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한 시기가 완전히 닫혔다는 감각은 한 번에 오지 않았다네. 어느 날 갑자기 끝났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이전의 방식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 것이었어. 몸은 예전과 같은 속도를 허락하지 않았고,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으며, 사회 안에서 맡고 있던 자리 역시 서서히 의미를 잃어갔네. 무엇 하나 극적으로 무너지진 않았지만, 그 모든 변화가 겹치며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점에 도달했지. 끝이라는 말보다, 조정이 불가능해졌다는 감각이 더 정확했네. 그때 나는 아직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했지.
그래서 이 상태를 단정하지 않기로 했다네. 슬픔이라 부르지도, 새로운 국면이라 이름 붙이지도 않았지. 다만 이전의 질서와 앞으로의 질서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시간을 그대로 두었네. 이 시간을 빨리 통과하려 들수록 오히려 균형을 잃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하루를 넘기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 반복 속에서 감정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네. 희망도 절망도 아닌, 섞인 채로 유지되었어.
그 와중에 아주 작은 움직임들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네. 무엇을 시작하겠다는 선언 없이, 그날 가능한 만큼만 손을 움직였지. 책상을 정리하다 멈추고, 파일 하나를 열었다가 닫고, 문장을 몇 줄 쓰다 말았네. 로와의 산책도 길거나 짧지 않게 조절했고, 집안일 역시 완결을 목표로 하지 않았지. 이 행동들은 삶을 바꾸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하루의 무게를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한 조정에 가까웠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날의 상태에 맞추어 움직였지.
이 반복들은 나를 회복시키지도, 무너뜨리지도 않았네. 다만 하루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했지. 에너지가 남아 있는 날과 바닥난 날을 구분하고, 가능한 쪽에만 힘을 실었네.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적절했고, 어떤 날은 사소한 일 하나가 필요했지. 중요한 것은 지속이 아니라 배분이었다네. 모든 날을 동일하게 만들려 하지 않자, 오히려 균형은 오래 유지되었지.
나는 이제 이 시간을 채워야 할 공백으로 보지 않는다네. 대신 서로 다른 상태들을 어떻게 섞어 둘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어. 움직임과 정지, 연결과 고립, 의욕과 무력 사이를 오가며 그 비율을 조정하는 일. 이 반복은 나만의 자리를 단단히 세우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네. 크지 않아도 괜찮고,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판단이 이 지점에서 가능해졌지. 지금의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이 상태를 무리 없이 통과하는 쪽을 택하고 있네.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다시 한번 경계 위에 서게 되었네.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복귀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방향을 정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지. 설명을 요구받았고, 선택을 묻는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네.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말은 때로 방어처럼 들렸고, 멈춰 있다는 태도는 미루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왔지. 그래서 나는 자주 나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네. 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밀려나고 싶지도 않았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힘을 요구했네.
나는 모든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로 했다네.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먼저 정하는 쪽을 택했지. 이 선택은 용기라기보다는 자제에 가까웠네. 이전의 나는, 나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지켜왔지.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이 더는 나를 지탱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그래서 굳이 나서지 않았고 필요 이상으로 설명하지도 않았지. 그 침묵은 나약함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은 선을 분명히 하기 위한 태도였네.
그럼에도 내 안에는 여전히 주도하려는 기질이 남아 있었네.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고, 흐름을 읽고 싶었지. 다만 예전처럼 앞장서서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이네. 지금의 나는 명령하는 위치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전체를 바라보는 쪽에 더 가까웠지.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자,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가 선명해졌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드러나는 것들이 있었지. 힘을 쓰지 않는 선택 역시 하나의 판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네.
하지만 이 상태는 오래 유지되기 어려웠네. 멈춤이 길어질수록, 나 역시 어딘가에 매달린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되었지. 새로운 시각을 얻기 위한 전환이라기보다는, 전환 자체를 유예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네.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았지. 그래서 이 시간은 깨달음보다는 정체에 가까웠네. 생각은 많았지만,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그 간극이 나를 조금씩 소모시켰지.
나는 이 멈춤을 억지로 의미화하지 않기로 했다네. 희생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라 부르지도 않았고, 아직 결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후퇴라 생각하지도 않았지. 다만 지금의 나는, 바깥과 싸우지도, 안으로 도피하지도 않은 채, 판단을 잠시 걸어두고 있다는 사실만을 인정했네. 이 보류의 시간은 불편했지만, 이전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았지.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할 지점이라는 확신만이 남아 있었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짊어지고 있던 무게의 정체를 분명히 느끼게 되었네. 해야 한다고 믿어왔던 역할들, 책임이라고 여겼던 관계들, 끝내 정리하지 못한 기대들이 한꺼번에 얹혀 있었지. 그 무게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하루의 리듬을 계속해서 눌러왔네. 이미 끝난 관계의 여운까지도 나의 몫처럼 들고 있었고,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아도 될 요구들에도 습관처럼 반응하고 있었지. 이 상태로는 아무리 작은 반복을 이어가도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래서 처음으로,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지.
