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넷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달리고 있었다네. 알림은 겹쳐 울리고 일정은 서로를 밀어내며 앞서가려 했지. 누군가의 기대가 또 다른 누군가의 요청을 덮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다네. 바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고 열심히라는 말은 오히려 상황을 가렸다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았고 쉬면 흐름을 놓칠 것 같았지. 그래서 더 빨리 움직여 더 많은 것을 동시에 쥐었다네. 그 속도는 밀려나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네.
충돌은 밖에서 먼저 드러나지만 실제로는 안에서 먼저 쌓인다네. 협업의 말투가 조금씩 거칠어지고, 사소한 일정 조정에도 마음이 쉽게 상했지. 누구의 요구가 과한지 따지기 전에 이미 감당의 선을 넘어서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네. 나는 타인과 겨루기보다 나 자신과 경쟁하고 있었고 더 많이 해내는 쪽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네. 하지만 그렇게 쌓인 성취는 오래 남지 않았어. 손에 남은 것은 피로와 잔열뿐이었지. 주고받음의 균형이 무너져가니 나는 계속 앞줄에서 버티는 역할만을 맡고 있더군.
어느 날 받은 편지함을 열었을 때, 더는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네. 제안과 초대는 여전히 이어졌지만 그것들에 응답하는 손놀림이 이전과 같지 않았지. 모두를 붙잡는 태도가 능력이 아니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네. 그래서 대부분을 정중히 보류하거나 거절했지. 선택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이었어. 가능성을 모아두는 대신, 지금의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뒤로 물렸다네.
남긴 것은 아주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일이었다네. 성과를 약속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박수를 부르지도 않는 작업 하나. 하지만 그 일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지. 다른 것들을 내려놓자 왜 그것이 남았는지가 또렷해졌다네. 그것은 앞서 나가기 위한 일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동작이었지. 반복은 조용했고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흐트러지지 않았다네. 서두르지 않아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감각이 그 안에서 서서히 자리 잡았다네.
나는 삶의 범위를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네. 더 크게 보이기보다,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쪽을 택했지. 이것을 나는 자리를 정확히 잡는 일이라 느낀다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앞서갈 필요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자 해야 할 일의 윤곽이 또렷해졌다네. 큰 계획을 잠시 내려두고 작은 반복을 남긴 것도 그 때문이지. 눈에 띄지 않더라도 지금의 위치를 성실히 지키는 것. 그 안정 위에서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네.
놓은 것들이 손을 떠난 뒤에도 마음은 한동안 그 자리를 더듬는다네. 이미 끝난 선택인데도 하지 않은 가능성들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지. 남겨둔 것보다 내려놓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고, 그중 일부는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채 감정으로 남아 있더군. 아쉬움이라 부르기엔 단정하지 않고, 후회라 하기엔 방향이 달랐다네. 다만 그 시절의 나였다면 붙잡았을 장면들이 조용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늦게 와닿았지. 상실은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다는 걸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네. 그래서 한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 감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네.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네. 남은 감정을 정리하려면 더 이상 흐릿한 언어로는 부족했지. 무엇을 잃었는지보다 무엇을 지켰는지를 분명히 해야 했네. 종이에 문장을 적고, 일정표를 다시 펼쳐 보며, 선택의 기준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네. 애매한 이유는 지웠고,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기로 했지. 선명해진 것은 계획이 아니라 판단이었다네. 더는 감정이 방향을 정하게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때 또렷해졌다네.
이후로는 말이 줄었다네. 모든 선택을 공유하지 않았고, 모든 결정에 근거를 붙이지도 않았지.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나머지는 남겨 두었다네. 누군가는 거리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그것까지 책임지려 하지는 않았다네. 숨겨야 해서가 아니라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 조용히 빠져나오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네. 그 침묵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
겉으로 보기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네. 여전히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같은 파일을 열며,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안쪽의 기준은 완전히 달라졌다네.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어디까지 관여하지 않을지에 대한 선이 생겼지. 그 선 덕분에 작은 일 하나에도 과하게 소모되지 않게 되었다네. 모든 싸움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자유를 주더군. 이 선택이 조용하다고 해서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네.
지금의 나는 이 시기를 실패나 상실로 부르지 않는다네. 다만 불필요한 전장을 빠져나온 상태라 생각하고 있다네. 더 많이 얻기보다 더 적게 흔들리는 쪽을 택한 결과이지. 남은 일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네. 앞으로 무엇을 더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네. 이 명확함이 당장의 성과를 보장해 주지는 않겠지. 그럼에도 이 자리가 다음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라는 건 확신하고 있다네.
