 것을 조용히 내어줄 수 있는 상태였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태도가 지금의 나를 정의하고 있었네.



그러나 머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네. 마음이 움직였다는 건 이미 방향을 틀었다는 신호니까. 정지해 있던 관성이 깨지고 새로운 속도가 붙기 시작할 때, 나는 그 변화를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네. 내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했을 때, 나는 이번 감정을 가두어두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네.


흔들리지 않으려 멈춰 서는 대신, 중심을 잡은 채 나아가는 쪽을 택한 것이지. 감정을 무작정 억누르지도, 그렇다고 속절없이 쏟아내지도 않으며 그 적절한 선을 손에 쥔 채 움직이는 일 말일세. 이 선택은 찰나의 충동보다 스스로 내린 깊은 의지에 가까웠네. 타인에 의해 결정된 경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네.




관계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더 또렷이 응시하게 되었네. 상대의 의중을 해석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대신, 그 앞에 선 나의 반응을 세밀하게 관찰했지. 상대의 어떤 말에 내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어떤 침묵 속에서 내가 안도감을 느끼는지를 가만히 살피는 과정이었네. 내 안의 낯선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네.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일임을 다시금 실감했지. 감정은 고요했으나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했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내 안에서 충돌하면서도 결국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듯, 나 역시 내 안의 갈등을 다독이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네.



그 걸음 끝에 나는 이 관계가 현재에만 고여 있지 않음을 깨달았네. 그 젊은 사업가와 마주 앉았던 날, 그의 눈빛에서 열망하되 서툴렀던 예전의 나를 발견했지. 무언가 증명하고 싶어 조급했던 시절의 내 모습이 그에게서 어른거렸네. 그 젊음의 열기와 불안함이 교차하는 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지나온 시간들의 무게를 긍정하게 되었다네.


그 찰나 겸, 그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겹쳐 흘렀고, 접어 두었던 편지들의 기억까지 손끝에 되살아났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었지. 지금의 협업은 새로움을 향한 발걸음인 동시에 나의 과거를 다시 읽어 내는 통로가 되었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위치가 고정되지 않았음을 알았지. 삶은 늘 그렇게 오가며 순환하고 있었어.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네. 이 감정이 낯선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오래 묻어 두었던 무언가가 다시 불려 나온 것인지 말일세.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열쇠를 다시 꺼내어 잠긴 문을 열어보는 기분이었네. 과거의 선택과 현재의 태도가 한자리에서 마주했지.


예전의 나는 감정을 서둘러 정의하고 그 틀에 나를 맞추려 애썼으나, 지금은 달랐네. 감정은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아니라 나를 일깨우는 신호였네. 그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을 회피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지금 내게 필요한 유일한 태도임을 알게 되었지. 이 명료한 깨달음은 나를 한결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었네.




그러나 깨달음이 곧장 평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네.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예전 갈등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올랐지. 논리로 상대를 압도하고 이겼다 자부했으나 결국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돌아섰던 그늘진 장면들 말일세. 그때의 나는 무엇을 얻었느냐보다 무엇을 잃었느냐를 더 오래 가슴에 묻고 살았음을 인정해야 했네.


승리의 쾌감 뒤에 남겨진 것은 늘 차가운 공허함뿐이었다네. 이번만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상대보다 앞서 판단하고 논리를 앞세우려던 낡은 습관을 멈춰 세웠네.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훨씬 무거운 가치임을 이제야 알았네.



나는 더 이상 이기려 애쓰지 않는 쪽을 택했다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그저 이 감정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살폈지. 팽팽하게 당겨졌던 마음의 끈을 조금 늦추고 나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소한 배려와 사실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네. 긴장을 내려놓자 비로소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네.


