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셋
나는 한동안 멈춰 서서 내가 지나온 작업과 삶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네. 멈춘다고 해서 방향을 잃은 것은 아니었고, 속도를 늦췄다고 해서 의지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네. 오히려 지금까지 밀어붙이던 방식이 과연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하고 싶어 졌다고 해야 맞겠지. 그동안 나는 결정이 빠른 사람으로 살아왔고, 책임 역시 혼자 짊어지는 쪽을 택해 왔네. 그것이 효율적이며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감각이 나를 붙잡았네. 전진을 멈춘 게 아니라, 그 이유를 다시 점검하고 있었던 셈이었지.
돌이켜보면 나는 늘 결과를 향해 곧장 가는 방식에 익숙했네.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이나 관계의 온도는 뒤로 미룬 채 일이 끝난 뒤에야 돌아보곤 했지.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그 순서가 달라졌다네. 아이디어를 밀어붙이기보다 그것이 어떤 상태에서 발현되었는지를 살피게 되었고, 내 안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지. 그 과정이 때로 느리고 번거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불안하지는 않았네.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 나를 약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네.
그러는 사이 관계를 대하는 내 태도도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었네. 예전 같았으면 혼자 결정하고 통보했을 장면에서, 나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었다네. 그 사람이 젊다는 사실이나 경험의 길이는 판단의 기준이 아니었지.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였네. 아이디어가 맞부딪히는 순간에도 나는 그것을 대립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썼고,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두었지. 그렇게 하니 작업은 경쟁이 아니라 함께 키워가는 형태로 바뀌어 갔네.
이때 내가 배운 것은 성과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관계를 다루는 감각이었네. 감정을 배제한 채 명확함만을 앞세우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태도는 아니라는 사실 말이네. 따뜻함은 기준을 흐리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판단을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존중하려 했을 때 합의는 훨씬 단단해졌네. 그 합의는 서로가 지켜야 할 태도로 남았고, 그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떤 선택 앞에서도 서두르지 않으려 하네. 동등한 위치에서 충분히 말하고 들으며, 그 결과에 함께 책임질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네. 이것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에 대한 기준이 되었지. 예전의 나였다면 비효율이라 여겼을 이 태도가 지금은 가장 정확한 판단처럼 느껴진다네. 젊은 사람과의 합의였지만 그 관계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한 단계 더 성숙한 자리로 이끌었네. 이렇게 나는 또 하나의 방식을 배워가고 있다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이네.
이제 나는 감정을 흐릿하게 다루지 않으려 하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책임의 영역인지 구분해야 할 시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말은 부드러울 수 있지만 기준은 분명해야 했네. 작업에 관해 논의할 때도 나는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구조와 논리를 먼저 세웠지. 어디까지가 나의 몫이고 어디부터가 상대의 판단인지 선을 긋는 일이 필요했네. 이 선이 있어야 관계가 오래간다는 걸 이제는 안다네. 명확함은 차가움이 아니라, 신뢰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이었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된 것들도 있었네. 이전에 쌓아온 방식, 익숙했던 감각, 그리고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애착 말이네. 꼭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했네. 그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앞으로의 합의가 왜곡될 것 같았지. 그래서 나는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섰네. 떠난다는 감각은 늘 공허함을 동반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후련함이 먼저 찾아왔네. 비워야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는 말을 이 나이에야 체감하고 있었지.
떠남은 단절이 아니라 정리였네. 감정적으로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관계를 위해 거리를 조정한 셈이었지.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무엇을 지켜야 할지가 선명해졌네. 이 작업에서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기준과 양보해도 괜찮은 영역이 또렷하게 드러났지. 이전처럼 모든 걸 끌어안으려 하지 않으니 오히려 판단이 빨라졌네. 감정에 대한 존중과 거리 두기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네.
그다음은 책임을 다루는 태도가 달라졌네. 감정이 실린 합의일수록 더 명확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나는 더 이상 좋은 분위기에 기대지 않았고 애매한 기대도 만들지 않으려 했네. 대신 각자의 역할과 권한을 분명히 정리했고, 그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지. 이것은 통제가 아니라 보호에 가까웠네. 관계를 가볍게 다루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틀이었으니까.