그 내려놓음은 단절과는 조금 달랐다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선택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쪽을 향해 등을 돌리는 일에 가까웠지. 설명하지 않고 물러났고,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거리를 만들었네. 이동은 도피가 아니라,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판단이었지. 익숙했던 풍경에서 벗어나자, 감정은 오히려 잠잠해졌네. 아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계속 덧씌워지지는 않았지.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정리가 되어 주었네.
이 과정에서 나는 예상보다 더 깊은 결핍을 체감하게 되었네. 관계가 줄어들자, 나를 부르던 목소리도 함께 사라졌지. 밖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분명해졌고, 사회적 연결이 얼마나 많은 완충 역할을 해왔는지도 알게 되었네. 하지만 이 소외가 완전히 공허한 상태로 이어지지는 않았어. 비슷한 속도로 걸어온 이들, 비슷한 이유로 멈춰 선 이들과의 접점이 조용히 생겨났네. 서로의 사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먼저 도착하는 순간들이 있었지.
이 연결들은 이전과 같은 형태의 관계는 아니었네. 기대를 주고받지 않았고,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았지. 다만 가능한 만큼을 나누는 식이었네. 말이 필요한 날에는 말을 건넸고, 침묵이 편한 날에는 그 상태를 존중했지. 분배는 동등함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균형에 가까웠네. 누군가는 더 주고, 누군가는 덜 받았지만,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어졌지. 부족한 자리에서만 가능한 교환이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네.
나는 이 연대를 구원의 형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네. 다만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 했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증거로 남겨두고 싶었지. 짐을 내려놓고 이동한 이후에야, 나눌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사실. 이 연결은 나를 중심에 세워주지는 않지만, 완전히 고립시키지도 않았네.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이끌지도,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않은 채, 가능한 만큼 주고받는 자리에 서 있다네. 그 정도의 관계가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는 판단이 이 국면에서 비로소 가능해졌지.
이제 나는 멀리 보되, 서두르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되었네. 무엇이 될 것인지보다는, 어떤 상태로 이 시간을 통과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지. 가능성은 여전히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었지만, 그 모든 길을 동시에 붙잡으려 하지는 않았네. 나의 시선은 출발선에 서서 달릴 준비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아직 움직이지 않은 채 지형을 읽는 태도에 가까웠지. 지금의 위치를 과소평가하지 않기로 했다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고, 이 자리에서만 가능한 판단도 있으니 말일세.
선택의 속도를 늦췄다네. 대신 하루를 다루는 방식은 더욱 단단해졌지. 리듬은 화려하지 않았고, 눈에 띄지도 않았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순서로 손을 움직이며, 가능한 만큼만 일을 이어갔지. 성취를 증명하려 들지 않았고, 의미를 확대하지도 않았네. 다만 이 반복이 끊기지 않도록 관리했지. 느리지만 정확한 속도가 지금의 나를 가장 덜 소모시킨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네.
반복은 더 이상 임시방편이 아니었네. 시간을 때우기 위한 장치도, 공백을 가리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지. 나는 이 일상을 선택하고 있었고, 그 선택을 매일 갱신하고 있었네. 거창한 결단 없이도, 삶은 이런 방식으로 방향을 갖는다는 것이 분명해졌지. 앞으로 나아간다는 감각은 속도에서 오지 않았고, 방향을 유지하는 데서 왔네. 지금의 나는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놓치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네
이것은 선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삶과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지. 나는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구조와 손 잡지 않기로 했고, 동시에 나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방식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네.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연결하고, 지속할 수 있는 관계만 남겼지. 이 선택은 편안함을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배반하지는 않았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자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네. 누군가가 불러주기를, 상황이 정리되기를, 다음 국면이 열리기를 바라지 않게 되었지. 이 반복과 이 속도, 이 관계의 밀도로 하루를 세우는 것이 지금의 나라는 판단에 도달했네. 크지 않아도 괜찮고, 눈에 띄지 않아도 상관없다네. 이 선택을 유지하는 한, 나는 이미 내 삶의 안쪽에 서 있다는 확신이 분명해졌으니까.
종말은 이전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때 자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반복하며 갱신된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