관계는 누군가를 굴복시켜야 할 전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몸으로 배운 셈이지. 과거의 승패는 이미 의미를 잃었고, 나는 전혀 다른 방식 위에 서 있었네. 조용히 한 발 물러나 마음이 숨 쉴 공간을 비워두자, 비로소 내 안에 잔잔한 만족이 차오르기 시작했네. 상대를 밀어내지 않고도 내가 온전해지는 법을 깨달은 것이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받지 않아도 좋았고, 모든 마음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했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는 고전의 문구가 비로소 가슴에 와닿았지. 욕심을 덜어내니 이미 손에 쥔 것들이 선명해졌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롭다는 사실을 깨닫자, 상대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던 마음도 사라졌네. 이제 이 관계는 나를 채우기 위해 상대를 소모하는 일이 아니었네. 나는 혼자만의 이해를 넘어 다시 사람들 사이로 이 감정을 가져가기로 했네. 내가 가진 온기를 타인과 나누면서도 내 안의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을 익히기로 한 것이지. 각자의 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 가는 과정 속으로 말이네.




하지만 흐름이 늘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네.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낡은 피로가 쌓여 있었고, 다시 상처받지 않으려 본능적으로 거리를 재던 순간도 있었지. 문득 엄습하는 불안감과 회의감이 나를 주춤하게 만들기도 했다네. 나는 여전히 경계 위에 서 있었네. 다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버티고 있다는 점이 예전과 달랐지.


예전의 버팀이 그저 견뎌야 하는 고통이었다면, 지금의 버팀은 스스로를 다스리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가까웠네. 이 버팀은 오기나 투지보다 책임감에 가까웠고, 나는 그 미묘한 차이를 선명히 느끼며 한 걸음 더 견디는 쪽을 택했네. 버틴 끝에 손에 남은 감정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담백했지.



어느 순간 감정은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이 되어 나타났네.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상황과 시간을 기꺼이 함께 견디는 태도 말일세. 숲이 나무를 키우듯, 나 또한 이 관계가 자라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넉넉함을 갖게 되었네.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해결하려 들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관계는 그만의 결을 만들어가더군.


나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지. 감정을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않고 그저 지켜봐 주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였네. 이제 나는 이것이 나약함이 아니라 얼마나 단단한 힘인지 알고 있네.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네.



조용하던 흐름 속에서도 한 번은 무너지는 순간을 지나야 했네. 예고 없는 말 한마디에 괜찮다 믿었던 마음의 구조가 한순간에 갈라지는 듯했지. 공들여 쌓아온 신뢰와 기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상실감이 나를 덮쳤다네. 하지만 무너진 자리에서 내가 본 것은 누군가의 배신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가졌던 오해가 벗겨지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네.


화려한 수식어와 환상이 사라진 뒤에 남은 날것의 진실은 생각보다 초라했지만, 동시에 명확했네. 나는 그 혼란스러운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서 있었지.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가려져 있던 시야가 트이더군. 한 손엔 익숙한 과거를, 다른 손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쥐고 앞으로 어디를 볼지 선택해야 했네. 무너진 터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새로운 길의 지도를 그렸네.




나는 극단을 택하지 않기로 했네. 완전히 마음을 닫고 고립되지도, 그렇다고 다시 무모하게 뛰어들지도 않는 상태 말일세. 성급하게 결론을 내어 이 소중한 과정을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지. 두 가지 무게를 양손에 올리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조심스레 조율했네.


균형은 겉보기엔 불안해 보였으나, 사실은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했지. 끊임없이 흔들리더라도 그 두 가치를 모두 안고 가는 편이 지금의 내게는 더 맞았네. 결론을 유보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기자 마음은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지. 모호한 상황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성숙의 척도임을 나는 비로소 수긍했네.


이 경험은 무언가를 이루는 성취보다 나 자신을 다듬어가는 조정의 과정에 가까웠고, 나는 그 담백한 현실감이 마음에 들었다네. 이 긴 편지의 끝에서 거창한 선언은 하지 않으려 하네. 다만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지. 감정에 휘둘리지 않되 외면하지도 않는 자리, 무너짐을 통과했고 방향을 읽었으며 균형 위에 서 있는 지금 말이네.



이것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장면들 중 하나일 뿐이라네. 이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틱한 결말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현재 좌표를 기록한 것이네. 언젠가 다시 흔들릴 날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도달한 이 지점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 삶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고 때론 막막함이 앞서기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미지의 영역이 두렵지 않네. 나는 그다음 장을,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손으로 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네.





무너짐은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오기 위한

필연적 통로일 뿐이다.

삶은 흔들림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정립하며

본질로 돌아오는 의지적 행로이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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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