이제는 주고받음의 감각을 다시 살피게 된다네. 무엇을 더 내어줄 수 있는지보다, 어디까지가 적정한 지부터 가늠한다네. 호의와 책임을 구분하지 못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선을 먼저 긋고 그 안에서 움직이려 한다네. 모든 요청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지. 주는 쪽에 서 있더라도, 균형이 무너지면 오래갈 수 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네. 그래서 나는 먼저 나의 몫을 챙긴 뒤에야 손을 내민다네. 이 순서가 관계를 오히려 오래 버티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
이 태도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다네. 앞에 나서지 않아도 흐름을 읽을 수 있고, 힘을 쓰지 않아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감각이 생겼지.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돌아가는 것들, 내가 빠져도 유지되는 구조를 확인하면서 불필요한 개입을 줄였다네. 책임감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책임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쪽이 더 정확하겠지. 모든 일을 끌어안지 않아도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는다네.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안정으로 상황을 다룬다네.
하지만 이 안정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네. 줄인 만큼 버텨야 할 무게는 또렷해졌지. 남긴 일 하나에 더 많은 집중이 요구되고, 그만큼 반복도 길어진다네. 이전처럼 여러 갈래로 흩어질 수 없기에 피로는 다른 형태로 쌓인다네. 그럼에도 이 무게는 낯설지 않지. 쓸데없는 긴장이 빠진 자리에 남은 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종류였어. 그래서 나는 이 과부하를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네.
하루의 동작은 단순해졌지만 밀도는 오히려 높아졌지. 같은 일을 반복해도 도망칠 틈이 없으니 집중이 깊어진다네. 쉬운 길로 빠지거나, 다른 일로 분산시키는 선택지를 스스로 차단했지. 이 반복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끝을 재촉하지 않는다네. 버거운 날이 와도, 다시 쥐어야 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내려놓을 것과 붙잡을 것이 명확해졌다는 사실이, 이 시기를 견디게 한다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 상태를 과도기라 부르지 않는다네. 잠시 지나가는 국면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유지의 방식이라 느끼는 것일세.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견디는 게 아니라 남긴 일을 지키기 위해 버티는 시간이지. 무게는 분명히 늘었지만 방향은 흐트러지지 않는다네. 이 긴장이 완전히 풀리는 날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네. 지금의 범위 안에서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친 흔적은 분명해진다네. 하루를 마칠 때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눌러앉고, 반복이 끝이 없게 느껴지는 순간도 잦아졌지.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네. 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내려놓지 않겠다는 쪽에 가까웠지. 필요한 만큼만 속도를 늦추고, 다시 같은 자리에 앉는 일을 선택했다네.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네. 견딘다는 말이 늘 무모함을 뜻하지 만은 않아.
이 반복 속에서 자연스레 기준이 생겼다네.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가 먼저 떠올랐고, 결과를 앞당기기보다 매일 손에 남는 것을 확인하는 쪽을 택했지. 작은 진척이라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 두었다네. 무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겠다는 판단에 가까웠다네. 이렇게 쌓인 안정은 눈에 띄지 않지만 쉽게 흔들리지도 않는다네. 지금의 나는 이 느린 축적을 신뢰하고 있다네.
시간이 지나자 주변의 반응도 달라졌다네. 크게 알리지 않았는데도 다시 제안이 오고 질문이 이어지기 시작했지. 이전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무시하지도 않았다네. 나의 범위 안에서 가능한 것만 응답했고 그 기준을 스스로 흔들지 않았다네. 인정은 목표가 아니었지만 결과처럼 따라왔다네.
이제는 일과 삶을 분리해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네. 잘 해내고 있다는 신호를 외부에서 찾지도 않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도 않는다네. 하루를 마치고 돌아보면, 무사히 지켰다는 감각이 먼저 남는다네. 이것이 성취라 부를 만한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허하지는 않다네. 내가 선택한 범위 안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을 살아내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네. 이 안정이 앞으로 더 큰 움직임으로 이어질지 아닐지는 아직 모른다네. 다만 지금은 이 자리면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다네.
그래서 나는 이 시기를 밝음이라 부르지 않는다네. 대신 잘 보이는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네. 과도한 빛도, 과장된 환호도 없이, 해야 할 일이 또렷이 보이는 자리. 무엇을 더 쥐어야 할지보다, 무엇을 놓지 말아야 할지가 분명해진 상태 말이네. 이 명료함이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다네. 다시 흐려지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이미 한 번 이 자리를 지나왔으니까. 그 기억만으로도, 다음을 다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네.
삶은 더 많이 쥐는 것으로 넓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거절할 수 있는지가 한 사람의 방향을 결정한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지키는 반복이 삶을 분명하게 만든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