이제 나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끝을 함께 떠올리려 하네. 감정이 식은 뒤에도 존중이 남아 있을 구조인지, 책임이 흐려지지 않을지 먼저 살피게 되었지. 이런 태도는 나를 고립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신뢰를 불러왔네. 단단한 기준 위에서 맺어진 관계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네. 예전에는 추진력으로 자리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질서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네. 이것이 지금의 나를 가장 안정적으로 서 있게 하는 방식이라네.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더 애쓰지 않기로 했네.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진 뒤에는 오히려 손을 놓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까지 이미 충분히 다다라 있었다네. 그래서 더 밀지 않았고 더 다듬지도 않았지. 판단을 유보한 채 이 상태가 스스로 어떤 결을 드러내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네. 멈춘다고 해서 불안해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
관계가 안정되었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그 안정 위에서 무언가를 더 증명하려는 충동이더군. 나는 그 충동을 알아차리는 순간 일부러 말을 줄였네. 회의에서도 굳이 결론을 앞당기지 않았고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잠시 보류했지. 이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생각을 쉬게 하기 위한 자리였네. 모든 감정과 논리를 잠시 눕혀 두니 오히려 전체 구조가 또렷해졌지.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판단을 맑게 만든다는 걸 이때 분명히 느꼈네.
함께 일하는 관계라 해서 항상 연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네. 각자가 제 자리로 돌아가 숨을 고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지. 그래서 나는 일부러 거리를 만들었고 그 거리를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았네. 설명 없이도 유지되는 관계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이 유보의 시간은 관계를 시험하는 장치가 아니라 불필요한 힘을 빼는 과정이었네. 쉬지 못하는 관계는 결국 어딘가에서 과열된다는 걸 나는 여러 번 보아왔으니까 말이네.
결과를 상상하는 일을 멈췄네. 잘될지, 어디까지 갈지, 어떤 형태로 남을지에 대한 질문을 잠시 접어 두었지. 대신 지금 이 상태가 나에게 과한 긴장을 요구하는지, 혹은 자연스러운 호흡을 허용하는지를 살폈네. 마음이 조용해졌고 생각의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지. 이 느려짐이 나를 뒤처지게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네. 오히려 서두르지 않는 태도가 이후의 선택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지.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더 하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에 서 있네. 판단을 멈추고, 감정을 눕혀 두고, 관계를 잠시 쉬게 하는 이 상태 말이네. 이 고요함은 공백이 아니라 회복의 공간이었지. 다음 움직임은 여기서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이고, 그때까지 나는 조급해하지 않으려 하네. 일을 잘 굴리는 사람이기보다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네. 지금의 이 정지는 후퇴가 아니라 가장 정확한 준비 상태라 느껴진다네.
이제 나는 이 일을 하나의 생활 리듬으로 옮겨 두려 하네. 특별한 결단이나 감정의 고양에 기대지 않고, 매일 반복 가능한 형태로 정리하는 일이 필요했지. 일정은 촘촘하게 나누었고 역할은 과하지 않게 고정했네. 관계를 유지하는 힘은 의욕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잘되는 날보다 평범한 날을 기준으로 설계하려 했네. 오래가는 일은 언제나 눈에 띄지 않는 반복 위에서 완성된다네. 나는 지금 그 반복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지.
혼자의 시간도 이전과는 다른 성질을 띠고 있었네. 깊은 사유를 위한 고독이 아니라 손을 움직이기 위한 정돈의 시간이었지.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무엇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점검했네. 판단은 생각보다 단순했고 그래서 더 정확했지. 감정은 배제하지 않았지만 작업의 기준으로 두지도 않았네. 이 관계가 나의 일상에 무리 없이 들어오는지 그 점만을 반복해서 확인했네. 그렇게 남은 것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네.
다시 함께 일하는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설명을 늘리지 않았네. 대신 약속한 범위를 지켰고 맡은 몫을 차분히 수행했지. 작은 수정과 반복적인 점검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말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네. 신뢰는 대화의 깊이가 아니라 작업의 정확도에서 쌓이고 있었지. 관계는 특별해질 필요가 없었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충분했네. 나는 이 단순함이 얼마나 강한지 점점 체감하고 있었지.
이 동반은 더 이상 감정으로 정의되지 않았네. 함께 선택했다는 사실보다 함께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졌지. 누가 더 애쓰는지 따질 이유도 없었네. 대신 각자가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지가 기준이 되었지. 이 관계는 설득의 결과가 아니라 반복의 결과였네. 하루하루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시간이 쌓이자 분명한 형태가 드러났네. 나는 이런 방식의 신뢰를 오래 기다려 왔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
지금의 나는 이 선택을 특별하게 말하지 않네. 다만 매일 같은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을 뿐이지. 일이 되고, 관계가 되고, 다시 일이 되는 이 순환을 멈추지 않으려 하네. 화려함은 없지만 손에 익은 감각이 나를 앞으로 데려가고 있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만이 실제로 남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네. 나는 이제 관계에서도 일을 하듯 임하려 하네. 그것이 가장 정직하고 가장 오래가는 방식이라는 걸 배웠으니 말이네.
가장 단단한 합의는 서두름 없는 존중에서 나온다.
관계는 차가운 논리와 따뜻한 공감의 균형이며
명확한 질서가 서로의 자유를 지킨다.
의욕 대신 일상의 반복을 채움으로써
삶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리듬으로 완성된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